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세브란스병원 주4일제 시범 사업 1년의 결과와 함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재헌 기자 jh59@)
 
세브란스병원에서 실시된 주4일제 시범 사업이 간호사들의 퇴사율 감소ㆍ행복감 증가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면서 주4일제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시범 사업에서는 임금 삭감이 동반된 주4일제가 시행됐지만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세브란스병원 주4일제 시범 사업 1년의 결과와 함의 토론회'를 열었다.
 
세브란스병원노조는 지난 2019년 간호사 주4일제를 노조 교섭 요구안으로 채택했다. 이후 4년간 교섭을 이어간 끝에 2022년 8월 주4일제 시범 사업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에 따라 2023년 1월부터 신촌 세브란스병원 2개 병동, 강남 세브란스병원 1개 병동에서 주4일제 시범 사업이 시행됐다. 시범 사업은 올해 신촌 세브란스병원 3개 병동, 강남 세브란스병원 2개 병동으로 확대돼 연장 시행 중이다.
 
시범 사업 대상자는 신청자 중 육아, 건강 등을 고려해 선발됐다. 시범 사업에 참여하면 주4일 근무를 하는 대신 기존보다 10% 삭감된 임금을 받는다.
 
주4일제로 '퇴사율 감소ㆍ행복감 증가' 뚜렷해
 
세브란스병원 주4일제 시범 사업 조사 결과 시범 사업에 참여한 간호사들의 퇴사율은 감소하고 친절건수는 증가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신촌 세브란스병동은 퇴사율이 6.2% 감소했고, 강남 세브란스병동은 8.8% 감소했다. 반면 참여 병동의 친절건수는 시범 사업 전보다 2.6배 증가했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이 많고 업무 강도가 높으면 간호사들이 환자를 기계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며 "간호사의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주4일제 시범 사업이 큰 혁신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주4일제 시범 사업으로 간호사들의 건강 상태도 나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시범 사업 참여 간호사들의 수면장애 비율은 26.1%에서 13.6%로 감소했고 근골격계 질환은 34.8%에서 18.2%로 줄어들었다. 우울감은 4.5%에서 0%로 줄어들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안정빈 신촌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는 "교대 근무를 하며 수면에 어려움을 겪어 여가시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며 "주4일제를 하며 제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어 여가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게 됐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의 행복도와 여가시간, 일생활균형 만족도도 늘어났다. 시범 사업 실시 전 5.3이었던 행복도는 7.1로 높아졌고, 일생활균형 만족도도 3.7점에서 6.2점으로 상승했다.
 
여가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간호사의 비율도 주5일제에서는 8.2%였지만 주4일제에서는 22.2%로 늘어났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소서정 강남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는 "주4일제를 통해 가정과 육아에도 더 충실할 수 있고, 여가생활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직업 만족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져 환자들을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논의 활성화돼야"
 
이번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주4일제에 난색을 표하는 경영진을 설득하고 논의를 활성화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진은 인력 충원과 인력 관리에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며 "이번 시범 사업 결과를 토대로 경영진의 우려점을 해소하며 주4일제 논의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범사업 연구를 담당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4일제의 경제적 효과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근로시간이 줄어 생산성이 감소되니 임금 삭감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주4일제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이를 상쇄한다"며 "주4일제 시행으로 이직률이 낮아지고 간호 서비스의 질이 향상했다. 이직에 따라 기업의 신규 채용, 교육훈련비와 국가의 실업급여, 근로자 건강 개선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 감소를 고려하면 주4일제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시범 사업이 정부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4일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혜린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과장은 "이번 시범 사업의 성과에 대해 공감한다"면서도 "시범 사업이 국가 정책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주4일제의 효과에 대해 구체적인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소장은 "지금까지 근로시간 단축에 임금 삭감이 동반된 적은 없었다"며 "주4일제가 기업에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도 확실하기 때문에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 논의도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미경 세브란스노조 위원장도 "이번에는 시범 사업이어서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가 특정 간호사에 대한 특혜로 비춰질 수 있어 10% 임금 삭감안을 받아들였다"며 "노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4일제 도입 과정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인한 차별 도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건의료산업뿐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임금 삭감 없이 AI의 도입으로 주4일제가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심각해 대기업 유노조 사업장만 주4일제가 도입되고 중소기업 무노조 사업장에는 도입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산별 협약 등을 통해 차별 없이 도입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