▲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1. 국내에서만 유독 복잡한 우위성 판단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직급상 또는 관계상) 우위성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이 우위성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직급상 우위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혼란이 적지만, 관계상 우위를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관계상 우위만이 해당된다고 보는 매우 보수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예 : 나이, 성별, 학력 등), 관계상 우위를 좁은 범위로 인정할 경우 가해 행위가 발생해도 괴롭힘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한 직급상 우위와 관계상 우위가 서로 모순될 때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까다로워지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사례들이 있었다.
- 동일 직급자 간 따돌림은 괴롭힘 인정이 불가하다?
본 사례는 여러 명의 동일 직급자가 사업장에서 한 명을 따돌리고 고립시킨 사례였다.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거나 피해자가 앞에 있음에도 공공연히 험담하는 등 명백한 가해행위가 존재했다. 또한 그 행위가 수개월 이상 지속됐다. 하지만 직급상의 우위가 존재하지 않으며,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성별이 같고 연령대와 학력이 유사해 관계상 우위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 인정을 받지 못했다.
- 남성 후임의 여성 상사 성희롱은 인정 불가하다?
성희롱은 관련 법령이 별도로 존재한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성희롱도 직장 내 괴롭힘처럼 판단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본 사례도 그런 경우였다. 남성 후임이 여성 상사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가했다. 만약 남성 상사가 여성 상사에게 했다면 확실하게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는 수준의 언행이었다. 하지만 직급상 우위가 관계상 우위보다 객관적이므로 우선시돼야 한다는 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이 신고 건도 인정받지 못했다.
- 후임의 상사 험담과 헛소문 전파는 괴롭힘 인정이 불가하다?
상사가 후임을 험담하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에선 어떨까? 직장 생활하면서 상사를 험담하지 않는 후임이 어디 있냐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본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해자인 후임은 상사에 대해 거의 매일 같이 험담했으며, 상사의 사생활에 대한 헛소문도 여러 번 언급했음을 여러 증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신고 건도 마찬가지로 우위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상사의 괴롭힘 신고가 인정되지 않자 후임은 상사가 누명을 씌웠다며 가해자로 신고했다. 그리고 괴롭힘이 성립된다는 인정을 받았다. 이처럼 우위성에 매몰되면 같은 사업장 안에서도 이중잣대로 괴롭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노=가해자', '사=피해자'인 사건은 괴롭힘 인정이 불가하다?
노조원이 이의제기를 명목으로 사용자에게 상습적으로 폭언 섞인 비난과 업무 방해 행위를 반복했다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자문을 요청받은 노무법인에서는 우위성을 사회통념상의 기준에 따라 해석해야 하므로 사에 대한 노의 행위는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용자라는 이유로 가해행위를 겪고도 피해를 호소할 권리를 막는 것이 과연 공정한 법의 잣대라고 볼 수 있을까?
위 사례들은 모두 명백한 가해행위가 있는데도 우위성이라는 기준에 매몰돼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들이다.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직급상 우위성이 명확하다는 이유로 가해행위로 보기 어려운 신고 건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볼 때 핵심이 돼야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다. 우위성과 같은 주변 정황이 아니다. 하지만 맥락의존적인 동양권 특유의 인지방식이 행위보다 주변 맥락에 더 집중하게 해 판단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2. 해외 국가의 우위성 판단
직장 내 괴롭힘(Bullying) 금지법을 시행하는 다른 국가에서는 우위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법령에서 직접 우위성을 언급하는 국가는 드물다. 하지만 관련 연구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힘의 불균형(Power Imbalance)이 발생한 상태를 괴롭힘의 성립 요건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힘의 불균형은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약자의 위치가 돼 '가해행위를 중단시키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됐는지를 볼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은 행위가 '계속 지속되고 반복되는가'다. 결국 지속ㆍ반복성이 힘의 불균형, 즉 우위성이 발생한 상태를 포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지속ㆍ반복성으로 우위성을 판단한다면 앞의 사례처럼 사회통념상 우위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백한 가해행위를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당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직위상의 우위와 관계상의 우위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예 : 남성 후임과 여성 상사, 근로자 가해자와 사용자 피해자 등) 판단에 혼란이 오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행위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괴롭힘의 성립 판단이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3. 국제적 판단기준과 국내의 적용
그렇다면 국제적으로는 괴롭힘 성립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해외의 관련 법령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요소는 총 세 가지다. ▲상식적인 범위 ▲지속ㆍ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악영향이다.
① 상식적인 범위
상식적인 범위를 판단하는 관점은 총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발생한 행위가 상식적으로 볼 때 업무상 필요한 행위라고 볼 수 있는지 보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발생한 행위가 상식적으로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는 행위인지 보는 관점이다.
