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고용상 성차별 시정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시정명령 비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2022년 5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접수된 차별시정 신청 중 시정명령을 내린 비율은 겨우 18.2%에 불과하다. 이를 분석한 직장갑질119는 제도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신뢰도를 문제로 지적하면서 '시정 신청을 해도 별 소용없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제도에 대한 불신은 2025년 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실시한 성별 임금 격차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전체 응답자(1095명)의 84.6%가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반면, 임금 차이에 대해 회사에 문제를 제기한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86%에 달했다.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서'(37.6%), '불이익이 우려돼서'(20.3%), '직장 내에서 까다로운 사람으로 인식될까 봐'(10.7%) 등의 응답이 높았다. '고용평등'을 위한 남녀고용평등법이 현실에서는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상 성차별을 금지하고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제정 이후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효성 있는 법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지적되고 있으며 임신, 출산, 육아 등 생애주기적 요인으로 인한 'M자형 곡선'은 성역할 이데올로기와 채용, 배치, 승진, 임금 등 전반에 걸친 구조적 차별을 반영하고 있다. 고용평등을 선언한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반복적인 좌절을 안겨 왔으며, 이는 법적 장치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낳고 있다.

그렇다면, 남녀고용평등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의 구조적 연계와 보완이 필수적이다. 근로기준법은 성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비정규직·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가사 노동 등 여성 노동자가 밀집한 고용형태와 업종, 직종은 법의 적용에서 배제되거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한 '표준화'된 전일제 정규직 남성을 기준으로 설정된 노동조건은 오히려 성차별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 개념 확대, 여성 집중 업종·직종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보호 강화, 성별 특성을 반영한 노동조건 재설계 등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성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간접고용·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비율이 높은 현실에서 노동기본권 보장은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한 중요한 과제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 노동시간, 직장 내 안전 등 기본적인 노동권에서도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는 만큼 노조 가입과 집단적 보호, 교섭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동조합법 개정이 필요하다.

둘째, 복합적 위기 속에서 여성 노동이 처한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경제위기와 사회적 재생산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서도 일터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여성 노동자들은 돌봄 부담을 전가 받으며 성별 임금 격차, 유리천장, 모성 페널티, 경력 단절 등 구조적 차별에 직면해 왔다. 성평등에 대한 인식 부족, 고용주의 책임 회피, 젠더 혐오 문화 등은 여성의 삶과 노동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한 여성 혐오 확산은 심리적 위축과 사회적 배제까지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지금까지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수준에 머물렀고, 성평등 노동 실현을 위한 실질적 정책 개입은 부재했다. 성평등 노동은 더 이상 민간의 선택에 맡겨 둘 수 없는 국가의 책무이며, 여성 노동은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이자 정책이다. 성평등한 고용 구조의 실현은 국가가 주도해야 할 구조 전환의 전략이다.

셋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의 개념적 혼재를 넘어 고용상 성차별 해소에 집중하는 독립적인 법적 틀로서 남녀고용평등법을 재정립해야 한다.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일·가정 양립 제도가 결합됐지만, 이는 저출산 대응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라는 목적에 가까웠다. 제도 도입 이후에도 여성의 가사·돌봄 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으며, 육아휴직 제도 역시 일부 대기업 및 공공부문 노동자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고용보험 기반의 급여 체계는 많은 노동자들을 제도 밖에 머물게 했으며, 성역할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의 고용불안, 승진 탈락, 경력 단절 해소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법의 본래 목적이었던 남녀고용평등 실현과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을 구분해 각각의 목표에 부합하는 법적 틀과 정책 수단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고용상의 성차별을 실질적으로 시정하는 데 집중하고, 일·생활 균형 제도는 노동자의 시간 주권 보장과 돌봄의 사회적 책임 분담, 육아휴직의 남성 의무화, 보편적 접근권 확보 등의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넷째, 성별 임금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성평등 임금 공시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현재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한 법 조항은 협소한 사업장 기준, 사용자 중심의 판단 권한, 노조의 참여 부재, 임금 구조의 불투명성 등으로 인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는 직종,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 지역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채용부터 직무, 직급, 임금 구성에 이르기까지 성별 분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또한 노조의 실질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사용자 중심의 임금 결정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이는 법이 명시한 동일가치노동 원칙을 실질화하고 성차별적 임금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다섯째, 고용상 성차별에 대한 실질적인 법 집행과 제도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반복적으로 드러난 채용, 승진, 임금 차별에도 불구하고 법적 처벌은 형식에 그쳤다. 고용노동부의 지도·점검은 성희롱 예방 교육에만 치중돼 구조적 차별 실태에 대한 개입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용평등상담실, 명예고용평등감독관, 노동위원회 시정제도 등은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장과 정책 간 유기적 연결이 부재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강력한 제재 수단과 채용, 승진 등 절차의 투명성 확보, 제도 간 연계 시스템 마련, 여성 노동자 조직과의 협력 강화 등을 통해 '상담-시정-정책 개선'이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선언적 법 조항을 넘어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법이 삶의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효적 도구가 돼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현실의 거울이다. 성평등한 노동은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국가는 성평등을 선언이 아닌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법과 제도를 현장과 연결하는 실질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여성의 권리가 존중받는 일터야말로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이며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