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종래 개별 기업의 취업규칙 등에 의해 '정년(停年)'이 55세부터 59세까지의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2013. 5. 22. 법률 제11791호로 일부 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제19조 제1항에 따라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 등에 대해서는 2016. 1. 1.부터, 상시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2017. 1. 1.부터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할 의무가 법정됐다. 이러한 법 개정을 통해 정년이 60세로 법정됐지만, 기대수명 연장과 국민연금의 재정안정 문제를 이유로 노령연금의 지급연령을 점진적으로 상향하는 방향의 국민연금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①1953년생까지는 만 60세, ②1953~1956년생까지는 만 61세, ③1957~1960년생까지는 만 62세, ④1961~1964년생까지는 만 63세, ⑤1965~1968년생까지는 만 64세, ⑥1969년생 이후는 만 65세로 노령연금 지급 연령이 상향조정됐다. 이를 통해 노령연금 지급 연령이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상향됐음에도 고령자고용법상 법정 정년은 60세로 유지되고 있어서, 이러한 두 시점 사이의 소득 공백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고, 이에 노령연금 지급 연령에 맞춰 법정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고용 등을 통해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보다 앞서 노령연금의 지급 연령 조정과 정년 제도의 관계가 문제됐던 해외의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향후 한국적 맥락에서 노령연금 지급 연령 상향조정과 법정 정년의 조정 문제에 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독일

독일법은 연령을 이유로 한 자동적인 법정 퇴직 제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개별 근로계약(Einzel-vertrag), 단체협약(Tarifvertrag) 또는 사업장 협정(Betriebsvereinbarung)으로 근로자가 어떠한 연령에 도달하고 동시에 해당 근로자가 '연금 수급권을 취득'하는 경우 근로관계가 자동으로 종료한다고 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정년 조항은 일반평등대우법(Allgemeines Gleichbehandlungsgesetz, AGG)에 의해 금지되는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근로계약·단체협약·사업장협정에서 정한 정년 조항이 일반평등대우법(AGG) 위반인지가 다퉈진 사안에서 헤센주 노동항소법원은 이러한 정년 규정은 AGG § 10 S. 3 Nr. 5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봤다. 즉, 근로자가 법정 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하면 근로관계를 자동 종료시키는 조항은 원칙적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퇴직 조항(Ausscheidungs klauseln)이 차별금지 원칙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정년 도달 시 '연금 수급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근로관계 종료를 규정한 것은 유효하지만, 이러한 전제조건을 결한 상태에서 단순히 연령을 이유로 한 퇴직 조항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독일의 경우 적법한 정년 조항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동되는바, 독일 사회법전 제6권(SGB VI) § 35에 따라 1964년생 이후 세대부터 67세다. 다만, 예외적으로 조종사나 항공관제사처럼 높은 안전 책임이 요구되는 직종에서는 정년을 60세 또는 65세로 앞당기는 규정도 정당화될 수 있다.

한편, 정년 조항이 유효하게 계약에 포함되면 이는 해지조건(Auflösende Bedingung)으로 취급되며, 따라서 사용자의 별도 해고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정년이 도달함에 따라 근로관계는 자동으로 종료한다(BGB § 620 II).

3.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1987년 7월 30일 개정 이전까지 판례는 "근로자가 반드시 자신의 직장을 떠나 퇴직해야 할 연령을 정하는 어떠한 법률적·규범적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결정한 정년퇴직(Mise à la Retraite)은 해고로 취급됐고, 근로자가 스스로 결정한 퇴직(Départ à la Retraite)은 사직으로 여겨졌다. 한편, 단체협약에 포함된 퇴직 조항 중 단순히 통상적인 퇴직 연령을 규정할 뿐인 '유연한(Souples)' 조항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해당 연령에 도달했다고 해서 근로계약이 자동으로 종료되지는 않았고, 이 경우 사용자에 의한 퇴직 명령은 해고로 분류됐다. 이와 달리 근로자가 특정 연령에 도달하는 날 근로계약이 '자동적' 또는 '법적으로' 종료된다고 명시한 '단두대(Guillotine)' 또는 '칼날(Couperet)' 조항에 관해서는 판례가 그 유효성을 긍정하며 정년 도달 시 근로관계가 법률상 종료되는 것으로 봤는데, 이러한 해석은 1987년 7월 30일 법(Loi n° 87-588 du 30 juillet 1987)의 입법으로 폐기됐다. 

