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김대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1. 들어가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2024년 말까지 30건이 넘는 법원 판결이 이루어졌다. 위 판결들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사항은 단연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 절차를 마련하고, 점검을 실시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다(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 같은 법 시행령 제4조 제3호 본문). 다만,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 따른 위험성 평가 절차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실시한 위험성 평가 결과를 보고받는 경우에는 업무 절차 마련 및 점검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3호 단서), 현행 실무상 적지 않은 기업들이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위험성 평가의 방법, 절차 및 시기 등에 관한 기준은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고용노동부 고시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지침(이하 지침)에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치한 법리가 정립됐다고 보기 어렵고, 그에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할 위험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위험성 평가와 관련된 주요 쟁점들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위험성 평가의 주체 : 도급관계를 중심으로

고시 제5조는 사업주에게 스스로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평가해 관리 개선하는 등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제1항),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라 작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급에 의해 행하는 사업의 경우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는 각각 위험성 평가를 실시해야 하고(제2항), 도급사업주는 수급사업주가 실시한 위험성 평가 결과를 검토해 도급사업주가 개선할 사항이 있는 경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항).

여기서 고시 제5조 제2항이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각각'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한 취지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수급사업주의 경우 소속 근로자의 작업이 있고, 도급사업주의 경우 설령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도급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및 시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고 있고 이를 변경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는 각자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과 환경에 차이가 있고, 이에 내재돼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유해·위험 요인의 내용 또한 다른 경우가 보통이다. 따라서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중첩적으로 이를 확인·평가하도록 하고, 도급사업주는 수급사업주의 위험성 평가 결과를 검토해 스스로 개선하거나 수급사업주에게 보완을 요청하도록 함으로써, 가급적 빠짐없이 유해·위험 요인의 점검·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취지를 감안한다면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의 위험성 평가 진행이 반드시 엄격하게 구분돼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 사업주가 공동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수급사업주가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영세한 경우에는 위험성 평가 공동 실시를 통해 수급사업주의 위험성 평가 실시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실제 고용부도 사업장 상황에 따라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함께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도급사업주 및 수급사업주 모두 그 내용을 실시규정에 따라 위험성 평가 결과로 관리한다면 각각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근 관리감독자 중심의 안전보건 관리 가이드라인에서도 도급사업주가 해당 현장을 관리하는 현장책임자와 수급사업주가 공동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할 수 있고 이 경우 각각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교법적으로도 영국의 경우 도급사업주로 하여금 수급사업주와 함께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공동으로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만, 도급사업주와 수급사업주가 공동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위험성 평가 실시 과정에서 도급인 근로자가 수급인 근로자에게 작업 내용과 방법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근로자파견관계로 오인되지 않게끔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3. 위험성 평가의 대상

고시 제5조의2 제1항은 위험성 평가의 대상이 되는 유해·위험 요인을 '업무 중 근로자에게 노출된 것이 확인됐거나 노출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모든 유해·위험 요인'으로 정의하는 한편, 매우 경미한 부상 및 질병만을 초래할 것으로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업무 중'은 매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뿐만 아니라 임시·수시로 하는 작업을 포함하고, '매우 경미한 부상 및 질병만을 초래할 것으로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는 특별히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지 않고 업무에 바로 복귀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고용부는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유해·위험 요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별도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는 과거의 산업재해 및 아차사고, 사업장 내 기계·기구·설비, 유해인자, 위험 작업 장소 및 작업 내용 등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이들을 파악해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향후 합리적 예견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인지를 판단할 때 고려될 수 있는 사정들로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가 다퉈지는 사건 중에는 해당 중대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된 유해·위험 요인을 경영책임자가 예견할 수 있었는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다수 있다. 이때 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이례적인 또는 정해진 방법을 위반한 작업 수행으로 재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단지 기계·기구·설비 등을 제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 '예측 가능한 오사용(Reasonably Foreseeable Misuse)'에 해당해 위험성 평가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고 판단 받을 가능성도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4. 위험성 평가 절차 : 위험성 추정 및 결정을 중심으로

종전 고시는 위험성 평가 절차를 '사전 준비→유해·위험 요인 파악→위험성 추정→위험성 결정→위험성 감소 대책의 수립·실행→기록'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험성의 빈도(가능성)와 강도(중대성)를 계량적으로 계산해 위험성을 추정 및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이해하기 어렵고 안전·보건 자원이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2023년 5월 개정된 고시는 위험성 평가 정의에서 "유해·위험 요인에 의한 부상 또는 질병의 발생 가능성(빈도)과 중대성(강도)을 추정·결정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유해·위험 요인의 위험성 수준을 결정한다'고만 정하는 한편(제3조 제1항 제3호), 위험성 평가 절차에서 위험성 추정 단계를 삭제했다(제8조 제3호).

그런데도 중대산업재해 수사 또는 위험성 평가 특화 점검 과정에서 위험성 평가가 부실하게 이루어져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미이행에 이르게 됐음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성 추정 및 결정의 적정성 여부를 문제 삼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빈도나 강도에 관한 수치 또는 허용 가능한 위험성의 정도가 너무 낮아 위험성 감소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논지가 가장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 진행은 계량적인 산출을 통한 위험성 추정 및 결정이 위험성 평가 실시를 어렵게 만드는 문제점이 있어 쉽고 간편한 위험성 평가를 지향하는 현행 산업안전보건 정책방향과 모순되는 문제가 있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대다수의 국제적인 위험성 평가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은 위험성 추정 및 결정의 방법을 개념적인 수준에서만 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비춰 본다면, 위험성 추정이나 결정을 근거로 위험성 평가 실시가 부실하게 이루어졌음을 끌어내려는 수사 실무는 재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맺음말

현재 위험성 평가는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산업재해 예방 및 재발 방지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험성 평가 실시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위험성 평가 실시 결과에 대한 공유가 강조되는 등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종전에는 별다른 제재가 없던 위험성 평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통해 형사처벌 여부를 좌우하는 지표로 기능하게 되면서, 오히려 위험성 평가 실시의 진정성이 퇴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하에 위험 요인을 발견하고 관리하는 본래 취지는 퇴색되고,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실시와 서류 작업에 치중하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고시를 준수했는지에 매몰되기보다, 객관적인 위험 상황과 내용에 기초해 실효적으로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두는 방향이 정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