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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들어가며

최근 부산지방법원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미이행으로 사업장에서 종사자가 산업재해를 당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공소사실에 관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사건에서, 피고인들에게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일부 조항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 책임주의, 평등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논쟁이 다시 한번 제기되고 있는바,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필자 나름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2.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배경

20세기 산업사회의 성장은 대규모 자본 집적을 가능하게 한 주식회사 제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주식회사가 담당한 순기능도 작지 않지만, 동시에 주식회사는 그 이윤을 회사의 주주에게 독점시키되 비용은 사회에 전가하는 경향도 보여 왔다. 후자가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는 이유라고 할 것이다. 기업의 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와 일반 시민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침해는 이러한 문제점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중대재해가 발생해 근로자가 죽거나 다쳐도 실제 처벌은 무겁지 않았다. 나아가, 경영구조가 중층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기업의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처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업의 생산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침해, 즉 중대재해의 예방 및 제재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강해져 왔다. 특히 세월호 참사나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건 등을 겪으면서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2019년에는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제한이나 도급인의 책임 강화 등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에도 불구하고 경영구조가 다층화된 대규모 기업의 경우에는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상급 경영진에게 묻는 것이 어렵다는 모순적 상황이 여전히 존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엔 개인 사업주나 법인의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함으로써 근로자와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직접 긍정해 법인사업주를 직접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라, 법인사업주를 대표하고 그 사업을 총괄하는 자를 경영책임자 등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경영책임자 등에게 직접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한 뒤 이러한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한 경우 그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고 양벌규정을 통해 법인사업주를 처벌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3.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론'의 배경과 타당성

중대재해처벌법은 전체 조문 수가 16개에 불과한 매우 간단한 법률이다. 하지만 실제 동법을 해석함에 있어는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수범자(受範者)인 '경영책임자 등'이 누구인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위반 및 중대재해라는 결과 발생에 고의(故意)가 요구되는지, 의무위반과 결과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요구되는지 등 다양한 해석상 쟁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해석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기존의 전통적인 형법 도그마틱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생소한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매우 생경한 방식의 '형사법' 제정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찬반의 양론이 가능하고,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정합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경청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매년 8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하는(질병 사망자는 제외)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기업의 안전관리 시스템의 기능 부전으로 인해 발생한 재해로 사람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으면 그러한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에 대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갖는 경영책임자에게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이를 통해 중대재해 발생을 예방하겠다는 동법의 입법취지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중대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응보(應報) 감정'을 고려할 때, 종래의 처벌이 터무니없이 가벼웠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상 이론적 정합성에 천착해 동법의 위헌성을 주장하기보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중대재해 발생의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해석론을 모색하는 것이 법학자는 물론 '법원'이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4. '명확성 원칙' 관련

헌법재판소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서술적 개념으로 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광범위해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했다면 헌법이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 죄형법정주의에서 요구되는 명확성의 정도에 대해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해야 하되, 다만 입법자가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의미의 서술적인 개념을 사용해 규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즉, 입법자가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을 일일이 세분해 명확하게 하는 것은 입법 기술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기 때문에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해 어떤 범위에서는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법규범이 불확정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라도 법률해석을 통해 법원의 자의적인 적용을 배제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얻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이 경우 법규의 의미 내용은 그 문언뿐만 아니라 입법 목적이나 취지, 입법의 연혁, 그리고 법규범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해석방법에 의해 구체화되므로, 결국 법규범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위와 같은 해석 방법에 의해 그 의미 내용을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해석기준을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법리에 비춰 보면, 중대재해처벌법과 그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은 그동안 축적된 판례와 학설을 통해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규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학설과 판례를 통해 그 적용범위를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 형법 규정의 일반적 경로다. 예컨대,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배임죄의 구성요건적 행위인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는 일견 매우 모호해 보이지만, 판례를 통해 "배임죄에 있어서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라 함은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사이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라고 해 그 의미가 보충됐다(대법원 1999. 6. 22. 선고 99도1095 판결 외 다수).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도 결국 향후 법원 판례의 축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형벌법규가 법원의 해석에 의한 의미보충의 가능성조차 배제돼야 할 정도로 명확해야 한다면, 그 많은 형법각론 체계서들은 왜 출판된 것인가?

한편, 명확성 원칙을 근거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을 주장하는 측에서 동법을 '확장'해 해석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애쓰는 모순적인 행태는 지적이 필요하다. 즉, 한편으로는 법정 대표자가 아님에도 소위 '최고안전책임자(CSO)'라 불리는 상급 관리자를 중대재해처벌법의 수범자로 해석하려고 하면서, 그와 동시에 동법의 명확성을 탓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5. '책임 원칙' 관련

통상 헌법재판소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법관이 범죄자의 책임에 합당한 형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정형의 범위가 설정돼 있는가다. 헌법재판소는 따라서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성을 심사할 때, 주로 법정형의 하한선이 해당 범죄의 비교적 경미한 죄질에 합당한 형벌을 정할 수 있게 돼 있는가 등에 초점을 둬 왔다.

