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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3. 정기상여금에 대한 '재직 조건' 문제

⑵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의 위법성

1) '재직자 조건'의 법적 성질

정기상여금의 지급 약정에 붙은 '재직자 조건'의 법적 성질과 관련해서는 ①재직자 조건을 본래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정해져 있는 임금채권을 소멸시키는 조건으로 보는 견해와 ②재직자 조건을 임금의 구성항목, 지급 방법 등을 정해 둔 것이거나 개별 수당의 지급조건을 정함으로써 임금채권의 내용을 구체화한 것일 뿐, 이미 발생한 임금청구권의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조건이 아니라 조건이 성취돼야 청구권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을 이미 발생한 임금채권을 사후적으로 상실시키는 해제 조건으로 이해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조건이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재직자 조건을 임금채권을 발생시키기 위한 요건(要件)으로 이해하거나, 임금채권의 발생을 위한 정지 조건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두 견해의 기본적인 차이는 재직자 조건이 무효가 되는 경우 전자에 의하면 무효인 해제 조건이 붙은 기본계약은 조건 없는 계약이 될 것이나 후자인 재직자 조건을 임금채권을 발생시키기 위한 요건(要件)으로 이해하는 입장에 따르면 재직자 조건이 무효로 되는 경우 기본계약의 구성 부분의 일부가 무효로 되는 것이므로 무효 행위의 전환 법리에 따라 무조건적인 지급 약정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기본계약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①설·추석 상여금이나 하계 휴가비, 선물비, 생일자 지원금 등 근로자에게 재정적 수요가 필요한 '특정한 시기'에 소정근로 제공 여부와 관계없이 재직하고 있었는가라는 우연한 상황에 따라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재직자 조건'이 붙은 수당의 경우, 이러한 조건을 후자와 같이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②고정급이 정기상여금과 같이 근로의 대가 성격이 뚜렷한 임금채권 성립에 관해 근로의 제공 이외에 근로자의 퇴직이라는 우연한 사정을 임금채권의 성립 요건으로 보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 

이러한 논리를 극단적으로 확장하면, 소위 기본급에 대해서도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본급에 대해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할 정상적인 법률가가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민법 제656조 제1항은 "보수는 약정한 시기에 지급해야 하며 시기의 약정이 없으면 관습에 의하고 관습이 없으면 약정한 노무를 종료한 후 지체 없이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해 고용계약 보수의 지급 기일을 후불로 정하고 있을 뿐이지, 보수에 관한 채권 성립 자체를 노무의 종료 이후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근로계약 또한 낙성계약이지 요물계약(要物契約)이 아니며 따라서 임금채권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약정만으로 성립하는 것이고, 다만 근로자가 당초 약속한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경우에 쌍무계약의 이행상의 견련성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부분에 상응하는 임금이 공제(控除)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은 정기상여금 채권의 성립에 관한 약정(約定)의 기본적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본 약정에 부가된 부관(附款)으로 이해함이 옳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이 무효가 되는 경우에는 정기상여금의 지급에 관한 약정은 당연히 조건이 없는 계약으로 존속하며, 따라서 그 지급일 이전에 퇴사한 자도 정기상여금 청구권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의 문제점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허용되는지와 관련해서는 임금 정기일 지급 원칙, 금품 청산의 원칙, 강제 근로 금지의 원칙 등의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가) 임금 정기일 지급 원칙과의 관계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 '정기일 지급 임금'에 해당하며, 따라서 수개월 간격으로 고정급 성격의 정기상여금을 지급하기로 한 약정은 근로기준법 제42조 제2항에 위반해 무효다. 다만 무효 행위의 전환 법리에 따라 정기상여금 명목의 금품을 매월의 임금 지급일에 분할해 지급하는 취지의 약정으로 전환될 수 있을 뿐이다. 참고로 일본의 하급심 판결 중에는 원래 통상임금에 산입해야 할 수당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 위해 종래 1개월마다 지급한 무사고수당, 출근수당에 관해 그 액수를 2배로 해 2개월마다 지급하기로 정한 단체협약은 무효이고, 이러한 임금은 통상임금에 산입된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이 있다.

한편,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을 이와 같이 소정근로의 대가로 이해한다면 정기상여금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도 당연히 퇴직 전에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임종률 성균관대 명예교수도 임금 정기일 지급 원칙과 관련해 "수개월에 1회씩 지급되는 상여금의 지급 기일 전에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그 상여금을 지급해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상여금이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지급 기일 전에 퇴직하더라도 그 산정 기간에 실제 근무한 일수나 그 밖의 산정기준에 따라 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상여금 지급 기일에 재직할 것을 그 지급조건으로 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봐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나) 금품 청산의 원칙 및 임금의 사전 포기에 대한 제한 관련

근로기준법 제3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퇴직하는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 재직기간 중의 근로에 관해 발생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위 근로기준법 제36조의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것이고, 상여금 또는 수당의 임금성이 긍정되는 이상 지급기준일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에게도 퇴직 시점까지의 근로의 대가는 해당 기간의 근로 제공 일수 비율에 따라 지급돼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재직자 조건은 근로자가 근로제공의 대가로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토록 하는 약정으로 무효라고 할 것이다.

