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연휴 전날임에도 한산한 서울 시내 먹자골목(사진=뉴시스)
 
한국 경제가 올해부터 경제성장률 1%대의 저성장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각자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경영계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노사관계를 안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 인력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 모두 고령 인력 활용과 노사관계 안정화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ㆍ한은, '1%대 저성장' 경고…"노동시장도 변화해야"

정부는 지난 2일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당시 전망한 2.2%에서 0.4%p 감소한 수치다.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기에 진입할 거라는 경고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나왔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9일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이슈 페이퍼'를 통래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저성장에 진입할 것을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향후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025~2029년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44년 0.7% ▲2045~2049년 0.6%로 예측했다.
 
2000년 이후 한국 경제가 2% 미만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0.8%)과 코로나19 사태가 있었던 2020년(-0.7%)뿐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경제 위기 없이 연속적인 1%대 경제성장률을 전망한 것은 21세기 들어 처음인 셈이다.
 
한국은행은 이 유례없는 저성장 원인으로 '총요소생산성 하락'을 꼽았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생산성, 근로자의 업무능력, 자본투자금액, 기술도 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를 말한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경제의 저성장은 혁신 부족, 자원 배분 비효율성 등으로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지는 가운데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성숙기 진입에 따른 투자 둔화 등으로 노동ㆍ자본 투입 기여도까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정책 개선 등으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기간의 평균치를 회복할 경우 예상 잠재성장률보다 0.7%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경제의 저성장을 경고하며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창우 KDI 연구부원장은 지난달 11일 '한국경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 방안 컨퍼런스'에 참석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를 달성했지만 전체 성장 동력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며 "특히 총요소생산성이 빠르게 하락 중이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 서비스업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생산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경직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섭 KDI 재정ㆍ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도 "우리 경제가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 재편ㆍ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동시장 이중구조ㆍ경직성 개선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경영계 "불확실성 높을수록 노동시장 유연화 필요"
 
경영계는 대내외적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했다며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협력본부장은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과 통상 전망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고 내수 경기도 좋지 않다"며 "경제의 불확실성이 점점 더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변화에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출 중심인 우리나라에 수출기업 중 한계기업 비율이 늘어난 것도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으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을 수 없는 기업을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지속 성장 이니셔티브(SGI)가 지난해 8월 발간한 '수출기업의 노동생산성 둔화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중은 2010년 5.5%에서 2022년 10.9%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김천구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한계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 여력이 없고 노동과 자본 등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왜곡해 정상기업의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수출 기업들이 한계기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사업재편을 통해 대내외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인력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본부장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법에 예외 규정을 많이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 본부장은 "우리 노동법은 근로시간을 비롯해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근로조건과 노사관계를 규율하고 있다"며 "산업별, 지역별로 상황이 다 다르고 특히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는 획일적인 노동법이 기업과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노동법에 업종별, 지역별 예외 조항을 둘 필요가 있다"며 "환경 변화에 기업이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영계가 요구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근로시간 유연화다. 경영계는 특히 인력이 부족한 첨단산업 연구 분야에서는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초격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 기술 연구 분야 부족 인력은 2019~2023년 800명에서 2024~2028년 4만7000명으로 60배 넘게 증가할 전망이다.
 
장 본부장은 "근로시간제 유연화는 단순히 장시간 노동을 해서 성장률을 높이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력 부족 등 기업의 상황과 산업 구조에 맞게 필요할 때 더 일해서 위기를 극복해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나친 노사분규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사전 예방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본부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불필요한 노사 분규는 최소화돼야 한다"며 "정치 불안정으로 올해 정치파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사관계에 악영향만 주는 불필요한 정치파업은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노사 분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노조의 불법적인 파업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며 "불황기에 노조의 과도한 요구도 지양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일자리 나누기ㆍ고령 인력 활용"
 
반면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저성장의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은 "지금은 근로시간 유연화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고민할 시점이 아니"라며 "오히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도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선택권 보장이 우선돼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근로시간 유연화보다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숙련 고령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본부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정년 연장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며 "정년이 연장돼야 생산성이 높은 숙련 기술을 가진 고령 인력이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비력이 높은 고령 인력에 대한 급여 삭감도 금지돼야 경제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미 법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어 이에 맞게 고령 인력에 대한 부당한 급여 삭감도 금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높아진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노동법 예외 조항을 늘려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유 본부장은 "노동법에 예외 조항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이라며 "노동법 규정이 명확하고 획일적이어야 해석 분쟁이 줄어들어 노사 분규, 소송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고령 인력 활용ㆍ노사관계 안정화' 공감대 불구 노사 해법 달라
 
노사 간 입장 차가 분명한 상황이지만,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도 있다. 경영계도 노동계가 주장하고 있는 고령 인력 활용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이다. 대한상의 SGI가 지난해 7월 발간한 '고령층 일자리의 재발견 보고서'에서 대한상의는 "최근 고령 인력은 질적 수준이 높고 건강 상태가 양호해 젊은 인력과 유사한 생산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경영계는 고령 인력 활용 확대를 위해 정년 연장이 아닌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양수 대한상의 SGI 원장은 "현재 국내 노동시장은 생산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임금체계 등으로 고령층 고용 확대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며 "기업들이 고령층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유연한 근무 형태를 개발하고 직무급제로의 개편이 절실하다"고 했다.
 
노동계도 저성장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관계가 안정돼야 한다는 경영계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러나 해법은 달랐다. 이 실장은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 혁신과 노사관계 안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노사관계 불안정의 책임은 노사관계를 일방적으로만 풀어가려고 하는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성장으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노사관계가 안정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사 분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그만해야 한다"며 "불황이니 노동자가 양보하라는 일방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정말 노사정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