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일부 사업장에서는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월급이 다소 인상됐다고 해서 직원이 마치 기계처럼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계조차도 쉬지 않고 계속 가동하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업무량 증가로 인해 누적된 피로와 그에 상응하지 않는 보상은 직원으로 하여금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을 잃게 만든다. 소속감을 상실한 직원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동기도 사라지며, 기회가 생기면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직장으로 떠나려 한다. 이렇게 업무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이 하나둘씩 이탈하면 사업장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자연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후 경영상의 압박을 받게 된 사업장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되고, 남은 직원들에게는 더 많은 업무 부담이 전가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한국인 지원자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력난을 겪은 국내 사업장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국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은 한국인 노동자의 6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응답이 다수 확인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경향이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진행된 유사한 조사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은 자국민 노동자의 약 6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외국인 노동자에게 자국민과 동일한 수준의 생산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 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일할 사람은 부족하고, 인건비는 계속 오르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과제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이미 훨씬 더 극단적인 인력 부족과 급격한 인건비 상승을 과거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된 세계대전이 있다.

14세기 당시 유럽은 인근 국가들까지 모두 흑사병의 영향권에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 인력을 유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심각한 인력 부족 속에서 단순노무직의 인건비까지 3~4배 이상 치솟았다. 이는 노사 협상을 통해 매년 일정 비율로 최저임금이 상승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생존을 위해서는 인력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도제제도의 확산과 숙련 수준별 직무 분류
 
도제제도(Apprenticeship)는 11세기의 문헌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인력 활용 방식이다. 이 제도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사업장에 맡기고, 아이는 숙식을 제공받으며 심부름과 같은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차 해당 업종의 기술을 배우게 되며, 처음에는 쉬운 일부터 시작해 점차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익힌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맡는 업무의 난이도도 상승하고, 그에 따라 보상도 증가한다. 충분한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독립하거나,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아 사업을 이어 가게 된다.

중세 유럽에 직종별 길드(Guild)가 형성되면서 도제제도는 교육적 측면에서 더욱 체계화됐으며, 특히 흑사병으로 인한 극심한 인력 부족 상황에서 도제 훈련생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고숙련 인력이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제 훈련생이 잡무나 저부가가치 업무를 맡아 조직 내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럽의 산업 현장에서는 직무를 숙련도 수준에 따라 세분화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됐고, 현대의 직무분석(Job Analysis) 기법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실제로 어떤 사업장이든, 그 안에서 수행되는 모든 업무를 세분화하면 숙련도가 전혀 없는 사람도 수행할 수 있는 기초적인 작업부터, 높은 전문성을 요하는 고숙련 업무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 각 단위 업무가 수행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숙련도 수준별 업무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업무를 재설계함으로써, 조직은 다양한 숙련도를 가진 인력들이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 같은 체계는 업무 분배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한다. 한 명의 직원에게 정당한 수준의 업무가 배정되고, 책임소재가 명확히 구분되면서 특정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가 집중되거나, 반대로 특정 직원에게는 업무를 거의 주지 않는 불균형이 방지된다. 근무시간 중 '무의미하게 일 없이 대기하는 시간(Idle Time)'도 최소화되며, 일부 직원이 의도적으로 '월급루팡(급여를 받으면서 업무는 회피하는 행위)'을 시도하는 것도 억제할 수 있다. 각 업무에 드는 시간이 명확히 규정되고, 업무 진행 상황을 수치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업무 속도를 늦추거나 불성실하게 처리할 때 이를 쉽게 식별하고 대응할 수 있다.
 
교육공학적 업무 설계와 매뉴얼화
 
우리나라 사람들의 두뇌 수준은 유대인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는 곧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복잡하고 모호한 설명 속에서도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역량이 집단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러한 높은 기초 학습 능력 덕분에, 국내 산업 현장에서는 관리자가 업무 수행 방식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단순한 지시만으로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고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에 가깝다.

해외 사업장에서는 기초 학습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성인 노동자도 적지 않으며, 모든 직원이 높은 수준의 이해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공학(Educational Technology)이 발달하게 됐다. 핵심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과 시각적 자료, 단계별 안내 시스템을 통해 업무 수행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데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읽기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조차 매뉴얼만 보면 쉽게 업무 절차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전자제품의 사용자 설명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외국의 전자제품 매뉴얼은 그림 중심, 단계별 설명 구조가 명확한 반면, 한국의 매뉴얼은 글 중심이며 사용자의 이해력을 전제로 작성된 경우가 많다. 각국 소비자들의 평균적인 학습 방식과 정보 처리 역량의 차이를 반영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심지어 그런 매뉴얼조차 꼼꼼히 읽지 않고도 스스로 사용법을 터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럽과 우리나라의 실습생 활용 비교
 
필자는 10대 시절부터 10여 년간 영국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한 경험이 있다. 영국의 중등교육 제도에서는 학생들이 일정 기간 현장 직업 체험(Work Experience)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돼 있으며, 일반적으로 일주일 정도의 기간을 준다. 필자 역시 이 제도를 통해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에서 일주일간 현장 체험을 한 바 있다.

이와는 별도로, 필자는 30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장례지도사 직업에 흥미를 느끼고 330시간의 이론 및 실습 교육을 수료한 뒤, 실제 장례식장에서 50시간의 현장 실습을 수행했다. 영국과 한국 모두에서 비슷한 기간 동안 현장에 있었지만, 그 시간이 활용된 방식과 밀도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영국과 한국의 현장 실습 비교>

영국에서 현장실습을 했을 당시, 필자는 미성년자로서 관련 자격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서는 필자에게 배정할 수 있는 낮은 숙련도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찾아 줬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다양한 업무를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장 실습을 진행했을 때, 필자는 성인이었고 이미 330시간에 달하는 이론 및 실습 교육을 이수한 데다, 관련 필기시험도 통과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실습 기간 동안 현장 직원과의 교류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50시간 중 30시간 이상은 아무런 업무도 배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했다.

미성년자이자 무경력ㆍ무경험자였던 사람도 생산적인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유럽의 시스템과, 그러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 차이가 매우 뚜렷하다. 오랜 시간 전략적인 인력 활용 방식을 정립해 온 유럽의 국가들조차 최근에는 인력 부족과 상승하는 인건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인력 활용이 전략적이지 못한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지 직원 수를 충원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국내 사업장들도 생존을 위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인력 활용 전략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