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4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작업중지권과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쟁취를 위한 행진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엔 난관이 존재한다. 하청ㆍ비정규직 근로자는 사실상 작업중지권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고, 작업중지권을 사용했다가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작업중지권이 활성화되기 위해 노동조합 대표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일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 작업중지권 사용 실태와 해외 관련 법령의 시사점' 워킹페이퍼를 발표했다.

작업중지권, 고용형태 따른 차별 존재해

하청ㆍ비정규직 근로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경우 정규직 근로자보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2023년 8월 현대제철의 하청업체인 현대ISC 소속 근로자는 작업 중 기중기 이동레일이 파손된 것을 발견해 작업중지권을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생산라인을 중단한 뒤 파손된 레일을 수리하지 않고 다른 장소로 임시 적재하는 등 작업 방식을 변경했다. 결국 이 임시 적재 과정에서 레일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청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해도 안전보건 조치 및 생산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원청이다.
 
이 연구위원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청 노동자는 원하청 권력 관계를 고려해 작업중지권 사용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하청 노동자만이 아니라 거의 대다수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는 작업중지권 사용이 봉쇄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해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하청ㆍ비정규직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작업중지권과 관련해 별도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안전 선진국에선 작업중지권 행사에 고용형태 차별 없다

서구권 대다수의 국가들은 고용형태의 차별 없이 위험한 작업을 금지할 권한을 근로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계약직 근로자나 단기계약직 근로자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와 호주가 고용형태에 상관없이 작업중지권을 쓸 수 있는 나라다.

캐나다의 경우 근로자가 작업 중지 권한을 행사했을 때 3단계로 작업 중지 처리 절차가 진행된다.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하고 사업주에게 보고하면 사업주는 위험조사 결과와 조치한 내용을 노사협의회 또는 노조 안전 대표에게 즉각 통보해야 한다.

사업주의 조사와 조치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여전히 위험하다고 인식해 작업 복귀를 거부한다면 노사협의회는 노측 1명과 사측 1명으로 구성된 조사팀을 만든다. 노동자 입회하에 위험 작업을 조사하고 해당 결과를 사업주에게 통보한다.

만약 이러한 절차 이후에도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이어간다면 사업주는 노동부 장관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노동부의 조사를 거치게 된다.

호주는 노조가 선임한 안전 대표가 작업 중지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안전 대표가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인식하면 작업 중인 근로자에게 작업 중단을 지시할 수 있다. 다만 작업 중단 지시를 내리기 전 사업주와 협의해야 한다.

만약 안전 대표나 근로자의 작업 중지와 관련해 노사 간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 기관의 감독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한국도 산안법 개정해 작업중지권 행사 확대해야

이 연구위원은 "안전 선진국들은 노조의 안전 대표에게 작업중지권의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특히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안전 대표가 작업 복귀를 지연시킬 수 있다"며 "한국 역시 법 개정을 통해 노조 등에게 작업중지 권한을 포함해 제반 절차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안전 선진국들이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일터에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일터 내의 급박한 위험이 고용 관계를 따라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