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5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마지막 운행에 들어간 사파리 버스에서 시민들이 호랑이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용인 에버랜드에서 셔틀버스, 사파리 버스, 로스트밸리 수륙양용차 등을 운행하는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 삼성물산의 근로자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근로자들은 차량 운전 외에도 에버랜드 이용객들이 관람하는 동물 관람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야 했으며, 삼성물산으로부터 근무태도를 평가받고 서비스 품질을 점검ㆍ교육받았다.
 
26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조용래)는 에버랜드 셔틀버스업체 CS모터스 소속 근로자 A 씨 등 9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삼성물산은 현재 테마파크 에버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CS모터스는 삼성물산과 도급계약을 맺고 에버랜드 셔틀버스, 에버랜드 내 사파리 버스, 로스트밸리 수륙양용차량, 비상차(소방차, 구급차), 청소차 등을 운행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1년 365일 연중무휴로 개장하는 에버랜드 특성상 CS모터스도 에버랜드 방침에 따라 하루도 빠짐없이 차량을 운행했다.
 
근로자들이 수행한 건 차량 운전뿐만이 아니었다. 호랑이, 사자 등 육식동물을 보여주는 시설인 사파리에서 버스를 운행할 땐 동물을 소개하고 그에 맞는 연출 업무도 수행해야 했다.
 
소송을 제기한 CS모터스 근로자들은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CS모터스분회 조합원들이다. 이들은 삼성물산이 자신들을 직접 지휘ㆍ감독해 근로를 제공받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근로자 측 손을 들어주며 둘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S모터스 근로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직ㆍ간접적으로 구속력 있는 지휘ㆍ명령을 받으며 차량운행업무 등을 수행하고,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삼성물산의 사업에 편입됐다"고 판시했다.
 
삼성물산 CS혁신파트는 CS모터스 근로자에 대한 고객 평가를 CS모터스에 전달했다. 고객인 척 위장해 서비스를 점검하는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서비스 품질이 낮다고 평가되면 해당 근로자의 근무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CS모터스의 현장책임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업무 내용, 업무 수행 방법, 업무 시간 및 장소, 근무 태도 등을 지시했다. 특히, 삼성물산의 모 그룹장은 CS모터스 근로자에게 개별적으로 청소차 운행을 지시하고 차량 배차시간을 조정했다. 이 그룹장은 버스 운행 중 휴대폰으로 쇼핑을 해 고객 불만이 접수되자 CS모터스 임원에게 해당 근로자를 해고하라고 했다.
 
CS모터스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교육도 삼성물산이 실시했다. CS모터스 근로자는 에버랜드 동물원 사육사로부터 동물 주의사항 및 사파리 탈출 행동요령에 대한 설명을 받았다.
 
법원은 삼성물산과 CS모터스 근로자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일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CS모터스 근로자는 사파리에서 화재 가상훈련을 할 때도 참여했는데, 이 훈련은 사파리 전 근무자가 참가하는 훈련이었다.
 
재판부는 "회사가 주관하는 가상훈련은 구속력 있는 지시로서 CS모터스 근로자들은 위 훈련에 참여해야만 했고, 회사는 에버랜드 사업장 내의 협력업체나 판매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소방교육이 필요할 때 CS모터스 근로자들에게 교육 지원을 요청했다"며 "삼성물산 직원들과 CS모터스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전체적으로 연관돼 있고 CS모터스 근로자들은 삼성물산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판단했다.
 
근로자 측 승소 소식에 금속노조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금속노조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불법파견 판결이 서비스업까지 확장된 점, 삼성의 불법파견 범죄행위에 철퇴가 내려진 점에서 금속노조는 환영 입장을 밝힌다"며 "삼성의 무노조 경영, 노조 탄압에 맞선 CS모터스분회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번 불법파견 선고를 이끌어낸 만큼 삼성물산은 중간착취와 불법행위를 그만두고 1심 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