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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5-09-23 16:00:00

    수정 : 2025-09-23 16:06:04

정부, ‘ILO 괴롭힘 협약’ 비준 추진…괴롭힘 ‘보호 범위ㆍ개념’ 넓어진다

2025-09-23 16:00:00



비준 후 제도 개선 필요해…전문가들 ‘사회적 대화ㆍ추가 입법’ 강조
[2025년 10월호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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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이 2023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ILO 190호 협약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협약 비준을 123대 국정과제에 포함하면서 괴롭힘 보호 범위 확장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190호 협약이 비준될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제도 개선이 필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 개정보다는 별도의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이번에는 국회 넘을까
     
    ILO는 2019년 6월 제108차 총회에서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위한 190호 협약을 채택했다. ILO 190호 협약은 근로자의 계약 형태와 관계없이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신체적ㆍ정신적ㆍ성적ㆍ경제적 해를 끼치는 행위와 관행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현재 영국, 프랑스, 독일 등 40여 개국에서 비준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ILO 190호 협약 비준을 추진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은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5인 이하 사업장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직장이 지옥으로 여겨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ILO 190호 협약이 조속히 비준되고 이것이 현실에 투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무산됐지만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에 ILO 190호 협약 비준을 포함시키면서 22대 국회에서도 다시 비준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95번 국정과제 '일ㆍ가정ㆍ삶이 공존하는 행복한 일터'의 세부 내용으로 ILO 190호 괴롭힘 방지 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위해 ILO 190호 협약 비준 추진 연구 용역도 발주한 상태다.
     
    협약 비준 시 '보호 범위ㆍ괴롭힘 개념' 확장
     
    협약이 비준될 경우 두 가지의 큰 변화가 생긴다. 하나는 괴롭힘 보호 대상의 확대다.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늘어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를 괴롭힘에서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고(故) 오요안나 사건이다. 지난해 9월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유서를 남긴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지난 5월 고 오요안나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승길 한국괴롭힘학회 공동회장은 "협약은 일하는 괴롭힘 보호 범위를 직장으로 한정하지 않고 '일하는 모든 곳'으로 확장해 비준 시 괴롭힘 보호 대상 범위가 늘어날 것"이라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도 괴롭힘 보호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다.
     
    하은성 노무사사무소 샛별 대표공인노무사는 "협약이 비준될 경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져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도 괴롭힘으로부터 보호가 가능해진다"며 "근로자성에 상관없이 괴롭힘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약이 비준되면 괴롭힘 개념에서 지속ㆍ반복성이 제외된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괴롭힘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다수의 법원 판례가 지속ㆍ반복성을 괴롭힘 인정 요건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는 명시적으로는 괴롭힘 개념에 지속ㆍ반복성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법원 판례에서는 지속ㆍ반복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괴롭힘 개념에 지속ㆍ반복성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노사의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협약에 따르게 되면 지속ㆍ반복성이 괴롭힘 개념에서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하 노무사는 "산재의 경우 하루를 출근해도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법상 보상을 받는다"며 "직장 내 괴롭힘은 여러 판례가 지속ㆍ반복성을 요구하고 있어 처벌이 어려운데 이는 불필요한 요건을 법원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협약 비준을 통해 지속ㆍ반복성이 명시적으로 제외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협약이 비준되더라도 괴롭힘 판단기준에서 지속ㆍ반복성이 완전히 제외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협약 비준을 명문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롭힘 개념에서 지속ㆍ반복성이 제외되지만 실무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법원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고통의 객관적 입증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판단에서 지속ㆍ반복성을 배제하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 비준이 이루어지면 지속ㆍ반복성이 괴롭힘 개념에서 제외됐다는 보도들이 연이어 나오게 될 가능성이 커서 잠깐동안은 허위신고가 늘어날지 모르지만 결국 재판부가 지속ㆍ반복성을 판단기준 중 하나로 보게될 확률이 높다"며 "생각보다 허위 신고는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준 후에는?…'사회적 대화ㆍ특별법' 필요
     
    협약이 비준될 경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지만 보호 범위 등이 현행 근로기준법과 달라 법제도 개선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협약 비준 후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될 때는 충분한 사회적 대화 없이 법이 통과돼 현장에서 갈등이 심해지는 등 부작용도 많았다"며 "이번 협약 비준 후에는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거쳐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 보호와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가 국제 기준 충족 여부만을 의식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 개정보다는 별도의 특별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문 노무사는 "협약 비준을 계기로 성희롱, 괴롭힘, 폭력 등 전반에 걸친 예방, 처벌을 다루는 평화법을 제정해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도 "비준 이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대응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별도로 법을 제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본다"며 "22대 국회에서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일터에서의 괴롭힘 예방 및 피해자 보호법' 등의 특별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 형태로 '일터에서의 괴롭힘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 노무사도 "결국 근로기준법 개정보다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보호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는 결국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괴롭힘 보호 범위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들이 근로자가 아닌 사업자로 분류되는 오분류 문제도 함께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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