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회의장에서 '백화점ㆍ면세점 원청 사용자성 인정 행정소송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동희 기자 dhlee@)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백화점면세점노조)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입점업체 직원들의 근로시간, 근로환경 등을 결정하는 백화점ㆍ면세점이 노조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노동위원회 초심과 재심 모두 백화점, 면세점의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해 이들의 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노조는 행정소송으로 다시 한번 원청 사용자성을 다툴 계획이다.

"원청 백화점ㆍ면세점이 교섭 나서라"…노동위 "교섭 의무 없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회의장에서 '백화점ㆍ면세점 원청 사용자성 인정 행정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행정법원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백화점, 면세점, 복합쇼핑몰 등에 입점한 업체에서 일하는 판매ㆍ서비스직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 조합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입점업체지만, 조합원이 일하는 장소는 입점업체가 들어서 있는 백화점과 면세점이다.
 
지난해 노조는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백화점ㆍ면세점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노조가 교섭 대상으로 요구한 건 ▲백화점ㆍ면세점의 영업시간 변경에 따른 근무시간 및 휴일 결정 ▲휴게실, 화장실 등 점포 내 시설물 이용 보장 및 개선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고객응대매뉴얼 작성 등이다.
 
그러나 백화점ㆍ면세점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같은 해 9월 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노위는 구제신청을 기각했고,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정을 했다.
 
노동위원회는 백화점과 면세점이 조합원의 주요 임금, 근로조건을 직접 지배ㆍ결정하지 않아 교섭 의무가 없다고 봤다. 대부분의 권한은 원사업주인 입점업체에 있어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입점업체라는 판단이다.
 
노조는 조합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휴게실 등 시설물에 대한 지배ㆍ결정 권한이 백화점ㆍ면세점에 있고, 백화점ㆍ면세점이 일원화된 고객응대매뉴얼을 제공해 업무를 지시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노위는 "편의시설 등의 확충, 사용 등을 지배ㆍ결정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분만을 따로 떼어 교섭 대상으로 삼아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하기는 어렵다"며 "백화점,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사원의 노무제공의 장소적 특성을 감안할 때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고객응대매뉴얼 일원화는 그 자체로 임금, 근로시간 등 기본적인 노동조건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정했다.
 
원청 사용자성, 법원에선 인정될까
 
노동위원회의 판단에도 노조는 백화점과 면세점이 입점업체 직원인 조합원들에게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조합원들에게 제보받은 증거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한 현대백화점은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백화점 영업 시작 전 진행하는 체조에 참여할 것, 입점업체 폐점 시 5분간 대기한 뒤 마감에 들어갈 것 등을 공지했다. 경기도의 한 롯데백화점에선 입점업체 직원들에게 고객용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이용을 제지하고 특정 화장실과 엘리베이터만 사용하라는 공지를 내리기도 했다.
 
백화점ㆍ면세점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휴점일이 변경되거나 영업을 연장해야 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 휴점일 변경이나 영업 연장은 백화점·면세점 관리자가 메신저로 공지했다.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온 경우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등이 담긴 고객응대매뉴얼도 백화점ㆍ면세점이 제공했다.
 
그러나 해당 증거자료들은 앞선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때도 제출됐지만, 노동위원회는 백화점ㆍ면세점의 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소연 백화점면세점노조 위원장은 "근로시간, 근로환경 등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입점업체 사용자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백화점ㆍ면세점의 각종 지침을 따르고 이들의 관리ㆍ감독ㆍ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입점업체 사용자하고만 교섭해서는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수 없어 반드시 백화점ㆍ면세점과 교섭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연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위원회 판정을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노동위원회 결정은 백화점ㆍ면세점 사업에서 조합원들의 업무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 이러한 업무가 백화점ㆍ면세점 사업체계 일부로 편입돼 있는 구조, 백화점ㆍ면세점이 실질적으로 결정해 온 조합원들의 각종 실태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은 결정"이라며 "이는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통해 노동3권, 그중에서도 단체교섭권의 보장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판례의 흐름과도 반대되는 판단으로, 노동위원회 결정은 노사관계를 후퇴시키고 노동3권을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판단을 올바르게 잡아주기를 바란다"며 "더불어 입법부는 노동조합법 2ㆍ3조를 개정해 법이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는 데 함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