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추석 선물세트가 진열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날인 10월 10일에 연차를 사용해 샌드위치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는데, 사장님이 개천절 연휴부터 추석 연휴까지 7일을 쉬고도 또 연차를 사용하냐면서 연차 사용을 거절했습니다."(직장인 A 씨)
"회사가 여름휴가 날짜를 지정해 두고 전 직원에게 연차를 쓰라고 강요합니다. 회사가 별도로 주는 여름휴가는 없고, 여름휴가 동안엔 사무실 문을 닫을 거니까 출근하지 말래요. 연차를 쓰기 싫어도 써야 하는 이 상황, 맞는 건가요?"(직장인 B 씨)
연차를 원하는 날짜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을 소수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1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중 절반가량은 유급연차휴가를 쓰고 싶어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급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응답자는 50.1%에 그쳤다.
연차 거절하면 근기법 위반일까?
A 씨의 사례처럼 근로자가 신청한 연차휴가를 회사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근로기준법 60조 5항은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는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따지면 회사가 연차휴가를 거절하는 건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다만,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사용자의 연차유급휴가 시기변경권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즉, 근로자가 휴가를 신청한 날 휴가를 줘 회사의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면 회사는 연차 사용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정봉수 강남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근로자에게는 연차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사용자에게는 연차 시기변경권이 있다"며 "근로자의 연차 청구권이 먼저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회사는 시기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정 노무사는 "특히 건물을 계속 관리해야 하는 경비 업무나 납품 기일을 급히 맞춰야 하는 제조업장의 경우 회사가 연차를 승인해 주지 않을 수 있다"며 "개인의 연차 청구권도 중요하지만 법원은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도 같이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의적으로 근로자의 휴가를 거절할 경우 법적인 리스크가 따른다. 연차 거절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면, 법원은 연차 거절 당시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었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우람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연차휴가는 근로자가 청구한 대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연차휴가를 회사가 거절할 경우 거절 사유를 밝혀야 하고, 이후 분쟁이 생길 경우 거절 사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평가에서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과 성격 ▲근로자가 지정한 휴가 시기의 예상 근무인원과 업무량 ▲근로자의 휴가 청구 시점 ▲대체근로자 확보의 필요성 및 그 확보에 필요한 시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A 씨의 사례에선 샌드위치 휴가를 보내고 싶은 10월 10일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 변호사는 "추석 연휴를 가정했을 때 물류, 교통과 같이 업무량이 폭증하는 업계의 경우 회사가 연차를 거절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업무량이 폭증해 모든 근로자가 꼭 필요한 인력일 뿐만 아니라 명절이라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 문 닫으니 연차 써라"…수당 70% 줘야 할 수도
직장인 B 씨의 사례와 같이 여름휴가 동안 문을 닫아 연차를 강제로 소진하게 하는 경우는 근로기준법상 '휴업'에 해당해 수당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회사가 '문을 닫을 테니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귀책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우 변호사는 "회사가 해당 날짜에 문을 닫을 테니 연차를 사용하라고 강제한다면 근로자는 연차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의사표시만 하면 된다"며 "회사가 해당 기간에 운영하지 않으니 근로자에게 연차를 사용하라고 한다면 이는 사용자 귀책에 의해 회사가 노무를 제공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휴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 변호사는 "이처럼 휴업에 해당할 경우, 사용자는 휴업한 날짜에 근로자에게 100분의 70에 해당하는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따라서 이후부터는 연차의 문제가 아니게 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예외적으로 회사가 근로자의 연차 날짜를 정해 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 대표의 서면 합의가 있거나 연차휴가가 소멸되기 2개월 전에는 회사가 연차휴가를 지정해 줄 수 있다.
정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제61조에 따라 근로자 대표가 동의하는 경우에는 날짜를 지정해 연차를 사용하게 할 수 있다"며 "또한 연차 사용 촉진 제도에 따라 연차가 소멸하기 2개월 전에는 회사가 연차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연차휴가를 사용할 날짜를 지정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노무사는 "다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회사가 연차를 임의적으로 지정해 강제로 쉬게 하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건전한 연차 문화 정착하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해야
여전히 많은 근로자들이 연차 사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연차 사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로 손꼽힌다.
소규모 사업장에선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의 67.9%가 지난해 쓴 연차휴가가 6일 미만이었다고 답했다.
우 변호사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있는 근로자들이 노동 강도가 높아 연차를 원하는 때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휴일에는 쉬고 연차를 원하는 때에 낼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특정 업무가 느리게 처리되더라도 '담당하는 사람이 쉬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회사도 급하게 업무를 처리하지 않게 되고, 근로자들이 쉽게 연차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노무사는 "명절에 길게 쉬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면 교통 체증 해소 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루이틀 연차를 사용하는 것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이 길게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기를 높이는 데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제언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