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두고 두 가지 서로 다른 논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현재의 고용보험이 비정규직, 임시·일용직 근로자 등에 대해 사각지대가 크고,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등 새로운 불안정 노동 증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어 포괄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실업급여의 반복수급과 부정수급이 증가하고, 고용보험 기금 적자가 나고 있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 논의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 일부를 고용보험에 포괄한 전 국민 고용보험을 고용보험 재정 불안의 범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일견 고용보험의 미래에 대한 이 두 관점은 화해할 수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실업급여의 목적은 '근로자 등이 실업한 경우에 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근로자 등의 생활안정과 구직 활동을 촉진'(고용보험법 제1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없애고 노동시장의 새로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다. 또한 제도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정수급 등 도덕적 해이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실업급여의 미래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도덕적 해이 문제를 우려하는 쪽에서는 실업급여의 반복수급, 부정수급이 증가해 '달콤한 시럽급여'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급여 하한선이 높고 급여 수급 요건이 관대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용이 불안정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노동자 등을 포괄한 노무제공자 고용보험도 지급이 증가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첫째, 급여 수급기간이 짧다.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수급기간은 120~270일인데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수급기간이 1년 이상인 것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수준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자발적 이직에 대해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자발적 이직 시에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도덕적 해이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인 '의도적으로 실업해 장기간 재취업하지 않으면서 실업급여를 수급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나타날 수 없다. 새롭게 고용보험이 포괄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은 고용이 불안정하지만, 실제 실업급여 수급률은 일반근로자보다 오히려 크게 낮다. 노무제공자 고용보험은 수급 조건이 엄격하고, 노무제공자 소득 활동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 결과 노무제공자들은 납부하는 고용보험료에 비해 급여 혜택이 더 적다.

요컨대 현재 우리의 고용보험 실업급여에서 부정수급이나 부적절한 반복수급이 증가하고 있다면 이는 제도 설계상의 결함보다는 제도 운영상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적절하게 구직활동에 참여하고 가능한 빨리 재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은 고용센터를 중심으로 한 공공고용서비스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고용서비스 기관은 인프라, 인력, 역량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일부 제도적 조정도 필요하지만, 부정수급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대응은 고용서비스 강화를 통해 실업자 개개인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개별화하고 고도화하는 것이 돼야 한다.

노동시장 변화에 조응하는 소득 중심 보편적 고용보험

도덕적 해이 감소를 위해 제도적으로 실업급여를 축소할 필요가 없다면 실업급여의 포괄범위 확대와 부정수급 관리를 동시에 추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 두 가지 중 좀 더 제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은 포괄범위 확대다. 실업급여의 목적은 실업에 따른 소득 상실이 생계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정수급이 만연한다면 제도 신뢰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수급 없는 제도'가 제도의 궁극적 지향점일 수는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기간제 노동을 중심으로 증가했던 비정규직은 사내 하청, 파견 등의 간접 고용으로 나아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와 같은 고용관계 밖 노동으로 확대됐다. 고용보험에 '노무제공자'라는 이름으로 포섭되기 시작한 고용관계 밖 불안정 노동자들은 기존의 비정규직 노동과 달리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고, 그 결과 고용계약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로부터 배제됐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지난 몇 년간 이들 고용관계 밖 불안정 노동자를 점진적으로 적용대상에 포괄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적용이 용이한 직종을 중심으로 대상을 확대하다 보니 많은 직종의 고용관계 밖 노동자들이 아직 적용범위 밖에 있다. 고용보험에 있어서 노무제공자들의 사회적 위험은 실업, 즉 일자리의 완전한 상실에 있다기보다는 소득의 감소 또는 단절에 있다. 따라서 노무제공자의 고용보험은 일자리가 아닌 소득을 보호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임금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보호하는 형태다. 노무제공자의 현저히 낮은 실업급여 수급률은 일정 부분 이와 같은 차이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고용보험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노동시장의 위험구조 변화에 맞춰 새로운 불안정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일자리가 아닌 소득을 보호하는 제도로 발전해 다양한 소득 활동 형태에 맞도록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소득 파악 체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소득 중심 고용보험 제도의 구축은 비정규직이나 임시·일용직 등 기존의 사각지대 축소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고용서비스 강화를 통한 부정수급 관리와 양립할 수 있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