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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5-06-27 16:29:59

    수정 : 2025-06-27 16:33:41

‘한국형 갑질’의 민낯, 해외까지 번졌다

2025-06-27 16:29:59



‘한국형 갑질’의 민낯, 해외까지 번졌다
[2025년 7월호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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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갑질'은 우리 사회에서 만연한 직장 내 괴롭힘의 일종이다. 갑질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자면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로, 위계질서와 서열 중심의 문화가 강한 한국 조직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물론 해외에도 권력형 직장 괴롭힘은 존재하지만, '한국형 갑질'은 그 정서와 양상에 문화적인 독특함이 있다. 일상화된 무례함, 암묵적 동조, 침묵 속 방관 등은 갑질을 사회적 관행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고 피해자는 점점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고립된다.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이나 해외 기관이 한국인에게 한국식 갑질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그 원인을 추적해 봤더니 대부분 한국인으로부터 학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국제사회에서는 지탄받아야 할 일인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갑질을 해외로 퍼뜨리고 한국으로 역수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사회 전반에 걸친 병리적 구조를 반영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한국에 대한 신뢰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국제무대에서는 문화적 예의와 상호 존중이 기본이 되는 만큼, 한국의 '갑질 문화'는 국제 기준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1. 민간기업 종사자 사례
     
    사례1. 네덜란드지부에서 발생한 음주 강요와 성희롱
     
    네덜란드에 진출한 한 국내 대기업의 지부에서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인 관리자가 현지 직원들에게 한국식 갑질을 그대로 적용한 사례다. 그는 한국에서 흔히 보이던 음주 회식 문화와 상명하복 관행을 현지에서도 그대로 자생했다. 퇴근시간 무렵이면 부서원 중 몇 명을 지목해 술자리에 동석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기꺼이 응한 직원들에게는 중요한 프로젝트나 핵심 업무를 배정하는 등 '보상'을 제공했다. 반면 따라오지 않은 직원들은 철저히 소외되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처음에는 남성 직원들이 중심이었지만, 점차 여성 직원들에게도 음주 자리를 요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까지 발생했다. 껴안기, 손을 잡고 놓지 않기 등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동이 이어졌음에도, 그의 권한을 의식한 일부 남성 직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동조하거나 방관했다. 특히 여성 인턴들은 팀 내에서 동조자가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고립감을 느꼈고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사례는 한국 조직에서 파견된 관리자의 문화적 민감성 부족과 권력 남용이 현지 직원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례2. 영국 내 한국인 직원에 대한 역차별
     
    영국에 진출한 또 다른 국내 대기업은 영국 현지에서 한국인 직원과 백인 직원을 각각 채용했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의 이력이다. 한국인 직원은 오랜 영국 거주 경력을 바탕으로 명문대에서 학업과 경력을 쌓은 인재였다. 반면 백인 직원은 한국인 직원과 비교했을 때 학력이나 경력이 저조했다. 그럼에도 기업은 백인 직원에게는 영국 현지 기준에 부합하는 높은 연봉을 제시했고, 한국인 직원에게는 한국 본사 기준의 낮은 연봉을 제안했다. 이에 한국인 직원이 이의를 제기하자 한국인 상사는 마지못해 연봉을 소폭 인상했지만, 한국인 직원이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에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의 업무 환경이었다. 한국인 상사는 연봉 문제로 한국인 직원을 불쾌하게 여겨 그에게 까다로운 업무와 잡무를 몰아주고 수시로 야근을 지시했다. 백인 직원이 티타임을 즐기다가 정시에 퇴근할 때 한국인 직원은 매일같이 눈코 뜰 새 없이 일해야 했다. 상사가 한국인 직원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본 백인 직원도 점차 같은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례는 단순한 연봉 차별을 넘어, 조직 내부의 권력 구조와 인종 간 위계가 어떻게 합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례3. 인도지사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인도에 진출한 한 한국 대기업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해당 기업은 인도 현지에서 인도인 직원과 백인 직원을 함께 채용했다. 인도인 직원은 영국의 명문대에서 공부한 고학력, 고경력 기준을 갖춘 직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봉은 인도 현지 기준에 따라 낮게 책정됐다. 반면, 경력도 학력도 부족한 백인 직원에게는 한국 본사 기준의 연봉이 적용됐다. 인도인 직원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인 상사는 "다른 인도 회사에 가도 이 정도는 못 받지 않냐"며 무시했다. 결국 인도인 직원의 연봉을 약간 인상 받는 데 그쳤고, 해당 직원은 이후 직장 내에서 더욱 뚜렷한 차별을 경험하게 됐다.
     
    인도인 직원의 업무량은 백인 직원보다 훨씬 많았고 인도인 직원에 대한 상사의 말투나 태도도 현격히 달랐다. 상사는 인도인 직원들 앞에서 한국어로 욕설을 섞어가며 비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차별을 넘어 국제 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인종적 우월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2. 공공부문 종사자 사례
     
    사례1. 미주권 파견 공무원의 접대 강요
     
    미주권에 파견된 한 공무원은 외국인 직원을 대동하고 한국을 방문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국내 기관장에게 자신들을 '잘 챙겨 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장은 부서장급 직원을 배정해 그들을 접대했다. 그런데 공무원은 기관장에게 행사에 참석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 행사는 타 부처 주최 행사로, 한국어로 진행되고 행사였다. 참석을 요구한 날의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외부인이 참석하고 통역을 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무원은 무리한 요구를 이어갔고, 함께 방문한 외국인 직원도 당황스러워할 정도의 압박을 행사했다.
     