이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조항은 일단 벌금형의 선택이 가능하게 돼 있고, 징역형도 1년 이상으로 돼있어 하한이 과도하게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관은 죄질의 경중이나 책임, 비난가능성을 살펴 벌금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징역형을 선택하되 감경할 수도 있으며,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법정형의 하한을 위와 같이 설정함으로써 법관이 죄질의 경중을 고려해 그 책임에 맞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큰 장애가 없도록 하고 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산업재해치사)의 법정형이 과도함을 지적하는 견해에서는 위 규정이 특히 징역형의 경우 최장 30년, 가중 시에는 최장 45년의 형이 가능하도록 설정했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법정형상 높은 상한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높은 형량의 선고가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산업재해치사)는 중대산업재해의 개념상 그 구성요건 자체에서 1명 이상의 사망, 즉 수인이 사망한 경우를 예정하고 있어 피해의 규모, 즉 사망자의 수에 관계없이 여러 명이 사망한 경우에도 1죄만이 성립하고 피해자의 수는 양형의 단계에서 고려된다고 봄이 타당한데, 대규모 사망자를 유발하는 중대산업재해의 발생 가능성에 비춰 징역형의 상한을 두는 것이 오히려 적정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위 처벌조항의 법정형이 책임과 형벌의 비례를 요구하는 책임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한 법정형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과한 측면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순수한 '과실범'이라고 보는 견해에 선다면, 과실범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은 책임원칙에 반한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고의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라는 결과를 야기한 경우에만 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한다. 고의로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했다는 행위 측면의 불법성(행위반가치)과 중대재해의 발생이라는 결과 측면의 불법성(결과반가치)이 긍정될 때에만 국가의 형벌권을 발동하는 구조로 돼있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은 미수범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아무리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중대산업재해만 발생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또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준수하기만 했다면 처벌되지 않는다. 나아가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중대재해의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긍정돼야 하기 때문에 예견가능성이 없는 외부요인이나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6. 결론을 대신해 :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

가. 위헌이 아니면 문제가 없는가?

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후 다양한 경로로 동법이 다소(솔직히 말하면 매우) 조악한 방식으로 입법되기는 했지만, '위헌'으로 평가할 만큼 모호하거나 책임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법정형을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견해를 개진해 왔으며, 여전히 이러한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동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그 입법의 조악함이 저절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존의 법 집행 과정에서의 실패는 우선 기존 법률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족보를 찾기 어려운 입법을 반복할 경우 결국 '법률의 홍수'에 익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에 앞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특히, 치사죄)의 양형기준을 높이거나(물론, 이후 양형기준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응보는 나쁜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하는 견해 중에는 동법이 중대재해에 대한 예방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 시행 후 수년도 지나지 않은 '형사법(처벌법)'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가를 어찌 미리 알고 비판을 하는지 의아하긴 하다(차라리 그냥 "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의아함과는 다른 차원에서 중대재해의 예방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주된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목적에 복무하기 위한 법률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각종 감독행정 관련 입법이 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경위를 돌아보면 중대재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유족의 응보(應報) 감정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의 동인 중 큰 부분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범죄행위가 발생했음에도 국가가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민에게 '사적 복수'를 금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말 그대로 '처벌법'이고, 형벌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응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응보'가 나쁜가? 다들 너무 착해서,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어 줄 셈인가 보다.

다. 경영책임자 처벌이 정답인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다양한 규제 입법이 제정됐지만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경영계에서 조직적으로 저항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최근의 상법 개정 시도 정도가 떠오르지만, 저항의 정도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비할 바는 아니지 싶다). 여타 규제 입법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렇게 큰 저항을 받는 이유는 '경영책임자를 직접 처벌'하는 구조가 자본(솔직히는 대재벌)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래 경영구조가 중층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기업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처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중대재해처벌법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즉 중대재해를 야기한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직접 처벌하기 위해 입법된 것이다. 

한편, 이론적으로 보면 '법인'은 영(靈)과 육(肉)이 없는 법적 의제다. 따라서 법인은 그 목적과 관련한 범위에서 권리능력이 있을 뿐, 범죄를 저지르지 못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법인과 관련된 사람이다. 그래서, 대륙법의 전통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한다. 

그런데, 사람에게 유익하자고 만든 법적 의제인 회사가 영리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다면, 그런 회사는 과연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 필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의는 기업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제로 법인의 범죄능력과 형벌능력을 전면적으로 긍정하고, 개별 행위자의 죄책에 종속됨 없이 법인의 고유한 책임을 긍정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면적인 형법 개정을 통해 자연인에 대한 사형이나 자유형에 상응해 법인의 해산이나 영업정지를 형벌로 도입하는 것도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기업범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형사사법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법인이 아니라 경영책임자 등에게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형사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업의 형사책임을 면책하자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하고 그러한 의무를 고의로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경우 형벌을 예정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준수를 심리적으로 강제하는 방법이 우리나라의 현행 형사법 체계 아래서 법인기업에 의한 중대재해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딜레마가 생긴다. 재해의 발생에 가공한 다양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경영책임자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그러한 의도로 제정된 것이라고 해석하더라도, 실제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중형을 선고하는 데 거리낌이 없겠는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A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20년 동안 재직하던 甲이 사임하고, 乙이 새로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다음 날에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甲은 신분자가 아니므로 처벌이 어려울 것이고, 乙의 경우에는 대표이사로 재직한 기간이 단 하루에 불과하므로 乙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행위불법의 양이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어서 乙에게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반면, 甲이 대표이사에서 사임하지 않고 계속 경영책임자로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재해가 발생했다면 甲에 대한 양형을 위 사안에서의 乙에 대한 양형보다 무거울 것이다. 법인 자체 차원으로 보면 법인 자체에 귀속될 불법의 양은 다르지 않을 것인데, 대표이사가 바뀌었다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처벌의 수준이 달라질 것인바, 이는 결국 법인 자체에 귀속될 불법 중 일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처럼 법인의 직접 처벌이 아니라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방식은 경영책임자를 부당하게 무겁게 처벌하는 문제가 아니라, 법인 자체에 귀속될 불법 중 일부만이 양형에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법인 자체를 행위자로 보고 법인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