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 민주노동당, 직장갑질 119 등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故 오요안나 기상 캐스터 사망 사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박정현 기자 axs@)
 
프리랜서 기상 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괴롭힘 행위는 있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프리랜서로 일한 오 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오 씨의 유족은 고용부가 MBC에 면죄부를 줬다며 크게 반발했다.
 
"오 씨, 괴롭힘 당했지만 직내괴는 아냐"
 
고용부는 19일 '문화방송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특별근로감독은 지난 2월 11일부터 5월 16일까지 진행됐다.

고용부는 오 씨가 선배 기상 캐스터들로부터 사실상 괴롭힘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고용부는 "선배 기상 캐스터들이 오 씨의 실수나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한 언행들이 단순히 지도나 조언의 차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 선배 기상 캐스터는 오 씨가 유명 TV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하게 되자 공개적인 장소에서 오 씨에게 '네가 유퀴즈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고용부는 ▲오 씨가 기상 캐스터를 시작한 지 불과 1~3년 이내의 사회 초년생인 점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서는 감정적이고 불필요한 발언들이 수차례 이어져 온 점 ▲오 씨가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유서에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한 점 등을 들어 괴롭힘을 인정했다.
 
고용부는 "기상 캐스터는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서열과 위계질서가 존재했다"며 "이러한 조직문화 속에서 선후배 간 갈등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들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오 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직장 내 괴롭힘 제도로 보호받을 수 없다.
 
고용부는 ▲오 씨가 기상 캐스터 업무 외 행정, 당직, 행사 등 다른 업무를 하지 않은 점 ▲일부 기상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해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 등 개인 영리활동을 하고 그 수입이 전액 기상 캐스터에게 귀속되는 점 ▲주된 업무 수행에 지휘ㆍ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점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에 적용을 받지 않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던 점 ▲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가 없었고 방송 출연 의상비를 기상 캐스터가 직접 지불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MBC 직원 45.6%, "직내괴 당하거나 목격"
 
고용부는 이번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MBC 내부에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만연하고 프리랜서로 계약돼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용부가 MBC 직원을 대상으로 조직 문화 전반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252명 중 115명(45.6%)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피해를 입었거나 주변 동료가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입직 경로에 따른 부당한 대우, 무시 등 차별을 받았다는 응답도 있었다.
 
고용부는 "오 씨에게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MBC 내부의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제출받고 그 이행 상황을 확인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선을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상 캐스터가 포함돼 있는 보도ㆍ시사교양국 내의 프리랜서 35명 중 25명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확인됐다.
 
주로 프리랜서 신분인 편집PD, 취재PD 등은 MBC와 업무위탁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인력 운영 과정에서 메인PD로부터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상 지휘ㆍ감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규직 근로자들과 함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독립된 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고용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업무처리 실태에 맞게 현재의 근로조건보다 저하되지 않는 범위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시정할 것을 지시하고, 그 이행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MBC는 방송지원직 및 계약직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을 과소지급하는 등 총 1억8400만 원의 임금체불과 6건의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김민석 고용부 차관은 "그간의 지속적인 방송사에 대한 지도ㆍ감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항이 적발되고, 인력 운영상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향후 주요 방송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족 등 "고용부가 MBC에 면죄부 줬다"
 
오 씨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된 후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고용부가 MBC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엔딩크레딧, 민주노동당, 직장갑질119 등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MBC 故 오오안나 기상 캐스터 사망 사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은 방송계가 이번 고용부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악용해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 판단을 피해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은성 샛별 노무사사무소 대표공인노무사는 "괴롭힘이 성립하는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업무상 위계질서인데, 독립된 프리랜서라면 어떻게 선후배 관계가 성립할 수 있겠나"라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 씨에 대한 지휘ㆍ감독은 프리랜서 기상 캐스터인 선배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했다. 그것을 업무상 지휘ㆍ감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앞으로 방송계는 프리랜서를 통해 업무 지시를 내려 근로자성 판단을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대법원에서 과거 MBC 프리랜서 PD들의 근로자성을 판단한 사례와 비교해 보면 오 씨 또한 MBC의 지휘ㆍ감독하에 지정된 근무장소에서 일하고 급여를 받았으니 근로자가 확실하다"며 "근로관계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법리인데 고용부는 이를 무시했다. 고용부는 책임을 져야 할 MBC에게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문정은 민주노동당 부대표는 "직장 내 위계서열과 생계로 인해 직장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취지를 무시한 고용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에 분노를 지울 수가 없다"며 "노동법을 전면 개정해 모든 불안정 근로자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 씨의 어머니인 장연미 씨는 "유가족은 이번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MBC가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어째서 노동자가 아닌 것인가. MBC가 오 씨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