    이후에도 그가 소속된 해외 조직은 국내 기관에 반복적으로 과도한 요청을 해 왔다. 국내 기관이 개발한 자료를 무료로 번역해서 이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직원 교육을 위한 무료 줌 교육을 요구했다. 실무자가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면 기관장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압박하기도 했다. 이는 공무원이 앞장서 보여준 갑질 문화가 외국 기관에까지 내면화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사례2. 용역을 빌미로 한 접대 요구와 청탁
     
    동남아에 파견돼 근무하던 한 공무원은 한국 기관의 국제협력부서장과의 인연을 이용해 자신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형식의 행사를 개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에서 개인적인 일정이 있었으나 자비로 항공권을 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체류 일정에 맞춰 행사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정작 행사 개최된 날은 계속 함께하지도 않고 도중에 자리를 비웠다.
     
    자신이 속한 기구의 예산으로 한국 기관에 용역을 줄 테니 대신 특정인을 공동 연구진으로 이름을 올려 수당을 지급하란 요구도 했다. 나아가 그 특정인이 속한 기관에 재용역을 주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예산 유용에 해당해 기관 감사에도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해당 국내 기관의 예산을 대응투자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대응투자는 기관 대 기관이 모여 함께 논의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으로, 파견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요구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실무자는 이런 점을 언급하면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 공무원은 실무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인사 교체를 요청했다. 이런 행태는 국제기구의 운영 원칙은 물론, 대한민국 공무원 윤리 기준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에도 그는 그 권한을 사유화해 갑질을 멈추지 않았다.
     
    교체된 다음 실무자는 공무원이 요구한 대로 그 특정인을 공동 연구진에 넣어야 했으며 영어조차 제대로 못 하는 그 특정인이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예산을 제공해야 했다.
     
    사례3. 아프리카 국제협력 현장의 무책임한 처신
     
    한 국제협력 사업을 수행하던 한국인은 아프리카에서 프로젝트를 운영하던 중 워크숍이나 회의 일정을 자신의 흥미에 따라 무단으로 취소하거나 변경했다. 특히 행사가 예정된 전날 갑자기 "다른 기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통보해 모든 일정을 변경하게 하는 일이 반복됐다. 현지 직원은 이처럼 갑작스러운 지시가 떨어지면 참석자들에게 연락하고 장소를 취소하고 차량을 다시 섭외하는 등 난감한 업무를 반복해야 했다. 같이 일했던 다른 한국인 직원도 이러한 일 처리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항의했다.
     
    해당 책임자는 과거 국제기구에 파견됐을 때도 비슷한 갑질과 무례한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의 존재는 해외 근무를 마친 이후에도 오랫동안 '문제 인물'로 회자될 정도였다.
     
    3. 해외에서까지 갑질하는 이유

    앞선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한국에서 하던 갑질을 해외에서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제 버릇 못 고치고 해외에 나가서까지 갑질 행각을 벌이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⑴ 가해자 본성 : '약자 찾기'에 능한 사람들
     
    가해자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는 데 본능적으로 능숙하다. 상대방이 외국인이라도 언어에 약하거나 계약상 열세에 있거나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면 갑질의 대상이 되기 쉽다. 가해자들은 반항이 적을 것 같은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 타인을 이용하거나 지배하려는 성향을 발휘한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백인 피해 사례는 비교적 드물고 피해는 여성, 청소년, 체구가 작거나 소극적인 성향의 인물에게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반항하지 못할 약자'만을 선택적으로 겨냥하는 가해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⑵ 외국인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망
     
    해외에서까지 가해행위를 하는 한국인 파견자들의 사례를 보면 외국인, 특히 백인 앞에서는 공손한 척하지만 한국인 후배나 동료, 유색인종에게는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이중성은 백인에 대한 사대주의와 '나는 이 정도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외국인에게 과시하려는 욕구가 합쳐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이런 차별적 태도는 백인들에게 "한국은 무리한 것도 요구하면 들어준다"는 잘못된 학습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한국 기관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자충수가 된다.
     
    ⑶ 갑질을 용인하는 조직문화
     
    위의 두 요인은 가해자의 개인적 특성에서부터 나온다. 이러한 개인적 특성보다 훨씬 근본적인 원인은 갑질을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조직문화에서 나온다. 이런 문화를 가진 조직은 갑질을 '통제 방식'이나 '성과 창출의 도구'로 오인하고 이를 근절하려는 내부 견제 장치를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조직 내에서 장기간 갑질 문화에 익숙해진 구성원이 해외로 파견되면 그곳에서도 한국 조직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해외 지부에서 신고가 접수돼도 조직은 이를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고 조직문화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곤 한다.
     
    4. 한국형 갑질은 수출품이 아니다
     
    해외로까지 번지는 한국형 갑질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우리가 바꾸지 못한 오래된 조직문화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 확산한 결과이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안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우리는 해외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각을 가져야 하며 조직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체계를 갖춰야 한다. 성찰 없는 확산은 결국 우리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갑질은 결코 한국의 수출품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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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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