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이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한화오션 중대재해에 대해 작업중지명령 범위를 협소하게 설정하고 졸속으로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했다는 지적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환노위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용부 산하 기관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고용부가 명령한 작업중지 범위 '협소'했다"

환노위 의원들은 한화오션 중대재해에 대한 고용부의 작업중지명령 범위가 협소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9일 한화오션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A 씨가 컨테이너선 상부에서 철 구조물인 랏싱브릿지를 탑재하는 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부가 중대재해가 발생한 '동종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는 한화오션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중지 범위를 랏싱브릿지 탑재 작업으로 한정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부가 한화오션 중대재해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작업중지명령을 했다"며 "이번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인은 랏싱브릿지 탑재공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선 상부에 추락 방지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부가 한화오션의 중대재해 반복을 막을 의지가 있었다면 랏싱브릿지 작업만을 중지명령할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선 상부에서 하는 작업 전체에 대해 중지명령을 했어야 했다"고 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도 "컨테이너 상부에 추락 방지 장치가 없으면 랏싱브릿지 탑재 작업이 아닌 어떤 작업을 해도 추락해 사망할 수 있다"며 "고용부가 동일 작업을 너무 협소하게 해석하면 작업중지가 형식적인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준휘 부산고용노동청장은 "현재 작업중지명령은 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것에 대해서만 하고 있다"며 "작업중지명령이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앞으로 엄정히 감독해 나가겠다"고 했다.

국정감사 이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고용부의 동종 작업 판단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다"며 "고용부가 노동자의 안전을 기준으로 범위를 판단했다면 컨테이너선 상부 작업 모두를 중단 대상에 포함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청노동자' 의견 청취 없는 작업중지 해제 비판도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고용부의 작업중지명령 해제가 하청노동자 의견 청취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고용부는 한화오션의 작업중지 해제 신청으로 지난 9월 24일 작업중지 해제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고용부는 첫 번째 심의위원회에서 불승인을 결정했지만, 지난 10일 두 번째 작업중지 해제 심의위원회에서는 해제를 승인했다.

환노위 의원들은 이 같은 고용부의 작업중지 해제가 하청 노동자 의견 청취 없이 졸속으로 결정됐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번 중대재해는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고"라며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는데도 고용부는 하청노동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작업중지 해제를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선재 통영지청장은 "하청근로자를 포함한 근로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뒤 중지해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날 국정감사엔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사장은 "작업중지 해제 전 하청노동자 175명의 의견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심의위원회가 어떤 절차와 논의를 거쳐 해제를 결정했는지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통영지청이 제출하지 않았다"며 "하청노동자의 의견 청취와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말을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김 지청장은 "작업중지 해제 심의위원회 자료가 외부에 미칠 영향력이 있어서 자료 제출을 하지 못했다"며 "국정감사 기간 내 제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고용부와 한화오션이 작업중지 해제 전 하청노동자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작업중지 해제 서류에 하청노동자 175명이 형식적으로 서명한 것을 가지고 의견을 들었다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작업중지 둘러싼 '안전 부실' 우려…'원하청 4자 논의' 제안

한화오션의 안전 조치가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서 작업중지가 해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추락사고는 안전난간 부실이 원인이 됐는데 한화오션은 사고 이후 안전난간 부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며 "고용부는 어떻게 안전조치 여부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작업중지를 해제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용우 의원도 "추락사고가 발생했음에도 한화오션은 허술한 밧줄과 그물망만 현장에 배치하는 원시적인 수준의 조치만 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안전조치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지청장은 "작업중지 해제 신청이 들어오면 근로감독관 2명과 안전 전문가 2명이 현장을 확인한다"며 "한화오션 모든 작업장에 현장점검을 나갈 수 없어 일부만 점검을 했다. 점검을 미처 하지 못한 곳에서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조치 미흡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서 지난 14일부터 통영지청 감독관 2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해 다시 근로감독에 착수한 상태"라고 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사고 이후 한화오션 9개 컨테이너선 중 하나에만 추가적인 안전조치를 했다"며 "나머지 8개의 컨테이너선에는 여전히 허술한 밧줄과 그물망만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용부가 지난 14일부터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있지만 컨테이너 상부의 안전조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있다"며 "국정감사 면피용으로 근로감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우 의원은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 고용부와 원하청 사용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4자 논의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용우 의원은 "한화오션은 하청노동자가 70%를 차지하고 있어 중대재해 재발 방지와 공정한 작업중지 해제 심사를 위해서는 고용부와 원하청 사용자, 원하청 노동자가 모두 참여하는 4자 논의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4자 논의 기구를 만들어 정례적으로 중대재해 방지를 위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우 의원이 정 사장에게 4자 논의 기구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지만 정 사장은 확답을 피했다. 정 사장은 "4자 논의 과정을 어떻게 할지 관련된 법과 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참여에 대해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