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서울 중구 장충중ㆍ고등학교에서 2025년 지방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관의 명칭을 72년 만에 변경하고 근로감독관을 증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근로감독관의 질적 성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감독관의 내실을 다지려면 근로감독관 채용 시험에서 노동법 시험을 확대하고, 예방 위주의 정책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동부는 지난 4일 근로감독관의 새로운 명칭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이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취약근로자 보호, 노동권 보장, 일터 안전 확보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대국민 명칭 공모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명칭 공모는 단순히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노동부를 '우리 노동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며 "근로감독관이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나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근로감독관 증원해도 산재ㆍ체불 오히려 늘었다

근로감독관 명칭 변경은 이재명 대통령이 근로감독관 증원을 주문하면서 대대적으로 근로감독관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편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5년간 근로감독관 1000명을 증원했는데도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이 늘어난 이유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목표로 9급 근로감독 직렬에서 대거 채용을 실시했다. 그러나 산업재해율은 임기 첫해인 2017년 0.48%에서 임기 마지막 해인 2021년 0.63%로 0.15% 증가했다. 산업재해자 수는 3만3000명 증가한 수치다. 임금체불 또한 임기 시작 이후 점차 증가했다. 2017년 1억3811만 원이었던 체불액은 2019년 1억7217만 원으로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로감독관 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ILO 권고에 따르면 근로자 1만 명당 1명의 근로감독관이 적절하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근로감독관은 2141명, 산업안전감독관은 895명으로 총 3025명이고, 한국의 근로자 수는 2500만 명 수준이다.
 
결국 근로감독관 제도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의 수를 증원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근로감독관의 질적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을 채용하는 과정과 업무 수행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노동부가 고용 중심으로 사고하다 보니 노동 문제에는 소홀했다"며 "근로감독관의 수는 충분한 상황에서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게끔 근로감독관을 채용하는 과정과 업무 수행 전반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감독 자체가 늘어나고 근로감독을 제대로 할수록 임금체불과 산업재해가 늘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효원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건수가 늘어났다는 건 근로감독이 제대로 된다는 징표"라며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면서 오히려 숨겨져 있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현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채용 시험에 노동법 있지만…근기법ㆍ노동조합법에만 초점

근로감독관의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로 채용에 대한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근로감독관 채용 과정에서 노동법 시험을 보긴 하지만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산업재해 감독도 근로감독관의 주요 업무지만, 시험 과목에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고용노동직류 9급 및 7급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 중 일부는 근로감독관에 배치된다. 고용노동직 필기시험은 1차와 2차로 이루어져 있다. 본격적인 실무와 관련된 시험은 2차 시험으로, 9급은 노동법개론, 7급은 노동법 시험을 친다.
 
근로감독관의 실무와 가장 밀접한 노동법 과목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수험생은 이를 중심으로 공부한다. 시험에 합격해 근로감독관에 배정될 경우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외의 노동법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채로 교육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법과 관련된 과목을 아예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이 합격한 뒤 대거 노동부에 배치돼 근로감독관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2025년도 국가직 9급 공채 일반행정직 합격자 10명 중 4명이 노동부에 일괄 배치되기도 했다. 이번 일반행정직 합격자는 총 348명으로 이중 155명이 노동부에 배치됐다. 일반행정직 채용 과정에서는 노동법 시험을 보지 않는다.
 
산업재해를 조사하는 산업안전감독관 또한 마찬가지다. 산업안전감독관은 과학기술직군에서 선발된다. 이들은 노동법에 대한 지식보다는 산업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기준으로 채용된다.
 
근로감독 업무는 법률 해석과 수사권 행사까지 포함된 고난이도의 전문 직렬이다. 또한 여당의 검찰개혁 입법에 따라 검찰의 노동부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근로감독관이 독자적인 수사 권한을 확보하게 됐다. 사법경찰관의 직무까지 수행하는 근로감독관의 경우 노동관계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이 교수는 "검찰 수사관은 채용 시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실무에 필요한 과목을 모두 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뽑을 수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며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기준법 등과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자질을 갖춘 지원자를 뽑을 수 있도록 채용 과정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짧은 교육기간도 문제 지적…해외선 전문가 채용하기도
 
근로감독관 교육기간이 해외에 비해 너무 짧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21년 근로감독관 교육 과정이 대폭 개편되면서 교육기간을 4주 연장하고 교과목도 26개 늘었다. 근로감독관이 되면 12주의 집체교육을 받고 2~3개월의 현장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해외에 비하면 여전히 교육 기간은 짧아 전문성을 키우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해외의 경우 근로감독관 채용 후 실무에 투입되기까지 교육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길거나 처음부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채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프랑스의 경우 한국보다 교육 기간이 훨씬 길다. 근로감독관이 되는 경로는 세 가지다. 외부 시험, 공무원 내부 시험, 노조 임원 등 경력자 시험 등을 통해 입직한다. 이후 합격자는 12개월 동안 공통 기본교육과정을 거치고 6개월 동안 전문화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실무에 투입된다.
 
대만과 브라질은 근로감독관을 채용할 때 자격 요건을 까다롭게 두거나 시험을 엄격하게 보고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채용한다. 대만은 국내외 대학에서 노동, 사회, 법률학과를 졸업해야 한다는 자격 요건이 있다. 동시에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고, 해당 직무에 상응하는 전업훈련 또는 연구업무를 1년 이상 수행하거나 업무 경력이 2년 이상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미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근로감독관으로 선발된다.
 
브라질은 한국과 같이 공무원 시험을 통해서만 임용된다. 단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학력 조건이 붙는다. 근로감독관 시험은 수년에 한 번 비정기적으로 있으며 시험은 4차까지 있다. 다만 여러 차례의 시험을 거쳐 뽑는 만큼 별도의 교육이나 연수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돼 근무한다.
 
근로감독관 교육을 담당한 적 있는 노동 전문 변호사 A 씨는 "노동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채용해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며 "채용 과정 등에 있어 노동부가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간판 바꾸기'보다 전문성 강화가 답

결국 앞서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근로감독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채용부터 교육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되돌아보고 근로감독관 업무 내용까지 폭넓은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해외처럼 처음부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근로감독관으로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근로감독관이 독자적인 수사 권한을 확보하게 되는 등 상황적 변화를 반영해 노동관계법에 해박하고 수사 등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갖춘 인재를 뽑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공무원 시험 통과자 중에 근로감독관을 발령 내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근로감독관을 채용해야 한다. 공무원과 사법 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근로감독관이 될 준비가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근로감독관을 채용하는 항목을 따로 만들고 전문적인 시험 과목을 다시 구성해야 근로감독관의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A 변호사는 "근로감독관의 채용부터 감독직으로 뽑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같은 공무원인 근로감독관에게만 그런 예외를 둘 수 있을지 현실적인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결국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쌓으며 해결해야 하고,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의 경우 업무 분야를 기계, 화학, 건축 등으로 나눠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게 해야 한다. 그러나 채용 구조상 어려움이 많아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감독관의 업무와 역할을 '사후 처벌'이 아닌 '사전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윤 연구위원은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을 감소시키기 위해 근로감독관이 해야 하는 역할은 사전 예방"이라며 "사전 예방을 위해서는 근로감독관이 지금보다 사업장에 현장 방문하는 빈도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연구위원은 "ILO의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근로감독관은 1년에 900여 곳을 방문하고, 홍콩은 700여 곳을 방문한다. 독일만 해도 60~70곳을 방문한다"며 "그러나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1년에 평균적으로 13곳을 방문한다. 현장 방문의 빈도를 늘려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근로감독관의 내실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