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방법원(사진=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8호 판결이 나왔다. 원청 공장에서 중량물을 고정하는 벨트가 끊어져 낙하하는 중량물에 맞아 작업 중이던 하청근로자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 하청 근로자들이 벨트를 잘못 고정한 것이 사고 원인이었지만 법원은 원청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현장에 안전관리자도 배치되지 않았다며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방법원 형사3단독 이재욱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선박 부품 제조업체 대표이사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지난달 4일 "A 씨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중량물 취급 작업을 하게 해 사망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원청 소속 공정 담당자에게는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하청업체 대표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원청 법인에는 벌금 5000만 원, 하청 법인에는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작업계획서 없이' 일하다 중대재해…"중처법ㆍ산안법 위반"
 
사고가 난 업체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선박 부품 제조업체다. 피해를 당한 근로자 C 씨와 D 씨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원청 공장 내에서 열교환기 제작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근로자들은 열교환기 본체 일부인 찬넬(Channel) 측면에 돌출된 노즐에 캡을 용접하는 작업을 했다.

2022년 11월 크레인이 4톤 가량 찬넬을 인양하던 중 찬넬을 고정하던 섬유 벨트가 끊어지면서 작업 중이던 C 씨와 D 씨를 덮쳤다. C 씨는 사망했고 D 씨는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근로자들이 찬넬 끝단의 날카로운 부분에 섬유벨트를 직접 접촉시키는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한 것이 사고 원인이 됐다.
 

원청 대표이사인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유해ㆍ위험 요인 확인ㆍ개선 절차 마련, 반기 1회 이상 점검 의무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업무 평가 기준 마련, 반기 1회 이상 평가 의무 ▲하도급업체 산재 예방 조치 능력 평가 기준ㆍ절차 마련, 반기 1회 이상 점검 의무 ▲안전보건관계법령 의무 이행 반기 1회 점검과 미흡 시 인력ㆍ예산 추가 집행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중량물 낙하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는 근로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낙하, 협착 등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작업지휘자를 지정해 그 계획에 따라 작업하게 해야 한다. 크레인을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에는 미리 근로자의 출입을 통제해 인양 중인 중량물이 작업자 머리 위로 통과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법원, "하청 중대재해는 원하청 모두 책임"…하지만 '실효성' 의문도
 
법원은 A 씨의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이 판사는 A 씨가 유해ㆍ위험 요인 개선 절차를 마련했지만, 이 절차에 따라 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기별로 점검할 의무는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 판사는 "A 씨가 위험성 평가 절차는 마련했으나 안전관리자가 중량물 취급 작업 시 작업계획서 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청업체의 산재 예방 조치 능력을 평가하고 점검하지 않은 점도 인정됐다. 이 판사는 "하청업체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크레인이 중량물을 인양하는 상황에서 근로자 출입 통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대한 하청업체 평가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채 도급계약을 체결했다"며 "안전보건관계법령에 따른 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인력을 배치하거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고 집행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근로자들이 잘못된 작업 방식을 선택한 것에 대해 A 씨를 비롯한 B 씨와 C 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 판사는 "A 씨는 공장에서 중량물 취급 작업이 상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찬넬을 인양한 섬유벨트의 적합한 줄걸이 방법, 중량물 낙하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아 근로자들이 임의로 작업방식을 선택하도록 했다"며 "근로자들이 야간 작업에 용접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작업 현장에 안전관리자를 전혀 배치하지 않아 근로자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하게 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 판사는 A 씨와 B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고려해 집행을 유예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조치의무를 원하청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나 원청에게 하청업체에 맡긴 작업의 전문성까지 기대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원청은 규모가 클 뿐 자신들이 하청업체에 맡긴 작업까진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아 하청과 별개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원하청에게 동일한 책임을 지우면 오히려 서로 작업계획서 작성 의무를 떠넘길 수 있어 작업계획서 작성 의무는 해당 작업에 전문성이 있는 하청업체에게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