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장재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1. 들어가며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이하 '직장 내 괴롭힘 등'이라 한다)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그와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등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 등을 보상받기 위해 위자료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 등의 가해자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한 판결이 존재한다. 이 같은 판결의 내용을 검토해 직장 내 괴롭힘 등과 관련해 사용자가 유의해야 할 시사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2.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3다276823 판결)

대법원 2024. 11. 14. 선고 2023다276823 판결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용자의 신고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 사안에서 가해자 A는 부하 직원이었던 피해자 B에게 회사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며 A의 자택으로 오라고 했다. 이에 B는 A의 자택을 방문해 A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 과정에서 A가 B를 강간하려고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B는 회사에게 A로부터 강간미수의 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했다. 그에 따라 실시된 면담 과정에서 A는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용관계가 강제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징계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회사의 입장에 따라 면담 당일 사직서를 제출해 사직 처리됐다.

이와 관련해 B는 회사가 A를 사직 처리한 것은 관계 법령이 정한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 대법원 판결의 원심인 항소심 판결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에게 취해야 하는 '필요한 조치'로 반드시 징계 절차만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고, 고용노동부가 발행한 실무 매뉴얼 등에 따르더라도 비공식 절차를 통한 분쟁 해결이 배제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회사로서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법 제도 및 직장 내 제도와 절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신고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해 신고인 스스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 B가 불가피한 경우 일정 정도 비밀이 공개되는 것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징계 절차를 거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음에도, 회사는 공식적인 징계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비밀보장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공식적인 징계 절차에 회부될 경우 피해가 공개될 염려가 있다는 점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무징계 사직을 받아들일 것을 사실상 강권했고, 이로써 회사가 다양한 선택지의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는 B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회사의 취업규칙과 성희롱 지침 등에 따르더라도, 회사로서는 성폭력 행위를 저지른 A를 상벌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처분을 받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징계 절차를 생략하고 A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임의 사직으로 처리했으므로, 회사가 남녀고용평등법상의 필요한 조치를 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한편, 구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5항 후단은 "사업주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은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은 "피신고인에 대한 조사 단계는 양측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가능한 해결 방향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하면서, 조사 진행 상황을 신고인에게 알려 주도록 지시하고 있다. 회사가 B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채 B에게 단순히 A가 사직서 제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만을 전달함으로써 의견 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회사는 "B 측 요청하에 기밀 보장을 최우선으로 해 징계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A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처리한 것"이라는 취지의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B가 A에 대해 징계 절차를 거치지 않는 데 동의하는 듯한 의사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유도가 있었으므로 이 같은 입장 발표 역시 적절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이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에 대한 징계 절차 회부 없이 사직 처리한 것과 관련해 회사에게 지급을 명한 손해배상 금액은 300만 원이었다.

3. 캐디 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골프장 운영 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대법원 2024. 5. 17. 선고 2024다207558 판결)

대법원 2024. 5. 17. 선고 2024다207558 판결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캐디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골프장 운영 법인에게 사용자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 사건의 피해자 C는 골프장 운영 법인이 운영하는 골프장의 캐디였는데, 소위 '캡틴'이라고 불리며 캐디들을 통솔,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골프장 운영 법인 소속 직원 D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D는 다른 캐디들도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C에게 지시를 하면서 "뚱뚱해서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뛰어"라거나 "오늘도 진행이 안 되잖아. 오늘도 또 너냐"는 등 C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공개적으로 C를 질책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캐디들은 D로부터 질책을 받으면 "네" 또는 "죄송합니다"라고만 대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로 질책 또는 벌칙을 받게 되므로 C가 D에게 항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C가 경기팀 소속 직원과의 분쟁으로 인해 D의 질책을 받고 그날 저녁 캐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곧바로 글이 삭제됐다. 이후 C는 카페에서 탈퇴됐는데, 이 카페엔 캐디가 근무하는 데 필요한 자료, 출근표 등이 게시돼 이에 접속하지 못하면 캐디로 근무할 수 없어 사실상 C는  당해 골프장에서 캐디로 근무할 수 없게 됐다.

C는 기숙사에서 짐을 찾아가면서 D를 만나 사직원을 제출했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원심 판결은 먼저 당해 골프장의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이들이 어느 정도 사용종속적인 관계에서 골프장 운영 법인에게 노무를 제공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캐디의 주된 노무인 경기 보조 서비스 용역의 상대방은 캐디 피를 직접 지급하는 골프장 이용객이라 할 것이고, 골프장 운영 법인에게 직접 제공되는 일부 노무의 목적은 골프장 운영 법인으로부터 이 사건 골프장의 출입 및 이용 권한인 출장 기회를 제공받는 대가로 부수적으로 수행되는 것이지 임금을 목적으로 한 노무 제공으로 볼 수 없으므로 골프장 운영 법인이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어, 캐디들은 국가의 관리·감독 아래 근로기준법상의 각종 보호 제도를 반드시 전면적으로 적용해야 할 정도로 직접적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노무제공자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판결은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책임에 대한 법리, 즉 민법 제756조에 규정된 사용자 책임의 요건인 '사무 집행에 관해'라는 뜻을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 활동 내지 사무 집행 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여질 때에는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이를 사무 집행에 관해 한 행위로 본다고 판단했다. 또한 골프장 운영 법인의 손해배상 책임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 집행에 관련된 것인지의 여부는 피용자의 본래 직무와 불법행위와의 관련 정도 및 사용자에게 손해 발생에 대한 위험 창출과 방지 조치 결여의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 등 참조).

이어 ①골프장 운영 법인 소속 경기팀 직원인 피고 D는 경기 진행 중에 무전으로 C에게 모욕적인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했으므로 다른 경기팀 직원이나 캐디들도 이를 들어 알 수 있었던 점, ②C는 D로부터 질책을 받고 특히 기숙사에서 퇴실할 무렵에는 동료 캐디들에게 D에 대한 감정이나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2020. 8. 28.경에는 D에게 항의하는 취지의 인터넷 게시판 글까지 남겼던 점, ③그럼에도 골프장 운영 법인은 C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 소속 직원은 C가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을 삭제하고 C를 인터넷 카페에서 탈퇴시킨 점 등의 사정을 근거로 골프장 운영 법인이 D의 사무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그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이 골프장 운영 법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골프장 운영 법인은 가해자인 D와 공동해 C의 유가족인 망인의 모친에게 약 1억620만 원을, 언니에게 2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부담하게 됐다.

4. 시사점

먼저 첫 번째 대법원 2023다276823 판결과 관련해,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등의 가해자를 사직하는 형태로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에 있어서 항상 사용자가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대법원 판결의 원심 판결 역시 직장 내 성희롱이 확인되는 경우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사업주가 취해야 할 조치로 반드시 징계 절차만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시했다.

다만 이 판결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 등이 확인되는 경우 ①사용자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법 제도 및 직장 내 제도와 절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②신고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해 신고인 스스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 피해자(신고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가해자의 사직 의사표시에 따라 사직 처리하고자 하는 경우 피해자가 사용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징계 조치를 요구하는 것 외에 취할 수 있는 형사 고소 등의 조치를 취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피해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대법원 2024다207558 판결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 사용자 소속 직원이 괴롭힘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 사용자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에 시사점이 있다. 민법 제756조 제1항 단서는 '사용자가 피용자의 선임 및 그 사무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한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해도 손해가 있을 경우' 사용자 책임을 면책하도록 하고 있는데, 실제로 면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담당하는 직원들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괴롭힘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들이 실시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