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제 네트워크는 29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주4일제 총선공약 채택 촉구 노동ㆍ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특별법의 주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에 대한 논란이 노동생산성에 대한 격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경제협력기구(OECD) 38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 수준인데,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거나 늘리는 방법 또한 재고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른 것이다.
야권과 노동계는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주장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시간은 단축해야 할 것"이라며 주4일제를 제시한 바 있었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총노동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총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분모가 커져 시간당 노동생산성의 값은 작아진다.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총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총노동시간을 늘려 총생산량을 늘리고 그 결과 GDP을 늘려 분자를 키우는 방식으로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높이자는 주장이 존재한다. 전체 아웃풋을 늘리는 것이 노동생산성을 키우기에 가장 용이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공통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외 해법으로 생산성 높여야"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히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노동시간을 늘리면 전체 생산량은 늘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노동생산성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주희 교수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면 회사는 기술 혁신, 설비 교체 등으로 생산성을 높이려고 한다. 그런 노력들이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을 늘이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주희 교수는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가 없는 회사보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희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 '노동시간을 늘리면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하는 이유는 노동시간을 늘리면 이윤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맞지만 노동생산성과 이윤이 항상 정비례관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주희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남긴다고 봤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또한 노동시간보다 기술적 혁신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다.
이지만 교수는 "노동생산성이 노동하는 사람의 능력과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은 맞지만 어떤 기자재를 사용하냐가 더 중요하다"며 "실질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 투자"라고 말했다.
"유연화 필요한 직종 따로 있다"
한편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한 직종이 존재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최근 여야 간 쟁점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반도체특별법이 대표적이다. 반도체특별법엔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연구ㆍ개발 근로자에 한해 주52시간 초과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지만 교수는 "사람은 기계처럼 일할 수 없기 때문에 보편적으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맞지만, 반도체특별법의 경우는 좀 다르다"며 "고도화된 정신적인 일을 하는 연구ㆍ개발 직종의 경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더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지만 교수는 "정신력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가 노동이다. 항상 과로하자는 게 아니라 잘 풀릴 때 집중해서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면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만 교수는 "노동시간을 늘린다는 비판도 있을 것이다. 반도체특별법을 시행할 때 연구자가 연장해서 근로할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된다"며 "연구직이 더 일하고 싶을 때 일하지 못하는 것은 노동생산성 손실"이라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