첫 번째 관점만 고려할 경우, 자칫 업무상의 괴롭힘(Work-related Bullying)만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관련 연구에서는 업무상 괴롭힘과 개인적 괴롭힘(Person-related Bullying)을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 유형 안에 포함한다. 일하는 중에 또는 업무와 관련돼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다른 상황(예 : 회식)에 발생하는 모든 가해행위를 괴롭힘 행위라고 본다. 업무상의 괴롭힘과 개인적 괴롭힘은 가해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남성 피해자와는 달리 여성 피해자가 많이 겪는 가해행위는 주로 개인적 괴롭힘이다. 업무상의 괴롭힘만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주장한다면 상당수의 여성 피해자를 배제하게 된다. 따라서 두 번째 관점도 함께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해외에서는 상식적인 범위를 충족하지 않는 행위가 신고될 경우, 신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돌려보낼 수 있다. 아무리 많은 행위의 증거를 제출해도 신고된 행위들이 상식적인 범위를 충족하지 않는다면 인정되지 않는다. 사법기관과 행정기관은 물론,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왜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 사유를 신고인에게 알려준다.
상식적인 범위에 해당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가 섞여 있을 때는 전자만을 분류해 조사와 판단에 활용한다. 상식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만으로 신고가 접수돼도 무조건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적인 범위'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성별, 연령대별 집단 간의 상식에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비교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식적인 범위가 존재하므로 적용이 한결 쉽다. 우리나라는 누구의 상식에 준해 판단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관련된 국내 판례에서는 피해자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집단의 상식을 언급하고 있다. 피해자와 성별, 연령대, 유사한 직군에 속한 사람들의 상식을 참고하는 것이다.
사업장 단위에서는 신고인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직원을 대상으로 동료 조사를 실행해 상식의 범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업장 규모가 작다면, 같은 산업의 다른 사업장 소속이나 상위 노조의 소속 중 신고인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직원의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상식적인 범위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② 지속ㆍ반복성
앞에서 상식적인 범위를 충족하면 다음은 그 행위가 얼마나 자주 반복되고 지속됐는지를 본다. 이때 일회성으로도 인정될 수 있는 Harassment 행위만큼은 예외로 한다(예 : 폭언, 폭력, 성희롱, 퇴사 강요 등). 그외 포괄적인 괴롭힘(Bullying)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ㆍ반복성이 반드시 성립해야 신고가 인정된다. 설령 상식적인 범위를 충족하는 가해행위가 발생했어도, 충분한 지속ㆍ반복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그 신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신고인에게 왜 인정되지 않는지 사유와 함께 돌려보내는 것이다.
다만 이때의 지속ㆍ반복성은 개별 행위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가해행위는 한 번씩만 발생했어도, 발생한 모든 가해행위의 합산 빈도가 여러 건이면 지속ㆍ반복성을 충족했다고 본다. 이런 지속ㆍ반복성에 대해 해외에서 주로 활용하는 지속성 기준은 6개월 이상, 반복성 기준은 주 1회 이상이다. 상식적 범위의 가해행위가 있었고 피해자가 고통을 겪었음도 인정됐으나 입증된 가해행위의 6개월ㆍ주 1회의 지속ㆍ반복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패소한 판례가 있을 정도다.
이 기준이 다소 엄격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해외의 사법기관에서는 어느 지점에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함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가해자 형사처벌 조항이 있는 국가일수록 괴롭힘 성립을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법원에서 가해자로 인정되면 전과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피해자에 대한 악영향
피해자에 대한 악영향은 가장 많은 국가의 법령에서 언급되지만, 앞의 두 요건이 성립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충족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준이다. 피해자에게 끼친 악영향이 별로 없다면 애초에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바탕되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에 대한 보상 수준을 결정하거나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 때는 피해자가 겪은 정신ㆍ신체적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한다. 다만 여기서도 '상식적인 범위'가 적용된다. 실제로 발생한 가해행위와 지속ㆍ반복된 정도에 비해 피해자가 과도한 피해를 주장할 경우 극도로 민감한 피해자에게 맞출 수 없다고 명시한 판례들이 있다. 사회 통념상 상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정신ㆍ신체적 피해에 해당하는지 보는 것이다.
4. 결론
국제적으로 직급상의 우위는 괴롭힘 성립 자체보다는 가중처벌 여부를 판단할 때 주로 사용된다. 동일한 가해행위가 발생했어도 직급상 우위인 가해자가 하면 동일 직급자나 후임이 하는 것보다 피해자에게 끼치는 여파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가해자 중 후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직급상 우위를 괴롭힘 성립 자체의 판단기준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관계상의 우위 역시 사회 통념적 관점의 우위성만 인정하면 앞에서 본 사례처럼 명백한 가해행위가 있어도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예 : 노의 사를 향한 가해행위).
가장 객관적인 우위성의 판단은 피해자가 가해행위를 중단시키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가해행위가 발생했고 계속 반복됐는지 여부다. 앞에서 말했듯 피해자가 중단시키거나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가해행위가 지속ㆍ반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