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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5-05-26 08:40:00

    수정 : 2026-09-07 11:21:49

갈 길 먼 근로자 작업중지권 ‘실질 보장’…행사 요건 여전히 ‘불명확’

2025-05-26 08:40:00



노동계, ‘요건 명확화ㆍ노조 중지권’ 포함 법 개정 요구…경영계는 ‘노사 자율’ 강조
[2025년 6월호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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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진 제주도의 한 공사 현장(사진=뉴시스)

    근로자 작업중지권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작업중지권 행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행사 요건을 명확화하고 노조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노조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경우 경영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업중지권은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의 의무로 처음 도입됐고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시행된 건 1995년부터다.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큰 변화가 찾아온 건 지난 2019년이다. 2019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에 대해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다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규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일부 우수 사례 있지만…실질 보장은 아직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경우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 현장의 위험을 줄여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고용노동부는 작업중지권 우수 사례로 삼성엔지니어링을 선정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작업 현장에 작업중지권 홍보 현수막을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작업중지권 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작업중지권을 사용한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삼성엔지니어링은 위험 요인을 95건 제보받아 개선했다.
     
    삼성물산도 우수 사례로 꼽힌다. 삼성물산은 2021년 3월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했고, 2024년 3월까지 국내외 113개 현장에서 1355건의 작업중지권이 행사됐다. 삼성물산은 근로자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한 이후 현장 재해발생률이 매년 15%씩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이다. 중소 건설 현장ㆍ공공분야에서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작업중지권 실질 보장, 노동자 참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토론회'에서는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들이 소개됐다.
     
    박세중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한여름에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면 숨이 턱턱 막혀 쓰러질 것 같지만 작업을 잠깐 멈추겠다고 말할 수 없다"며 "건설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3년 차 조리사인 정경숙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장도 "학교에서 조리사 인력이 부족해 급식조리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지만 일을 멈출 수 없다"며 "학교장의 강요와 학부모 민원으로 인해 작업중지권은 그림의 떡인 상황"이라고 했다.
     
    신현훈 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 조합원도 "서부지방산림청 특수진화대원이 2박 3일 산불을 끄고 돌아와 다음 출동을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라도 작업중지권을 쓸 수 없다"며 "내근을 신청해도 거절당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사용하면 처벌?…여전히 모호한 행사 요건

    작업중지권을 보장받기도 어렵지만, 사용했다가 자칫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이 모호해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법에서 규정한 급박한 위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근로자 작업중지권이 쟁점이 된 첫 사건은 콘티넨탈 사건이다. 콘티넨탈 회사 인근에서 화학물질 티오비스가 유출되자 조남덕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장은 조합원 28명과 함께 근로자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1시간가량 작업장을 이탈했다. 이에 회사는 조 지회장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했고, 조 지회장은 법원에 정직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해 대법원은 "원심이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과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대전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
     
    이어 나온 파기환송심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근로자의 지위가 근로자대표라고 하더라도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근로자로서 이를 행사할 수 있다"며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어 조 지회장이 작업중지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작업중지권 행사가 적법해 징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보장한 판결로 평가받지만,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도 중대재해 발생 시에 대한 작업중지권 가이드라인만 발표한 상황이다.
     
    콘티넨탈 사건에서 근로자 측을 대리한 이두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적법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이 여전히 불명확한 상황"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이 판단기준을 정하고 있어 대법원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다룬 첫 사건인 콘티넨탈 사건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붙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사 모두의 이해를 위해 대법원이 구체적인 판결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고용부가 근로자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 현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이 변호사는 "콘티넨탈 사건에서처럼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 문제가 되고 있다"며 "고용부 가이드라인 등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작업중지권 실질적 보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가이드라인을 제한적으로 만드는 경우 콘티넨탈 사건처럼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가이드라인 밖에 위치해 오히려 작업중지권이 제한될 염려가 있다"며 "가이드라인을 만들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재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실장도 "회사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질 수 있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급박한 위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제시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경영계도 행사 요건 구체화는 필요하다고 봤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근로자가 어떤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관련된 사례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노조도 행사 가능해야"…경영계는 '노사 자율' 강조

    행사 요건 명확화와 함께 노동계는 불이익 시 형사처벌 규정과 노조에도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실장은 "노동자가 재해 발생 위험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행사 요건에 대한 정의를 명확화하고 작업중지권 행사로 불이익이 없도록 보호를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노조 차원의 작업중지권 보장 ▲작업중지를 한 노동자를 해고하고 징계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법제화 ▲작업중지 기간의 노동자 임금, 하청업체 손실 보전 법제화 ▲감정노동 등으로 작업중지권 범위 확대, 폭염 폭우 등 기준을 명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형사처벌 규정도 없이 개별 노동자에게만 작업중지권을 부여해서는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될 수 없다"며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근로자 개인뿐만 아니라 노조에도 작업중지권이 부여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계는 노동계의 주장에 난색을 표했다. 임 본부장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될 필요는 있지만 노조에까지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노조에 작업중지권이 부여되면 쟁의행위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사 자율'을 강조했다. 임 본부장은 "작업중지권은 필요한 권리이고 이것을 경영계에서 보장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며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작업중지권 보장을 위해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사업장 내에서 작업중지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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