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예정인 인천 서구 현대모비스 공장(사진=뉴시스)
 
법원이 현대모비스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불법파견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생산공정 전체를 외주화하더라도 원청의 지휘ㆍ감독이 있으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부(재판장 김도균)는 지난 24일 현대모비스에서 라인 조립, 검사, 엔진 성능관리 업무를 한 사내하청 근로자 A 씨 등 4명이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 등은 현대모비스 충주공장에서 근무했다. 현대모비스는 사내하청업체와 위탁계약을 체결해 생산공정 전체를 외주화했다.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라인 조립, 검사, 엔진 성능관리 등 직접생산공정 업무를 수행했다.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현대모비스가 자신들의 업무를 지휘ㆍ명령하고 있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직접적인 지휘ㆍ명령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근로자 측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가 사내하청업체에 제공한 생산ㆍ관리계획서에 주목했다. 현대모비스는 사내하청업체에 근로자들의 작업 내용과 방법을 상세히 정한 관리계획서를 제공하고 5개월 치 생산계획을 미리 전달했다.
 
재판부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현대모비스의 생산 일정에 따라 부품을 생산하고 관리계획서에 사실상 구속돼 업무를 수행했다"며 "사내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현대모비스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인정된다"고 했다.
 
사내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업무 지시는 사내하청 소속 현장 관리자들이 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현대모비스가 지휘ㆍ명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내하청 소속 현장 관리인이 업무 지시를 했지만 현대모비스의 지시사항을 반복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것만으로 현대모비스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은 사내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없었던 점도 불법파견의 증거라고 봤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의 생산 계획하에 업무가 이루어져 근로조건, 휴가를 사내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며 "공장 설비가 변경되면 현대모비스가 사내하청 근로자 교육에도 관여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사내하청업체는 현대모비스 자재 사이트를 통해서만 자재를 구입할 수 있었고, 원하청 근로자들이 공동 작업을 수행한 적도 있었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가 자신들의 자재 사이트를 통해서만 사내하청이 자재를 구매하도록 하는 등 충주공장 생산 공정 전체를 관리해 왔다"며 "사내하청 현장 관리인을 매개로 원하청 근로자들이 하나의 작업집단을 이루어 공동 작업을 수행해 사내하청업체가 현대모비스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내하청업체가 독립적인 기업조직과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법원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은 대부분 현대모비스가 사전에 구체적으로 작성한 작업표준서 내용에 따라 단순 작업을 했다"며 "사내하청업체가 업무 전문성이나 독자적인 기술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내하청업체는 이전 하청업체에서 승계받은 근로자와 설비 외에 독립적인 조직과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며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다른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지도 않은 점을 고려하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현대모비스의 직접생산공정 외주를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현대모비스 반조립제품(CKD) 품질관리 업무를 하는 사외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직접생산공정은 아니었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고재환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지금까지 생산공정 전체를 외주화하는 경우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재판부가 전체를 외주해도 원청의 지휘ㆍ감독이 있다면 불법파견이라고 명확히 판단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현대모비스 직접생산공정 불법파견 사건이 여러 건 있는데 이번 판결이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불법파견 사건에서도 원청의 지휘ㆍ감독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원청의 작업계획서, 작업표준서, 업무 지시 이메일 등으로 지휘ㆍ감독이 인정되면 불법파견으로 판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