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 유종성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명목 소득대체율을 각각 4%, 3%씩 인상한 모수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딛고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출범했다. 모수개혁은 기금 고갈 시기를 연장시켜 재정 안정화에 다소 기여하고 명목 소득대체율을 인상해 노후소득 보장도 미미하게나마 강화한 성과가 있지만, 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 보장 모두에 미흡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젊은 세대의 연금개혁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 

공적연금 개혁의 양대 목표는 '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 보장 강화'이며,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재정 안정화가 담보되지 않는 소득대체율 인상은 젊은 세대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번 개혁으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예상 시점이 2056년에서 2071년으로 15년 연장됐다고 하지만, 이는 기금수익률이 4.5%에서 5.5%로 1% 향상되는 목표가 달성되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기금수익률이 목표한 만큼 올라가지 않으면 기금 고갈은 앞당겨지게 된다(기금수익률 4.5% 유지 시에는 2064년 고갈 예상). 목표한 대로 기금수익률이 올라가도, 추가적인 개혁이 없다면 지금의 20대는 연금 수급 초기에 기금이 고갈되며 지금의 10대는 연금 수급 개시 이전에 기금 고갈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면 부과방식 전환으로 미래의 젊은 세대가 30~40%의 높은 보험료율(2079년 필요 보험료율 39.2%)을 수용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고, 일반 재정으로 연금 수지 적자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젊은 세대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으며, 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믿음을 줄 수 있는 추가적인 개혁 방안과 시행 일정을 조속히 마련해 공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재정 안정화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이라는 수치를 안고 있는 우리가 노후소득 보장을 지금보다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사실 명목 소득대체율 3% 인상은 안정된 고용을 누리는 이들에게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득대체율 43%란 평균소득자가 40년간 가입(보험료 기여)했을 때 적용되는 것이며, 가입기간이 40년에 미치지 못하면 가입기간에 비례해서 낮아진다. 즉 가입기간이 20년이라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43%의 절반인 21.5%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추계에 의하면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이 26년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한다. 즉, 명목 소득대체율이 43%라 해도 실질 소득대체율은 평균 28% 정도에 그칠 것이다. 따라서, 명목 소득대체율에 집착하기보다 실질 가입기간을 늘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출산 크레디트와 군 크레디트의 확대로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각각 1.08%와 0.4%의 미미한 효과에 불과하다.

평균 소득자의 평균적인 실질 소득대체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현 노인 세대와 미래 노인 세대의 빈곤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번 연금개혁에서 이 문제는 완전 도외시됐다. 국민연금의 넓은 사각지대, 즉 학생, 주부, 실업자 등 비경제활동인구와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거나 최소 가입기간(10년) 미충족으로 연금 수급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노령연금 급여는 소득 비례 급여(B 급여)와 함께 균등급여(A 급여)로 구성돼 가입기간이 같으면 저소득자일수록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누릴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은 대부분 최소 가입기간을 채우지 못하거나 10년 남짓의 짧은 가입기간으로 무연금 또는 저연금자가 돼 노후 빈곤에 처하게 된다. 국민연금의 A 급여(균등급여 또는 재분배급여라고 함)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을 기초연금이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급여수준이 낮아 빈곤 방지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 A 급여와 기초연금의 통합 또는 역할 재조정 등을 포함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노인 빈곤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고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구조개혁의 핵심은 사각지대 해소와 실질 소득대체율 향상을 통한 노후의 빈곤 완화 및 적정 소득 보장에 있으며,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구조개혁에 앞서 연금 가입 연령 상한과 수급 개시 연령 간의 갭을 없애면서 정년 연장과 연계해 동시에 올리는 추가적인 모수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수년 내로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되고, 2050년대에 평균 연금 수급기간, 즉 65세의 기대여명이 25년을 넘어서며, 2060년대에 노인부양비가 100%를 넘어서는 세계 초유의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 가입기간이 26년밖에 안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금 수급기간을 25년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충분한 실질 소득대체율을 보장하는 것은 어떠한 연금제도로도 불가능하다. 가입기간 상한인 40년을 다 채운다 해도 '40년 가입에 25년 수급'으로 43%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려면 21.2%의 높은 보험료율이 필요하다. 덴마크처럼 평균 연금 수급기간을 15년 미만으로 유지하는 목표 설정이 무리라면 가입기간은 45년 내지 50년으로 늘리고 평균 연금 수급기간은 20년을 넘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연금 연령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래 살게 된 만큼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어느 시점에 갑자기 완전히은퇴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부분 은퇴와 부분연금 수급을 결합하는 등 일과 연금의 유연한 결합으로 노후소득을 유지함과 동시에 삶의 보람과 의미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장차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연금 연령의 인상 없이 재정 안정화의 과제를 구조개혁에 맡기면 노후소득 보장이 너무 약해질 것이다. 국민연금을 완전 적립식 또는 스웨덴처럼 명목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면 재정 안정화는 이룰 수 있겠지만 65세 연금 연령을 유지하는 한 노후소득 보장 기능은 매우 취약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힘이 도입을 검토하는 자동안정화 장치도 기대여명 연장 등에 따라 연금 연령을 조정하지는 않고 연금 급여액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이 매우 낮아지게 될 것이다. 최근 연 7000억 원 내지 1조 원의 연금소득세 세수를 국민연금 기금에 투입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 정도로는 기금 고갈을 조금 더 연장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실질 소득대체율 향상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하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논의됐던 '소득 중심 사회보험의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사각지대가 큰 것은 비경제활동인구 등 국민연금 적용 제외자가 많고 지역 가입자 중에 보험료 납부 예외자와 장기 연체자가 많기 때문이다. 실질 소득대체율이 낮은 이유는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협소하고 실질 가입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보험료 지원과 연금 크레디트의 강화를 통해 가입률과 가입기간을 늘리는 방안만으로는 부족하며 혁신적인 구조개혁이 요청된다. 고용관계 기반에서 소득 기반으로 전환해 사업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구분을 없애고 성인의 모든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국세청이 원천징수하면 사각지대가 사실상 해소되고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과 실질 가입기간이 대폭 확대돼 실질 소득대체율이 대폭 올라갈 것이다. 

