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경제6단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4.5일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노란봉투법 제정), 법정 정년 연장 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사 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수립되지 않아 전문가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구체적인 실현 로드맵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 출범, 노란봉투법 코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노동 공약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4.5일제, 노란봉투법, 정년연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노동개혁과 더불어민주당의 노동정책 방향은 크게 엇갈렸다. 대표적인 것이 노란봉투법이다.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란봉투법은 2023년 11월, 2024년 8월 두 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노란봉투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당정이 합세해 노란봉투법을 추진한다면 이번엔 노란봉투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3일 한국노총이 개최한 '새 정부, 노동정책 국정과제의 핵심 방향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정길채 민주당 노동수석전문위원은 노란봉투법 연내 입법화가 목표라고 밝히며 "하청노동자가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초기업 단위 교섭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정책에서도 윤 정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윤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화'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주4.5일제를 거쳐 주4일로 나아가겠다는 게 새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핵심이다.
 
앞서 윤 정부는 근로시간의 선택권 확대를 목표로 현행 주 단위로 운영되는 연장근로를 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로 확대하는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주69시간이라는 역풍에 부딪혀 발표 보름 만에 개편안을 철회했다. 이어 현행 주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서 연장근로시간 단위기간을 확대하겠다는 안을 내놨으나 이 역시 입법에 실패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근로시간의 실질적 단축을 키워드로 잡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주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지원을 통한 자율적 도입 이후 실 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을 통해 주4.5일제를 모든 기업에 확산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궁극적으로는 주4일제를 실현해 2030년까지 우리나라 평균 근로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 대통령은 고령자 계속 고용 방식과 관련해 65세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늘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퇴직 시기를 일치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노동계, 경영계,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아직이다. 대통령실과 국정기획위원회가 공약 검토에 착수하면 이후 개혁 과제를 발표하고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정 노동수석전문위원은 "대통령실에서 노동정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지 판단할 것"이라며 "실현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 "구체적인 로드맵ㆍ사회적 대화 중요"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노동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사 갈등이 격화될 수 있는 노란봉투법의 경우 입법 시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수라고 했다. 정 교수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우려가 많지만, 노란봉투법은 원청 중에서도 사내 하청과 같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 등에게 공동 사용자 책임을 지자는 것"이라며 "해당 사안은 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보다는 정부가 정책을 세밀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노동정책이 개념에만 매몰되지 말고 실제 노동현장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실현 가능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며 "노동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정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시장 조사를 통해 현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추진할 노동정책에 대해 노사 간 이견이 큰 만큼 추가적인 사회적 대화가 필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들은 세대별, 기업 규모별, 산업별 다양한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다"며 "최대한 이해당사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상호 입장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도 "특히 정년 연장은 청년 일자리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가 필수적"이라며 "다만 사회적 대화가 꼭 경사노위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이미 정년 연장 TF가 만들어졌으니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고령자 고용법에 따라 고령자를 고용하게 되면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는데 이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 "신속하게 이행해야"…'실용주의ㆍ우클릭' 경계

노동계는 당정이 빠른 시일 내에 주요 노동 공약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1본부 본부장은 "당선 후 100일 동안이 새 정부가 가장 추진력이 있는 시기"라며 "이 시기에 친노동정책이 결과물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4.5일제는 임금 삭감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이라며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제대로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정책실장도 "이 정부의 노동 공약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확대하고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공약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노란봉투법 입법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봤다. 유 본부장은 "노란봉투법은 이미 법원 판결이 따르고 있는 실질적 지배력설을 입법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으로 사용자성이 넓어지면 교섭대표노조 제도, 교섭창구 단일화 등 등 노동조합법 전반을 개정해야 해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이미 실질적 지배력설이 판결 법리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돼도 노사관계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를 이유로 친노동정책의 시행이 늦춰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 본부장은 "정년 연장의 경우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졌고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민주당에서 정년연장 TF를 통해 노사정이 논의해 온 사항"이라며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더 늦춰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경사노위 참여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며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노동계는 이 대통령의 노동개혁이 늦어질 경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이 대통령에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실용주의"라며 "실용주의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도 "새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 인선이나 대통령실 노동정책비서관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노동정책 방향과 구상이 뚜렷하지 않은 것과 연관돼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구체적인 노동정책 방향과 구상을 마련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며 "대선 기간 이 대통령 본인에게 씌워진 도덕성 문제, 강성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우클릭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우려' 표하며 신중히 지켜보는 경영계

경영계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실현 방안이 나오지 않아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란봉투법, 주4.5일제, 정년 연장 등에 대한 입장은 대선 기간과 동일하게 우려하는 입장"이라며 "아직 이 정부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발표되지 않아 신중하게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노동정책들이 아직 국정과제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대선 기간 이 대통령의 주요 노동 공약에 우려를 표해 왔다. 지난달 22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노란봉투법으로 사용자의 방어 수단이 사라지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다"며 "노조에게 부여된 권리에 비교하면 기업의 대응 수단이 너무 부족하다.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기보다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을 입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주4.5일제와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경총은 우려를 표했다. 손 회장은 "주4.5일제가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주4.5일제는 노사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은 청년 채용을 막을 것"이라며 "퇴직 후 재고용 중심의 고령자 고용정책을 통한 세대 산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소ㆍ영세기업의 경우 주4.5일제와 정년 연장에 대한 고민이 더 깊다.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 전문위원은 "주4.5일제는 도입에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줄줄이 폐업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소공연은 주4.5일제 도입에 따른 도심지역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우려했다. 류 전문위원은 "도심권의 소상공인들은 주변 근로자들이 출근을 해야 소득이 생긴다"며 "주4.5일제로 휴일이 늘어나면 도심권 소상공인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헌ㆍ박정현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