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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노사관계 전망에 대한 원고를 요청받으면 늘 곤혹스럽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고를 쓰겠다고 수락한 이유는 현재를 점검해 보기 위함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일은 현재에서 출발하고 노사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노사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노사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이다. 법제도 변화 등 제도적인 측면도 살펴야 하고 경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경기 변동 등에 따라 일자리 양이 달라지는 고용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정치 환경의 변화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요소다.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 노사관계의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전망 위한 조건 분석
노사관계를 전망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다른 하나는 행위자들로서 노사의 전략이다. 노사관계의 주된 행위자는 노조와 사용자인데, 노사가 현재 어떤 전략과 태도를 가졌는지에 따라 노사관계의 결과가 달라진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노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부이므로 이재명 정부의 등장은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를 윤석열 정부와 비교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부터 화물연대 및 건설노조와 대립하면서 안전운임제 폐지 및 노조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반노동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대화와 노정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주요 정책이었던 노동시간 유연화도 국민적 반대로 추진이 중단됐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탄압해 보수층 결집을 노렸으나 국민 다수가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비해 이재명 정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현직 철도 기관사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내정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소년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이력을 가지고 있듯이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을 존중하는 정책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법제도 변화도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노동법 제·개정이 예상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민주당은 다수당이면서 집권에 성공한 정당이 됐다.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추진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에 유리한 조건이다. 가장 주목받는 것 중 하나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다. 원청 사용자가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교섭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인 노동조합법 2조와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은 참여자의 책임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는 것이 요지인 노동조합법 3조가 관심 대상이다. 이미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부에서 두 번이나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정권 교체 이후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원청 사용자의 교섭 의무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법 개정 이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 때 교섭의 당사자가 되는지에 대한 후속 논의가 뒤따를 것이며, 기준에 부합하는 원청 사용자는 공동교섭의 의무를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다수의 사내 하청노조는 하청 사용자만이 아니라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하청 간 임금·고용·노동 복지의 격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법제도 중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나 노동법원의 설립 등도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차별받지 않은 권리와 사회보장 등을 포함하는 법률로, 민주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정한 법률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노동법원 역시 전문법원의 기능을 가지게 되므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추진을 구체화하지 않았으나 공약으로 제시했고, 국정과제로 포함돼 추진된다면 노사관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셋째, 노동시장의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무엇보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생산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기존 노동력의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혼이나 출산, 그리고 보육으로 인해 일 경력이 중단된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과 중·고령 인력의 노동력 활용이 중요해진 이유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일·생활 균형을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를 늘릴 수 있는 정책으로 정년 연장이 고려되고 있다. 특히 정년 연장은 최근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정책 필요성이 늘어났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 연령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논의를 촉발한 이유 중 하나였다. 여성과 중장년의 노동시장 참여 역시 노사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예를 들어 기업 내 성평등 정책이 강화되거나 정년 연장에 따른 업무 분담과 임금체계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의 경우 일본식 계속근로가 아닌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어 법 개정 시 효과를 받는 대상은 전 국민이 될 것이며 노사는 정년 연장에 따라 일에 대한 배분과 보상, 청년 노동자 일자리 지원 등을 논의할 것이다.
