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 서점에 챗 GPT 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사진=뉴시스)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서 노동 상담도 AI가 하는 날이 도래할지 관심이 쏠린다. 노동법률이 AI에 노동 상담을 받아본 결과 아직 구체적인 상담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노동 상담의 '특수성'으로 인해 AI의 대체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AI 통한 노동 상담, 아직 허점 많다
 
노동법률은 지난 13일 AI의 노동 상담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세 단계로 질문을 진행했다. 활용한 AI는 오픈AI의 챗 GPT와 고용노동부에서 지난달 출시한 근로감독관 AI다.
 
첫 번째는 '단답형' 질문인 '2025년 최저임금 얼마인지 알려 줘'로 시작했다. 고용부 근로감독관 AI는 "2025년 최저임금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2025년 최저임금은 2024년 중반 이후에 발표될 예정이니 그때 확인할 수 있다"고 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질문을 틀어 '내년 최저임금 알려 줘'로 수정해 다시 물어봤지만 이번에는 "해당 문의는 보안상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반면 챗 GPT는 질문에 대해 상세하고 정확한 답변을 내놨다. 챗 GPT는 "2025년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2024년에 9860원에서 약 1.7% 인상된 금액"이라며 "8시간 근무 기준 일급 8만240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 209만1290원"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를 묻자 근로감독관 AI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요건에 대해 설명했다. 근로감독관 AI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피보험 단위 기간이 이직일 이전 18개월 동안 합산 180일 이상이고 자발적 퇴사 등 고용보험법이 정한 수급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업 상태에서 적극적인 재취업 노력을 하고 관할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방문해 실업 신고, 구직 신청, 수급 자격 인정신청을 해야 한다"며 "고용센터에서 실업 상태와 구직활동이 인정돼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챗 GPT는 이번에도 상세한 답변을 내놨다. 근로감독관 AI가 답한 실업급여 수급 요건에 더해 챗 GPT는 "실업급여 수급을 준비하기 위해 고용보험 홈페이지나 고객센터(1350)을 통해 고용보험 가입 이력을 확인할 수 있고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접속해 수급 자격 신청자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고 수급 자격 인정 신청서, 이직확인서, 신분증, 통장사번, 퇴사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업급여는 평균 임금의 60% 수준으로 지급되고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120일에서 270일 간 지급된다"며 "매달 구직활동 보고를 하지 않으면 지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근로감독관 AI와 챗 GPT의 답변 내용은 정확했다. 고용보험법상 실업급여를 수령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피보험 단위 기간이 이직일 이전 18개월 동안 합산 180일 이상이고 자발적 퇴사 등 고용보험밥상의 수급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챗 GPT가 답변한 고객센터 번호(1350)와 제출 서류 목록도 정확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평균임금의 60%인 점도 법과 일치했다.
 
마지막으로는 '사례형' 질문을 던졌다. '2023년 9월 11일에 입사해서 2025년 1월 2일에 퇴사했고, 퇴직 전 3개월간 임금은 660만 원인데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퇴직금은 얼마고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상황에 대해 AI에게 물었다.

근로감독관 AI는 체불 대응 방안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퇴직금 액수만 282만4363원이라고 답했다. 근로감독관 AI에게 체불에 대한 대응 방안을 듣기 위해서는 별도로 '퇴직금을 못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추가 질문을 해야 했다.

근로감독관 AI는 이에 대해 "회사에 공식적으로 지급을 요청한 뒤 지방노동청에 임금체불로 신고하면 노동청이 조사를 거쳐 지급명령을 할 수 있다"며 "노동청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지급 시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퇴직금 지급이 지연된 경우 퇴직일로부터 14일이 지난 후부터 법적으로 연 20%의 지연이자를 청구할 수 있다"며 지연이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챗 GPT는 체불된 퇴직금 액수가 약 289만 원이라고 답해 근로감독관 AI와 다른 답변을 내놨다. 퇴직급여법에 따른 정확한 퇴직금 액수는 고용부 근로감독관 AI의 282만4363원이다. 사례의 퇴사일은 2025년 1월 2일로 직전 3개월 중 31일인 달이 2번 있어 3개월 임금 총액을 92일로 나눠야 퇴직금 계산을 위한 올바른 평균임금이 나온다. 그러나 챗 GPT는 직전 3개월 중 31일인 달이 몇 번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3개월 임금 총액을 90일로 나눠 오차가 발생했다.