한편, 1987년 7월 30일 법에 따라 근로자의 연령을 근거로 하는 고유한 계약종료 방식이 됐다. 즉,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계약 해지의 주체에 따라 사용자에 의한 '퇴직 명령(Mise à la Retraite)'과 근로자에 의한 '퇴직(Départ à la Retraite)'으로 구분했다. 또한, 동법은 근로자의 연령이나 노령연금 수급 자격을 이유로 근로계약의 당연종료를 규정하는 모든 단체협약·집단적 합의·근로계약 조항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근로자의 퇴직에 관한 규정은 단체협약(Convention Collective), 집단적 근로협정(Accord Collectif de Travail) 또는 근로계약에 의해 정해질 수 있으나, 이는 법률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만 적용된다.
근로자의 연령이나 노령연금 수급 자격을 이유로 근로계약이 당연종료된다고 규정하는 모든 단체협약 또는 집단적 근로협정의 조항과 근로계약의 모든 조항은 무효이며 아무런 효력이 없다.

위 조항에 따라 이전의 단두대 조항은 무효가 됐다. 그 무효의 성질에 관해 파기원(Cour de Cassation)은 처음에는 이를 절대적 무효(Nullité Absolue)라고 봤으나 1998년 11월 6일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Assemblée Plénière)에서 해석을 변경해 이러한 무효는 근로자만 그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상대적 무효로 봤다. 이후, 2008년 12월 17일 법(Loi du 17 décembre 2008)에 의해 사용자는 근로자가 70세 미만일 경우 근로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퇴직 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됐다.

요약하면 프랑스의 경우 2003년 개혁 이전에는 사용자가 만 60세에 도달해 전액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근로자를 정년퇴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법은 65세 미만 근로자에 대한 정년퇴직을 금지했다. 이어서 2008년 법은 사용자의 일방적인 정년퇴직 권한을 더욱 제한해 근로자가 70세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본인이 활동을 중단할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사용자가 정년퇴직을 시킬 수 없도록 했다. 한편, 이처럼 사용자가 근로자를 정년퇴직시키려면 70세 이전에는 본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도록 하는 취지의 2008년 12월 17일 법(Loi du 17 décembre 2008)의 시행 이전에 이러한 규정의 적용을 피하려고 근로자가 65세에 도달했을 때 정년퇴직을 통보한 사건이 적법한지가 다퉈진 사건에서, 파기원은 근로자가 65세에 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를 퇴직시킨 것은 연령에 근거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에 근거해 무효인 해고(Licenciement Nul)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4. 영국

유럽위원회는 1999년 11월, 고용과 직업에서 평등 대우의 일반적 틀을 수립하는 지침(Directive) 제정을 위한 제안을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 포함됐다. 많은 논의와 개정을 거쳐 2000. 10. 17. 고용·사회정책이사회(Employment and Social Policy Council)에서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2000. 11. 27. '고용과 직업의 평등조치를 위한 일반 체제 설립에 대한 이사회 지침 2000(Directive 2000/78/EC)'이 채택됐다. 동 지침은 종교·신념, 장애, 연령,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했고, 회원국들은 연령에 관한 규정을 2006년 12월 2일까지 이행해야 했다.

위 지침이 채택될 당시, 영국법은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정년을 독자적으로 설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영국은 위 지침의 이행을 위해 '고용평등(연령) 규정 2006(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s 2006)'을 제정했고, 위 규정에 따라 국가 기본정년제(National Default Retirement Age, DRA)를 도입했다.
 

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s 2006 
제30조 정년에 대한 예외
 

(1) 이 규정은 1996년 법 제230조 제1항에서 정한 근로자(Employee), 공무원(Crown Employment), 하원의 관련 직원, 그리고 상원의 관련 직원에게 적용된다.
(2) 제2부 또는 제3부의 어떠한 규정도,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 자가 65세 이상이고 그 해고 사유가 정년(Retirement)인 경우 해당 해고를 불법으로 만들지 않는다.
(3) 이 규정의 목적상 해고 사유가 정년인지 여부는 1996년 법 제98ZA조부터 제98ZF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판단한다.