넷째, 기술 변화 등의 환경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기술변화는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순차적으로 일자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변화는 많은 플랫폼 노동을 창출하고 있다. 플랫폼 형태로 일의 중개가 가능한 일자리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임금 노동자가 아닌 1인 도급 형태이기 때문에 이들의 불공정 계약 및 취약한 사회보장이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 여기에 더해 새 정부는 인공지능(AI) 기술 강국을 주장하면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 강국이 되겠다는 큰 포부를 제시하고 있어 기술 변화로 인해 일자리에 변화가 예상된다. 대체로 중간 숙련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술 변화는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를 둘러싼 노사 간 쟁점이 형성될 수 있다. 나아가 정부 역시 중장년 직업훈련, 재고용 서비스 등 고용정책을 고도화해야 할 책임이 늘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 변화를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그런데 다른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가 노사 당사자다. 노사 당사자가 어떤 전략적 태도를 가지고 있을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재명 정부에서 노사관계를 전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노조는 이재명 정부가 적지 않은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집권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책적 필요성을 인지하면 당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가능한 상황이다. 노조는 이를 고려해 정부와의 무리한 대립보다는 정부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전 민주당 정부에서 노조는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친노동자 정책을 추진하려는 전략을 가지기도 했으나 여러 차례의 학습효과로 인해 압박 전략보다는 유연한 설득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노조의 한 축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과 전략적 연대를 맺었으므로 운명 공동체와 다름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즉, 한국노총 스스로 공동 정부 역할을 자임할 수 있으므로 압박보다는 협력 전략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우세할 수 있다.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민주당과 전략적인 연대를 하지 않았으나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고 산하 조직이 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다수 체결하기도 했다. 따라서 민주노총 역시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입장이며 이를 계기로 노정 간 협의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전략은 일관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관계 측면만 보면 친노동 정부일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고 대립할 수 있지만, 이재명 정부가 경제성장을 1순위 과제로 내세워 내수 진작과 함께 신산업 지원 등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노동정책만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합리성을 갖춘 사용자는 경제성장과 내수 진작 그리고 기업 지원이라는 큰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기업의 생존에 다소 직접적이지 않을 수 있는 노동정책은 양보할 수 있다는 전략을 가질 수 있다. 다만, 기업으로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능력과 지원이 기대와 달라진다면 노동정책 전투에서도 상대방에게 지지 않기 위해 반정부 태도 등 다양한 전략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새 정부의 노사관계 전망
지금까지 살펴본 노사관계 환경을 토대로 앞으로의 노사관계를 다음과 같이 전망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재명 정부 초기 단계에서 노사관계는 극심한 대립보다는 원만하게 출발할 수 있으며 노정 협의, 노사정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노조와 사용자가 정부와 의도적인 대립과 갈등 전략을 취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초기에 해묵은 노동과제를 처리할 것으로 보이며 경제성장 우선 정책도 변함없이 추진할 것인데, 이러한 정책들이 무리 없이 추진된다면 노사 역시 이전 정부보다 상대적 만족도가 높아져 정부와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모든 시나리오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듯 정부의 노사관계 전략도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수 있다. 정권교체 초기는 서로 양해하는 부분이 많고 기다릴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쟁점 등 어려운 일이 많아질 것이고, 노사의 정부에 대한 인내심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노조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약속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속도가 더딜 경우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일 수 있으며, 사용자 역시 기업에 대한 지원이나 경제 컨트롤 타워로서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한다고 판단할 경우 노사관계에 있어서 정부나 노조에 양보하기보다 노조에 대립적인 정책을, 정부에는 비판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정부에 대한 비판 기조를 보이면 경제신문 등 보수언론 역시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늘려 정부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가 일차적으로 경제정책과 노사관계 정책을 평가받는 첫 번째 고비가 될 수 있을 것이며 2026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추진의 방향과 동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남은 6개월 정도가 이후 노사관계를 평가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셋째, 현장 노사관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며 다양한 쟁점도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 공약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초단시간 근로자 등 다양한 유형의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취약노동자의 이해 대변 기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노조의 조직률이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조합법 개정 외에 공약으로 제시한 공공부문 초기업 교섭 지원 역시 돌봄과 공무직 등 공공부문 노사관계 활성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영역에서 노조가 조직되거나 기존의 교섭형태가 바뀌게 되면 필연적으로 분쟁이 늘어나고 때론 파업 등 갈등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분쟁과 갈등을 조율하는 정부의 역할도 이전보다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위원회 등이 주목받는 이유다.
지금까지 새 정부 노사관계를 전망하기 위해 환경 분석과 노사관계에 미칠 결과를 간단히 예상해 봤다. 우리나라는 노사관계에 미치는 정부의 영향이 커 정부의 교체와 국정 철학의 변화는 노사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국가적인 어려움이 많고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중요한 지금, 모든 짐을 정부에 떠넘기고 구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노사도 정부 못지않게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각자 어떤 사회적 책임을 분담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