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학생들이 학교의 남녀공학 전환을 규탄하며 지난달 20일 시위를 했다. (사진=뉴시스)
 
기업이 사회적 이슈를 이유로 특정 대학 출신을 채용하지 않기로 한다면, 이른바 '채용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법 위반일까. 전문가들은 자사 채용과 관련한 블랙리스트는 위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채용 블랙리스트의 대상이 된 청년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어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덕여대 낙인찍기'에 취업 안 될라…학생들 불안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동덕여대 사태다. 동덕여대가 남녀 공학으로 전환될 수 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동덕여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공학 전환 반대자들은 본관 점거, 수업 거부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단체행동이 격렬해지면서 공학 전환 반대자들을 바라보는 부정적 여론이 생겼고 학생들에 대한 '낙인찍기'가 퍼졌다. "동덕여대는 거른다"는 낙인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 큰 불을 지핀 건 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의 발언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16일 개인 SNS에 "블라인드 채용제도라 할지라도 가능하다면 이 대학 출신을 걸러내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썼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실제 동덕여대 학생들은 출신 대학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동덕여대 재학생 A 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실제로 채용에 차별이 있을까 봐 상당히 불안하다"며 "법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걱정과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의적으로 동덕여대 출신을 서류에서부터 거르는 기업은 소수라고 하더라도 최종 면접까지 갔을 때 굳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학교 출신을 뽑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크다"며 "사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은 강제하지 못하더라도 불합리한 차별을 막을 대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겨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임금, 승진 등에서 많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상태"라며 "동덕여대 사태에서의 차별과 혐오는 특정 학교를 넘어 여성 자체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어 기업들의 이러한 행태가 정당화되고 수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법 제재 없는 '채용 블랙리스트'
 
기업의 채용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된 경우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마켓컬리에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일용직 중 근태가 불량한 근로자 명부를 만들어 채용대행업체와 공유하고 이들의 취업을 막는 조치를 하기도 했다.
 
이 일로 마켓컬리는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 혐의를 받았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고 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 서울동부지검은 마켓컬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서울동부지검은 마켓컬리 블랙리스트에 대해 "자사 인력 관리를 위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법 위반이 아니"라며 "자사 근로자를 채용하는 데 참고하기 위한 명부 작성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 고유의 채용ㆍ인사권 행사 범위 이내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판단해 불기소를 결정했다.
 
결국 검찰의 법 해석대로면 기업이 동덕여대 출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출신 대학만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해도 근로기준법 위반이 되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법 해석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효진 법률사무소 리연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40조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취업 활동을 통해 생존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이기 때문에 자사 채용이라고해서 이 조항의 적용을 배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검찰의 해석은 조문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도 노동법률을 통해 "검찰의 이러한 해석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지배하는 형사법의 해석론으로 탓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일용직 노동자 다수를 사용하는 마켓컬리 같은 거대기업의 경우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 수요 독점적 지위에 있어 기계적 해석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자사 채용을 위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노동법 조항은 취업 방해 금지를 규정하는 근로기준법 제40조뿐인 상황"이라며 "근로기준법 제40조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위반하면 처벌받는다. 이로 인해 검찰은 의미를 좁게 해석해 자사 채용을 위한 블랙리스트는 법 위반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여대에 대한 채용 블랙리스트를 만든다고 해도 마켓컬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처벌로 이어질 확률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채용절차법 위반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직접적인 적용이 쉽지 않다. 오 변호사는 "채용절차법은 채용상 차별에 관한 규정이 없어 특정 대학 출신에 대한 신규 채용상 차별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채용 담당자가 채용 과정에서 특정 여대를 차별하는 발언을 했다면 채용절차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직접적인 채용 업무 담당자가 아닌 사람의 발언만으로는 채용절차법 위반이 성립될 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채용 블랙리스트가 노동법에 의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성별'을 이유로 채용상 불이익을 준 경우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성별을 이유로 한 채용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대 출신'을 이유로 채용에 불이익을 주면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동덕여대 출신'을 이유로 불이익 시에는 법적 제재수단이 없다.
 
박 노무사는 "블랙리스트의 채용 차별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겠지만 특정 여대에 한정될 경우에는 남녀고용평등법 적용이 어렵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으로 어렵다면 국가인권위원회법 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채용 담당자가 특정 여대를 차별하는 발언을 했다면 국가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법상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가 되더라도 처별 규정 없이 시정 권고만 할 수 있어 기업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

고용정책기본법 위반도 고려할 수 있지만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오 변호사는 "고용정책기본법은 명시적으로 출신 학교를 이유로 한 채용상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며 "고용정책기본법 위반을 통한 사용자 제재는 어렵다"고 했다.
 
채용 블랙리스트 대안 논의는 걸음마 단계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 대안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박 노무사는 "분명 대안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논의가 쉽지 않다"며 "관련된 제도, 입법 논의 등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금 현장과 노동계에서 그와 관련된 논의는 사실상 시작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명확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하고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시행 중인 채용절차법 조사를 강화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채용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도를 통해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블랙리스트 대상 학교의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위반의 소지가 있으면 채용절차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사용자의 채용상 차별 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제재 수단과 피해자 구제 방안이 필요하다"며 "기존의 법 활용 외에 추가적인 입법적 보완도 검토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