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사진=뉴시스)
 
현대자동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련 소송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로선 기아와 현대모비스로 소송이 번질 조짐도 보여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효력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이 분쟁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길어지는 파기환송심…지난해 변론기일도 안 열려
 
2004년 현대차는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게만 적용되는 별도의 취업규칙을 제정했다.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기존 취업규칙에 있던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일수를 제한하는 등 근로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어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시행하려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전체 간부사원 89%의 동의로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시행했고, 이에 반발한 간부사원들이 법원에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판결은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해당 판결에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못해도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변경은 유효하다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했다.
 
전원합의체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다만 근로자가 동의권을 남용했다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도 유효하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심리 중인 파기환송심의 주요 쟁점은 '근로자의 동의권 남용'이다. 현대차 측은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2004년 주5일제 도입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연월차휴가제도의 조정을 위한 것"이었다며 "이를 위해 노조와 협의를 시도했지만 실패해 노조가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것으로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 측은 "2004년 임금협상이 7월에 마무리됐고,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8월에 제정됐다"며 "회사는 연월차제도 변경에 대해서만 대화를 요구했을 뿐 간부사원 취업규칙 도입은 논의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노사 간 양측 대립이 첨예해 파기환송심 재판은 길어지는 양상이다. 2023년 5월 재판이 시작됐지만 아직 사건은 심리 중인 상태다. 지난해에는 변론기일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2023년 11월이 마지막 변론기일이었다.
 
현승건 현대차노조 일반직지회 전 지회장은 "파기환송심 사건 심리가 계속 길어지고 있다"며 "현재 재판부에 기피 신청을 했었고, 이후에는 최근까지 변론기일이 잡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소송 다수 진행…근로자 측이 파기환송심 주목하는 이유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쟁점이 돼 연차수당, 임금피크제, 통상임금, 휴일 차별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등 다수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들 소송은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확률이 높다.
 
이환권 법무법인 이현 대표변호사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간부사원 취업규칙 효력 유무가 달라져 관련 소송의 결과가 다 달라질 것"이라며 "근로자 측이 승소하면 추가적인 소송도 더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 측도 파기환송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현승건 전 지회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23년 사회 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했고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효력이 달라져 관련 소송도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했다.
 
능력ㆍ업적 상여금의 통상임금성과 연차수당 소송은 항소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서는 근로자 측이 간부사원 취업규칙의 무효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현대차가 승소했다. 이 변호사는 "근로자 측이 패소한 관련 소송이라도 파기환송심에서 근로자 측이 승소할 경우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한 근로자 측에선 지난달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기존 취업규칙과 달리 7일의 유급휴일을 삭제했다며 휴일 차별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도 제기했다.
 
임금피크제 소송도 간부사원 취업규칙이 원인이 된 소송이다. 현대차는 2004년 간부사원 취업규칙을 도입하고 2015년 해당 취업규칙에 임금피크제 규정을 추가했다. 근로자 측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자체가 제정 당시부터 위법했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자 측이 파기환송심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이 노사 합의로 끝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현 전 지회장은 "남은 관련 소송에서 회사와 합의해 사건이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사측과의 협의라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소송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과 회사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회사를 상대로 다수의 소송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명예사원증을 받지 못한 간부사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17억 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명예사원증은 25년 이상 장기 근속한 퇴직자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현대차 차량 25% 할인, 수리 시 부품 가격 3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이 명예사원증을 받지 못하거나 효력이 정지되자 근로자들은 2017년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원회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명예사원증을 발급받지 못하거나 효력이 제한되는 것은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정한 재판청구권과 권리구제신청권을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라며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현 전 지회장은 "명예사원증과 관련해 현대차는 사서명위조 등으로 근로자들을 강압해 소송 참여를 막아왔다"며 "관련해 간부사원과 회사와의 갈등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아 간부사원 소송도 이어져…현대모비스도 참여할까
 
간부사원 취업규칙은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와 현대모비스에서도 동일하게 문제가 되고 있다.
 
현 전 지회장은 "기아는 물론 현대모비스도 간부사원 취업규칙에 대해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 간부사원들과 접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대차 간부사원 재직자들은 물론 같은 쟁점을 가진 기아, 현대모비스에도 영향을 주고 금액적으로도 크기 때문에 사건의 파장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같은 쟁점을 가진 기아 간부사원들도 임금피크제 소송과 휴일 차별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 나선 상태다.
 
소송을 제기한 기아 간부사원 출신 조대호 현대자동차그룹 사람존중 간부사원노조 전 위원장은 "기아 간부노조들도 현대차와 사실상 같은 쟁점으로 소송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현대차와 달리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구심점이 없어 지지부진한 상황이지만 추가적인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기아, 현대모비스에서도 추가적인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변호사는 "현대차 재직자들은 물론 기아와 현대모비스 간부사원들도 소송에 참여하고 싶지만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관련 소송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망설이는 경우들이 많다"며 "파기환송심에서 근로자 측이 승소한다면 소송에 참여할 근로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