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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오민형 홍익노무법인 공인노무사
1. 들어가며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19년 시행된 이후, 올해 5월까지 접수된 신고는 모두 3만9316건이라고 발표했다. 실제로 고용부 신고로 이어지지 않고 기업 내 자체 조사로 마무리되는 경우를 포함하면 약 4만의 배가 넘는 신고가 있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직장 내 권익 보호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신고 건수가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제76조의3 제2항). 또한 사업주는 조사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근로자 등에 대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고(제76조의3 제3항),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조사한 사람, 조사 내용을 보고받은 사람 및 그밖에 조사 과정에 참여한 사람은 조사와 관련된 내용을 사용자에게 보고하거나 관계 기관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아닌 한 해당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제76조의3 제7항).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또한 이와 유사한 절차적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기업에서 이러한 절차 자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는 적을 것이나, 개별 사안마다 발생하는 특수 상황에서의 적절한 대응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하에서는 판례를 중심으로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조사 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조사 절차 관련 이슈
⑴ 피신고인 조사 거부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첫 번째 문제는 피신고인의 조사 거부다. 피신고인이 조사에서의 진술 거부는 방어권 차원에서 보장되는 권리이고, 진술 강요는 양심의 자유 및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임을 주장하며 진술 및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발생 시 근로기준법에 따라 부여되는 조사 의무는 사용자의 조사 의무이고, 피신고인의 경우 조사 의무자의 수규자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조사 거부와 관련해 법원은 감찰 조사 목적이 비위행위를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해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 조사 요구를 거부할 수 없고, 조사 거부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8. 3. 28. 선고 2017나2033597 판결).
따라서 이러한 조사 거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윤리 강령 또는 복무규율에 조사 적극 참여 의무를 규정하고 경우에 따라 인사상의 조치가 실시될 수 있다는 점을 피신고인에게 안내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⑵ 변호인 대동 요구
조사 거부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변호인에게 위임했으니 변호인(변호사, 노무사 등)을 통해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거나, 조사 시 변호인과의 대동을 허가하지 않으면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관련해서 법원은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는 형사사건에 있어 체포·구속되는 경우 보장되는 권리로서, 취업규칙이나 징계 규정 등에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피고와 같은 사기업의 징계 의결 절차에까지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권리라고 볼 수는 없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6. 22. 선고 2021가합575125 판결), 취업규칙이나 징계 규정 등에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사업주의 근로자에 대한 징계 절차에서 징계 대상 근로자가 변호사를 대동해 출석할 권리가 당연히 보장된다고는 할 수 없고 그에 따라 변호사 대동을 거부한 것에 징계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5. 12. 18. 선고 2015나2003264 판결).
다만 해당 사안에서 법원은 조사 시 대동을 거부하는 것과 별개로 소명 관련 서면 제출 시 변호사의 조력하에 작성한 의견서를 기초로 심의하는 등을 통해 절차상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변호사 대동을 요구하며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 법률대리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근거 규정이 없는바 이를 반드시 허용할 의무가 없고, 다만 방어권 보장 및 절차적 공정성 확보를 위해 변호인의 조력 하에 작성한 서면을 참고하겠다는 점을 안내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⑶ 증빙자료 확보를 위한 메신저 등 열람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조사 진행 시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주장·진술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사실관계의 확정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입증자료를 통한 증빙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메신저 등 개인 통신 기록의 수집이 필요한데, 이러한 자료 수집 시 개인정보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관련해서 법원은 종교포교 문제로 분쟁이 있던 중 강제 포교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메신저 프로그램에 접속해 대화 내용을 텍스트 파일로 변경해 수집한 사안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제49조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부정하게 취득한 타인의 식별 부호(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하는 등의 행위가 없더라도,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상태로 있는 것을 기회로 정당한 접근권한이 없는 사람이 사용자 몰래 정보통신망의 장치나 기능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비밀을 취득·누설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봤다(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7도15226 판결).
상기 판례와 같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범죄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돼 원칙적으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 다만, 다른 사례에서 예외적으로 법원은 개인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낸 뒤 메신저 대화 내용과 이메일 등을 출력해 그 내용을 알아낸 사안에서 해당 행위를 정당행위로 보고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7도6243 판결).
위법성 조각 사유로서 정당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첫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법익과 침해 법익의 법익 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리고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침해행위에 의해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해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어야 한다.
해당 사안에서 법원은 ①업무상 배임 혐의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는바 객관적인 사실을 긴급히 확인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었던 점(긴급성), ②하드디스크상 내용을 전부 열람한 것이 아니라 의심이 가는 특정 단어만 검색해 정보수집 범위를 사안과 관련된 것으로 한정한 점(수단·방법의 상당성), ③입사 시 업무 관련 결과물을 모두 회사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정해 혐의 관련 자료가 저장돼 있을 개연성이 컸던 점, ④수집된 정보에 배임에 대한 입증자료가 발견된 점, ⑤모든 업무가 컴퓨터로 처리되고 업무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에 보관되고 있는 현재의 사무환경하에서 직원의 회사에 대한 범죄 혐의가 드러나는 경우 감독자로서 회사의 유지·존속 및 손해방지 등을 위해서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이 허용될 필요가 있는 점을 들어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상기 판례의 판단기준을 종합해 볼 때,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는 증거 수집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관련 사내 메신저 등 입증자료 수집 시 수집 범위를 문제가 된 사안과 관련한 사항으로 특정(검색어, 기간 등), 열람 방법에 대한 의견 진술 기회 부여, 이메일의 경우 수신자를 확인해 수·발신자를 통해 제출 요구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아 정보보호 관련 법률 위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⑷ 신고인 의견청취 절차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엔 법령(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5항,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5항)에 따라 징계 등의 조치를 해야 하고, 그 조치에 대해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때 반드시 피해근로자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실무상 의견 청취 절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신고인에게 피신고인 진술의 구체적 양상을 전달하지 않은 채 피신고인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는 점만을 전달한 것은 의견 청취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 판단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0. 선고 2022나45458 판결).
해당 판결에서 법원은 신고인은 의견청취 절차를 통해 피신고인에 대한 형사고소 여부 등 대응 방안을 정리할 기회(권리)가 인정된다고 봤는바, 이와 같이 조사 진행 상황을 충실히 안내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피신고인에 대한 사직처리가 이루어지는 경우 실무상 가장 중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므로 의견청취 절차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은데, 향후 절차 관련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의견청취 절차를 충실히 거치고 이에 대한 증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3. 나가며
본지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조사 시 발생할 수 있는 절차적 문제 및 그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 살펴봤다.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의 궁극적인 대응 방안은 건전한 직장문화 확립을 통해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구성원 개인별로 괴롭힘에 대한 인식 수준이 다르고 업무상 교류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갈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응 관련 프로세스의 정착이 실질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따라서 기업에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관련 규정을 정비, 대응 체계를 구축해 조직 내 고충 처리 역량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