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 창원 도장공장(사진=뉴시스)

한국지엠(GM) 창원공장 사외에서 부품물류를 수행하는 협력업체 근로자도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품물류 작업장은 한국지엠 공장과 차로 15분 떨어져 있었지만 한국지엠 직원들의 지휘ㆍ명령이 이루어졌다는 이유다. 하청업체인 BTX 코리아는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소유하고 있었고 한국지엠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물류를 담당하는 등 독립성을 갖췄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급심에서는 BTX 근로자들이 제기한 추가 불법파견 소송이 제기돼 있어 이번 대법원 판결의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이 2008년 이후에는 BTX가 자체 설비와 장비를 갖췄다는 점을 인정해 계쟁기간에 따라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12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전날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한국지엠 부품물류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이 한국지엠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회사 측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서열업무를 외부사업장에서 수행한 것은 공간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을 뿐이고 사내 서열과 사외 서열 간 특별한 이는 없다"며 "근로자들은 2005년경 BTX에 고용된 후 한국지엠의 지휘ㆍ명령에 따라 일한 파견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공장서 차로 15분 거리 사외서열도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한국지엠의 부품물류 협력업체 BTX 소속 근로자다. 이들은 2004~2005년경 입사해 자동차에 들어갈 부품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조립 라인에 보급하는 '서열보급' 업무를 수행했다.
 
주목할 점은 작업장이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점이다. 공장 내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하청업체는 공장 외부에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작업을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근로자들이 대부분 서열보급 작업을 외부 사업장에서 수행했더라도 공장 내에서 근무하는 다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지엠의 지휘ㆍ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다.
 
1심은 "사내에서 이루어지는 서열과 사외에서 이루어지는 서열 사이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었고, 협력업체 작업공간을 외부로 이전하는 데에는 한국지엠이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며 "한국지엠 소속 관리자는 직접 하청업체 근로자 교육을 실시했고 협력업체로부터 업무를 보고받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협력업체가 지엠 공장 내에서 일부 서열작업을 했는지나 협력업체의 서열 작업 장소가 외부라는 사정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지엠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도 표준작업방식과 동일하게 작업하도록 요구했고 이들과 한국지엠 소속 직원들을 사실상 하나의 집단으로 관리했다"고 설명했다.
 
20년 업력 BTX, 전문성 주장했지만...판단은 그대로
 
BTX는 한국지엠 부품물류 협력업체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업력이 오래된 업체다. BTX는 스스로를 20여 년 된 국내 최초의 자동차 부품 운송 납품 전문 회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BTX 기업 소개에 따르면 울산, 군산, 창원 등에 지점을 두고 한국지엠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효성기계, 현대건설기계 등 다른 기업의 부품물류도 대행했다. 공급체인관리서비스, 통합물류서비스, 순회운송, JIT(Just in time) 납품, 모듈 조립, 서열납품 등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발굴했고 성공적으로 국내 시장에 선보여 자동차 부품 물류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BTX는 불법파견 소송 과정에서 이러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주장했다. 다른 협력업체와는 다르게 지게차, 작업설비, 차고 등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업무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개량해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대법은 BTX가 장비와 자채 차고, 지게차 등 장비를 직접 보유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파견을 다투는 기간(계쟁기간) 이후에서야 인정된다고 봤다.

하급심은 "서열보급 업무는 작업사양서에 따라 동일 작업을 반복하는 것일 뿐 전문적인 기술이나 숙련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며 "근로자들의 계쟁기간인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BTX가 과거 지게차, 트럭 등을 일부 보유하고 있었지만 핵심적으로 필요한 생산 관련 시설, 장비, 도구 등은 대부분 한국지엠 소유였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BTX 후속소송 파장은...대법 계쟁기간 '제한' 주목 
 
이번 사건의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엠 협력업체 중에서도 규모와 전문성을 갖춘 사외 부품물류업체의 불법파견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BTX보다 작은 규모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협력업체의 경우 불법파견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창원지법에는 BTX 소속 근로자들이 추가로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도 제기돼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이 후속소송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이 명시적으로 계쟁기간을 제한해 판단해서다. 파견법은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같은 공정이더라도 파견을 다투는 기간이 언제인지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기간별로 원청의 지휘ㆍ명령의 정도나 근로자 측의 입증 수준에 차이가 발생해서다. 

노조 주도의 집단으로 제기되는 불법파견 소송의 경우 재판부에서 개별 근로자의 계쟁기간별 자료를 전부 검토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법원은 계쟁기간 구분 없이 공정별로 불법파견을 판단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과 하급심에서는 계쟁기간을 나눠 불법파견을 판단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원심은 "BTX는 2008년 말경부터는 도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설비, 자재 차고, 지게차 등의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지엠 외에 다른 업체와도 거래하고,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제품 정보를 출력하는 장비도 직접 개량해 운영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모두 근로자들에 대해 고용간주 규정 또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된 이후의 사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법원도 "2008년 말 이후의 BTX 보유 장비와 거래처 현황 등은 근로자의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이후 사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2008년 이후에 입사한 근로자에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이번 사건은 카허 카젬 전 사장의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서 파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카허 카젬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카허 카젬 전 사장의 혐의에는 BTX 소속 근로자에 대한 부분도 있어 항소심 판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