국민연금은 고용보험에 비해 소득 중심 사회보험으로의 전환이 훨씬 쉬울 것이다. 소득 중심 고용보험은 고용관계가 불확실하거나 여러 고용주를 가진 이들 및 자영업자에 대해 구직급여(실업급여)의 자격과 급여액 산정을 현재의 비자발적 실업 기준이 아닌 소득 기준으로 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려고 하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실시간 소득파악이 선결 조건이 됐다. 그러나, 국민연금 지급은 실업이나 소득이 아니라 연령을 기준으로 하므로 실시간 소득 파악이 불필요하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자동 가입시켜 보험료를 국세청이 원천징수하면 된다. 사업장을 가진 자영업자는 소득신고 시 소득세와 함께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면 된다. 고용보험은 근로소득과 사업 소득만을 기반으로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자, 배당, 임대, 기타소득 등 모든 소득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주된 직장에서의 임금과 급여뿐만 아니라 알바 소득과 부수적인 사업 소득과 기타소득은 물론 소액의 이자소득까지 포함하면 성인 중 대부분이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연금보험료를 내게 돼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이 대폭 확대되고 실질 가입기간이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공적연금은 가족 부양의 책임을 지는 남성 노동자의 은퇴 후 노후 시장 소득이 사실상 0이라는 전제하에서 노동자와 고용주의 보험료 기여를 기반으로 후한 연금 급여를 하는 것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표준 고용관계 비중이 줄어드는 탈산업화 맞벌이 시대에 공적연금은 보편적인 1인 1연금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고용관계 기반에서 소득 기반으로 전환함과 아울러 노동소득뿐만 아니라 자본소득을 포함한 모든 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노후소득 보험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평균소득 이하의 저소득자에게 보다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노동소득만을 기반으로 하면 자본소득이 많지만 노동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A 급여의 혜택을 과다하게 부여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고용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은 노동소득만이 아니라 모든 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보편적 노후소득 사회보험으로 구조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

현세대와 미래 세대 노인의 빈곤 방지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A 급여와 기초연금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연금 급여 중 소득 비례 급여는 보험료 기여만을 재원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균등급여(재분배급여)는 기초연금과 통합해 조세를 기반으로 하거나 적어도 조세의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일정한 연령에 모두가 완전 은퇴를 해 노후소득이 0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조세를 주된 재원으로 하는 기초연금(국민연금 A 급여 포함)은 현 기초연금의 두 배 수준으로 올리되, 지금처럼 정액 급여가 아니라 노후소득에 따라 일정 비율로 감액 지급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소득수준에 따라 건강과 기대수명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소득 비례 급여의 수급 연령은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올려 나가더라도 기초연금(국민연금 A 급여 포함) 수급 연령은 65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건강한 이들의 근로의욕을 유지하도록 감액률을 높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가령 25% 내지 30% 이내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편적인 노후소득 보험으로 개혁하기 위해서 사회보험료 원천징수는 매우 효과적인 방안이며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에게 장기적으로 더 큰 혜택을 주는 것이지만, 당장의 소득이 더 급한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는 현행 보험료 지원제도를 다소 확대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며,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의 사회보험료를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금의 근로소득공제와 근로소득세액공제를 일정 소득 이하의 근로소득자와 사업 소득자에 대해서는 사회보험료 전액을 면제해 주는 제도로 개편하고,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공제를 근로소득세액공제로 일원화해 감세 혜택을 조금 줄이는 정도로 전환하면 추가적인 재정 부담 없이, 또는 약간의 재정 투입만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국민연금을 소득 중심의 보편적 사회보험으로 개혁하려면 공무원, 교원 등 특수직역 연금에 대해 국민연금 보험료에 해당하는 부분은 국민연금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공적연금 못지않게 민간 의무 연금인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유지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개혁 방안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우리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비슷한 일본, 뉴질랜드, 대만과 비교해도 우리는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고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는 우리의 연금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 준다.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확실한 재정 안정화와 함께 현세대와 미래세대 노인의 빈곤 방지와 노후소득 보장을 이룰 수 있는 획기적인 연금 구조개혁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