다) 강제 근로 금지의 원칙과의 관계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을 유효하다고 인정할 경우, 이러한 재직자 조건은 퇴직을 하려는 근로자로 하여금 정기상여금의 지급일까지는 근로를 하도록 사실상 강제함으로써 퇴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격월 내지 매분기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의 경우 그 지급일까지의 계속 근로를 유도해야 할 회사 측의 합리적인 경영상 필요성이라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것은 강제 근로 금지(근로기준법 제7조)의 근본 취지에 위배되며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민법 제103조)로서 무효다.

⑶ 소결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방법으로 임금을 비임금화하는 것은 임금 정기일 지급의 원칙, 금품 청산의 원칙 내지 임금의 사전 포기에 대한 제한, 강제 근로 금지의 원칙의 각 측면에서 근로기준법의 명문 규정은 물론 공서(公序)에도 반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은 무효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에 관해, 재직자 조건을 일률적으로 위법 무효 또는 적법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고 재직자 조건을 둬야 할 합리적인 필요성과 그로 인해 근로자가 입게 되는 손실의 정도를 비교형량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기왕에 제공된 근로의 대가로 이미 발생한 임금채권을 사후적으로 상실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합리적인 필요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필자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적어도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며, 다만 재직자 조건을 퇴직일 익일부터 지급일 내지 정기상여금의 산정 기간의 종일까지의 기간, 즉 퇴직으로 인해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기간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을 비례적으로 공제한다는 취지로 제한적으로 해석될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소정근로의 대가의 성질을 갖는 고정급의 정기상여금의 지급 기일 전에 퇴직한 근로자도 최소한 실제로 근로를 제공한 기간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에 관한 권리는 당연히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업장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재직자 조건과 함께 일할 지급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경우, 이는 재직자 조건이 정기상여금의 지급일 이전의 퇴직으로 인해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기간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을 비례적으로 공제한다는 취지임을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일할 지급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정기상여금의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는 자신이 제공한 근로기간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은 당연히 청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은 정기상여금의 성립에 관한 기본계약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붙은 부관(附款)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기상여금에 붙은 재직자 조건이 무효로 되더라도 정기상여금의 지급에 관한 기본 약정은 조건이 없는 약정으로 여전히 존속하고, 따라서 정기상여금의 지급일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는 유효하게 정기상여금에 관한 임금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정기상여금 지급 약정에 붙은 재직자 조건의 적법성에 관해 일본의 판결들로부터 시사점을 구하려는 입장이 있는바, 일본의 경우 일본루세루(ルセル) 사건에서 동경고등재판소가 상여금은 근로자 근로의 대가로 사용자가 그 지급을 의무화한 임금의 일부이고, 지급일 당시 재직하지 않는 근로자에게도 사용자는 지급 의무를 진다고 판단하는 등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봤으나, 근래에는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정기상여금 지급 관행이 사용자가 정기상여금의 금액을 정하기 전까지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임금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와 상이한 데 기인한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고정급 형태의 정기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것이 적법한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판례를 원용할 바는 못 된다.

4. 맺으며

필자는 통상임금의 본질은 소정근로에 대해 주기로 정한 임금을 소정근로시간으로 나눈 비율이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통상임금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간단한 산식(算式)이어야 한다.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을 그 본질에 맞게 단순화하는 것이 임금체계의 단순화·투명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근로자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할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게 만든 1차적 책임은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한 자본과 이에 영합해 기본급 인상 대신 정기상여금이나 수당 인상 등을 내용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조직 노동 측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교정하지 못하고 법령의 해석을 그르친 행정해석을 고집해 오히려 임금체계를 난마(亂麻)처럼 얽히게 한 고용노동부나 언 발에 오줌을 누는 식의 판결로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 관한 해석상의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한 법원의 책임도 가볍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2024. 12. 19. 선고된 두 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전의 판례법리에 비해 그 법적 논증은 매우 정직하고, 법문(法文)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전원합의체 판결이 노동법에 있어서의 '후견'과 '자율' 패러다임을 언급한 것도 통상임금에 관한 오랜 해석론상 난점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사적 자치, 즉 자율이 주인공인 시민법과 달리 노동법의 주인공은 집단적 자치와 후견이다. 따라서, 2020다247190 전원합의체 판결이 소환한 노동법에서의 자율과 후견 패러다임이 당연히 후견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을 자율의 영역으로 부당하게 견인(牽引)하는 논리로 화하는 것에는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본 2019다204876 판결이 정액의 고정급으로 지급되는 한국식 가짜 상여금(Sham Bonus)에 붙인 재직자 조건을 자율의 영역에 속한다고 전제한 것은, 후견의 영역에 속해야 하는 근로기준법 소정의 임금 지급 방법(매월 정기일 지급의 원칙)의 강행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동 판결은 무효로 봐야 마땅한 정기상여금에 대한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을 긍정해 이미 발생한 구체적 임금청구권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법원이 기본급에 대한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까지 긍정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