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사진=KDI)

한국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로 '노동생산성'이 떠올랐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해 12월 '한국경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 콘퍼런스에서 "노동과 자본이라는 요소 투입에 의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사회 전반의 생산성 향상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원장의 이 같은 진단엔 노동생산성이 노동개혁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겼다. 어찌 보면 '교과서적'인 주장이지만,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 원장은 "임금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해진 반면, 노동생산성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진 것 같다"며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법률이 지난 3월 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근처 카페에서 조 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는 무엇인가.

A. 노동시장 문제라고 하면 그 영역이 좁아 보이지만, 사실 인생의 모든 영역이 노동 문제와 얽혀 있다. 보통 사람들 입장에선 경제 활동을 시작하고 은퇴할 때까지 삶 대부분이 노동시장과 연결돼 있다. 그런 만큼 노동시장 문제를 한두 개만 꼽기는 어렵지만,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노동시장 안에서 오래된 관습과 낡은 법제도, 이에 따른 부작용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Q. 노동개혁에 노동생산성 논의가 빠져 있다는 지적을 했다.

A. 앞에서 이야기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앞에서도 노동'시장'의 문제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최근 노동시장의 문제를 '노동 계약' 혹은 '경제 계약'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고 경력이 오래될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주장하는 건 노동생산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노동시장 담론, 사회적 논의에서 노동생산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보통 사람들에게 노동생산성이란 말이 생경할 수 있지만, 기업에 소속돼 일하는 근로자라면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에 본인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생산에 대한 기여와 보상(임금)이 연결되지 않으면 근로자로선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이 연결이 최근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임금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해진 반면, 노동생산성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 팽배해진 것 같다.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Q. 그렇다면 그동안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왜 노동생산성이 중심이 되지 못했을까.

A. 노동생산성이라는 말을 꺼내면 불편해하는 누군가가 생긴다. 노동생산성을 높이자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더 노력하라는 이야기로 들리는 거다. 그런데 근로자 중에선, 소위 2030세대로부터 '일 잘하고 성과를 낸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받게 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본인의 노력과 기여를 인정해 주지 않고 나이가 많다고 돈을 더 주는 게 공정한 거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노동시장 안에서 생산성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려고 할 땐 근로자 개개인의 노력이 함께 동반돼야 한다. 그럼 그 노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를 생각해 보자. 생산성을 높여 일을 하면 근로자 본인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근로자가 느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근로자가 열심히 일하고 그런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 우리나라의 생산성이 개선될 것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사진=KDI)

Q.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근로자 개개인만의 책임과 몫은 아닐 텐데.

A. 근로자 개개인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제도와 관습을 만들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예는 '법'이다. 우리나라 노동법 중에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법들이 많다. 가령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라든지. 

인공지능(AI)의 등장부터 시작해서 산업 환경은 빠르게 바뀐다. 그만큼 적응도 빨리, 대응도 빨리해야 하는데 기업이 뭘 바꾸려고 하면 제동이 걸린다. 규칙을 바꿀 땐 그 규칙 변경으로 기존의 것을 잃는 사람이 반드시 발생하게 된다. 그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가피한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를 막는 게 20년 전, 30년 전 만들어진 법이다. 이미 취업에 성공해서 노동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Insider)다. 특히 대기업, 노조가 있는 사업장 소속이면 어떤 의미로는 기득권자인 것이다. 인사이더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갖고 있는 걸 내놓기 싫은 거다.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제 변화는 불가피하다. 엄청난 혁신을 일으킨 해외 기업가들이 한국에서 나왔으면 다 법 위반자들이다. 주52시간을 지키면서 어떻게 그런 혁신 기업이 한국에 나올 수 있겠나. 국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건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비생산적인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모든 개개인이 어느 하나 잃지 않으면서 발전을 이룬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Q. 그간의 노동개혁에 답답함을 많이 느낀 것 같다. 지금의 노동개혁에 필요한 제언을 한다면.

A. 답답함을 느낀다. 노동개혁이라는 게 결국 노동시장 안에 있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사가 반영되도록 만들어져야 하는데,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정치화돼서 한쪽 방향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기본적인 노동개혁 방향은 지금의 경직적인 법제도를 완화하고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법제도를 만드는 사람들, 이를 해석·집행하는 사람들이 국가가 노동시장을 어디까지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끓는 물 안에서 천천히 죽어 가고 있다. 지금 당장 망하지는 않겠지만, 10년, 20년 뒤를 내다봤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이걸 다시 말하면,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금 만든 대책도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안 나타날 수도 있다. 근데 지금 안 하면 정말 늦는다. 우리 사회가 아픈 만큼 성숙해지길 바란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