한편, 고용평등(연령) 규정 2006이 시행된 직후, 당시 Age Concern 및 Heyda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전국고령화위원회(National Council on Ageing, NCA)가 DRA에 따라 65세 이상인 사람들이 계속 근무하기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DRA가 Directive 2000/78/EC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1심 법원(High Court)에 소를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이 사건을 ECJ에 회부해 해당 규정이 지침과 합치되는지에 관한 판단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ECJ는 2009년 3월 5일 국가가 정년 제도를 두는 것이 고용 촉진, 노동시장 신뢰 유지 등 정당한 사회정책 목표를 위한 비례적(Proportionate) 수단이라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사건을 영국 법원으로 환송했다. 이후 1심 법원(High Court)은 65세 정년(DRA)은 2006년 도입 당시에는 비례적이고 합법적이었다고 판시하면서도, 동시에 국가가 연금 수급 연령을 68세까지 점차 상향하는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장래에는 이 제도가 비례성을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 이후 영국 정부는 DRA에 대한 검토를 발표했다. 초기 제정된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 2010)'은 DRA 예외를 계속 유지했으나, 2011. 10. 1. 자로 폐지됐으며, 같은 해 4월 1일부터 전환 규정이 시행됐다. 이러한 폐지의 효과는 퇴직 해고가 항상 객관적으로 정당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DRA의 폐지로 영국에서는 법정 일반 정년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고, 모든 정년 규정은 직접 연령차별로 평가되며, 오직 '합리적·비례적 정당화'가 있을 경우에만 허용된다. 이와 관련해 영국 대법원은 정년 규정이 정당화되려면 세대 간 형평, 조직 내 조화 등 공익적 성격의 정당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5. 시사점

필자는 전술한 해외 각국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정년 연장 논의에 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정년 제도의 적법성이 자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년 제도는 그 정년 제도의 필요성이 고용정책, 노동시장 동향, 세대 간 일자리 배분 등 정당한 사회정책적 목적에 의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때만 연령차별과의 관계 속에서 적법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따라서 필자는 정년 연장 논의에 앞서 '이 법이나 다른 법률에 따라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정년을 설정하는 경우'에는 연령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현행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5 제3호 자체의 타당성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별 기업에서 정년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해당 기업이 속하는 업종의 특성, 관련 노동시장의 동향 등을 고려해 개별 기업이 그러한 정년 제도의 적법성을 적극적으로 근거 지을 수 있을 것이 요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년 연령과 노령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 사이의 장기간의 '공백 기간'은 노령자의 소득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이 보여 주듯 노령 세대의 빈곤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 지급 개시 연령의 상향조정에 따른 정년 연장은 당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노동법제가 해고를 상당히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통한 임금체계의 변경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정년 연장으로 인해 개별 기업이 노동력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감당하게 될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체 노동법 체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정년 연장이 즉시 도입될 경우, 개별 기업은 기간제 고용의 사용이나 파견근로자의 사용 등 정년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양질의 일자리 공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청년 세대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개별 기업이 정년 연장이라는 변화된 규범 환경에서 청년들을 신규 채용하는 데 불안해하지 않고, 기간제 고용 등을 통해 정년을 우회하지 못하도록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소위 '입구 규제'의 도입, 이러한 입구 규제를 전제로 기존 해고 규제의 경직성에 대한 재검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도에 대한 재검토 등 관련 제도를 종합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셋째, 정년 연장이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통한 정년 연장만으로는 부족하며, 이와 동시에 다양한 지원 정책이 종합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특히 이러한 지원 정책은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에 그쳐서는 안 되며, 노령 근로자의 직업적 숙련 수준의 유지를 위한 훈련지원, 정년 연장에 따른 노령 근로자의 건강상 부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지원 등 정년 연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진행되는 정년 연장 논의는 인구구조의 변화보다는 국민연금의 재정문제 해결을 위한 노령연금 지급 개시 연령의 상향조정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크다. 정년 연장에 관한 현재 상황은 헌법에 따라 노령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최종적인 책무를 지는 국가가, 그러한 위험을 '노령에도 불구하고 일해야만 하는' 국민과 '노령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기업에 전가하는 모양에 가깝다. 특히, 상당히 오랜 기간 정년 연장을 차근차근 준비했던 일본의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 정부가 기업의 자발적 정년 연장에 관한 정책적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도 의문이다. 노령연금 지급개시연령의 상향조정이 예정된 상황에서 그러한 연령에 맞춰 정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에 동의하면서도, '정년을 연장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운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정년 연장은 물론 기간제 고용에 대한 입구(入口) 규제, 해고의 사유·절차 및 부당해고의 법률효과, 취업규칙 제도를 포함한 근로조건 규율 시스템의 재정비를 포함한 노동법 제도 전반에 관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모색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