챗 GPT가 설명한 대응방법은 근로감독관 AI와 같았고 "퇴직금 청구는 퇴사 후 3년 이내에 해야 한다"는 설명만 추가됐다.
 
대응방법에 대한 근로감독관 AI와 챗 GPT의 설명은 정확했다. 고용노동청은 체불 사업주에 대해 지급명령서를 발급할 수 있고 퇴직금 체불에 대한 지연이자는 14일 후부터 연 20%가 붙는다. 퇴직금의 소멸시효도 3년이다.

배동희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AI의 수준이 아직 노동 상담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며 "기존 인터넷 검색에서 조금 개선된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AI를 통한 노동 상담은 다양한 방안 제시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며 "질문에 대한 지식적인 답변만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하은성 샛별 노무사사무소 대표 공인노무사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인지하는 폭이 너무 좁고 정해진 구조에 따른 답변만 하는 수준"이라며 "아주 기초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는 어렵다"고 했다.

노동법 특성상 대체까지는 시간 걸릴 듯

아직 AI의 노동 상담이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는 AI를 활용하는 전문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세환 노무법인 태광 대표 공인노무사는 "아직 AI가 정교하지 않아 고객을 위한 법적, 경영적 검토에 높은 신뢰를 담보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주변 노무사들을 보면 최종 검토, 완수를 위해 AI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시간적 절약 효과가 있어 한번 사용하면 계속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만 사람과 관계된 노동 상담의 특성상 AI가 사람을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기 노무사는 "노동 상담은 단순한 법적 검토 외에 사람들의 만족도를 이해하고 이를 결합해 이루어져야 한다"며 "이런 부분에서 AI가 노동 상담을 하기에는 아직 그 수준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노동법 고유의 특성으로 AI가 노동 상담을 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 노무사는 "노동법은 다른 법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 과정에서 새로운 법리가 나왔다"며 "AI가 이러한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해당 쟁점에 대한 관련 판례만 찾아 기존 체제 내에서 답을 내린다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비임금 노동자가 증가하고 노무관리 방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AI는 이런 맥락 이해 없이 사실관계에 대한 원론적인 상담에 그칠 가능성이 있어 한계가 있다"고 했다.

변협은 AI 법률상담 제재…노무사회는 "아직 제재 검토 단계 아냐"

법조계의 경우 법무법인이 법률상담 AI를 출시하자 이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최초의 대국민 법률상담 AI인 'AI 대륙아주'를 선보였지만 출시 7개월 만에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징계를 받아 서비스를 종료했다.

변협은 지난달 18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하고 AI 대륙아주를 주도적으로 계획한 김대희ㆍ이규철 대표 변호사와 AI 서비스를 광고한 강우경 변호사에 대해 과태료 500만 원을 결정했다.

변협은 법률 AI에 대해 "비변호사인 AI의 수익 활동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어 AI 법률상담 등 대국민 서비스를 허용할 수 없다"며 "AI 법률상담이 청년ㆍ개인 변호사 시장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했다.

다만 아직 한국공인노무사회는 노동 상담 AI에 대한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배 부회장은 "AI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노무사회 차원에서 제재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면서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처럼 AI 상담을 규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 노무사는 "노동 상담 AI에 대해 규제를 한다면 규제를 통한 효과가 종국적인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규제가 생긴다고 해도 의미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규제보다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려할 시기"라고 했다.

하 노무사도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AI 노동 상담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며 "AI를 구체적인 사실관계 정리, 세부 쟁점에 대한 주장과 증거자료 정리 등을 위해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