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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짧지 않은 사회적 대화 역사와 논쟁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는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계기였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맞아 노사 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었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를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로 이름을 바꿨고 중앙 수준만이 아닌 의제별, 업종별 사회적 대화를 체계화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도 노사정위를 활용했다. 목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였으나 기대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위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명칭을 바꾸고 계층별위원회를 두는 등 시스템을 고도화했고 코로나19 위기극복 대타협을 이루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유독 경사노위(과거 노사정위)만은 참여하지 않았고 노동조합은 온전한 대표성을 갖지 못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라고 해서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면서도 정부가 반노동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를 일시적으로 보류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비록 사회적 대화는 정권이 달라질 때마다 위태롭기는 했어도 꾸준히 활동했고 크고 작은 합의를 통한 성과가 작지 않았다. 고용보험의 단계적 확대, 주 최대 52시간 근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노동이사제 시행,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전속적 폐지 등이 대표적인 입법 사례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유지했던 경사노위의 위상은 윤석열 정부에서 끝없이 추락했다. 윤석열 정부는 유독 폭력적인 방식으로 반노동 정책을 펼쳤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 아래 사회적 대화가 잘 될 턱이 없었다. 예상대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의 불참을 선언했고 경사노위의 기능은 3년 내내 멈춰 있었다.
경사노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자 대안으로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독점하기보다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대화를 모색하자는 제안이 잇달았다. 대표적으로 국회 사회적 대화가 등장했고 최근 제도적 기반을 위한 입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때마침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사회적 대화가 정부에 의해 지나치게 수단화됐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기에 정부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방향일 수 있으나 때때로 지나치게 합의가 강조되기도 하고, 노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효용성이 큰 사회적 대화, 경사노위를 혁신해야
사회적 대화는 효용성이 큰 정책이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는 다양한 숙제를 남겨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힘을 보탠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에 따른 탄소 절감과 이를 위한 산업 전환은 기업, 노동자, 지역 모두에게 난감한 과제다. 산업 전환에 따른 일자리를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논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과제다.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중장년 일자리 유지 및 노인 빈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년 연장이 필요하지만, 기업의 늘어날 부담을 고려해야 하고 청년 세대에 피해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처럼 노사의 이해가 다르고 갈등이 큰 노동ㆍ사회정책은 정부의 의지대로 추진하기가 곤란하다. 정부의 뜻대로 되기도 어렵고 정부의 의지대로 추진하더라도 지속된다고 약속하기 어렵다.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고 계속 유지해야 한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합리적인 전략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우선 정부의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부터 살펴보면 첫째, 경사노위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다소 낮추고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경사노위가 다양한 국정과제와 사회적 의제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은 고유한 활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사의 이해가 균형적으로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금 아쉽더라도 정부안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동의하는 수준만큼만 합의하고, 합의한 내용은 철저하게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 경사노위 내 안건조정위원회와 이행점검위원회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업종별ㆍ지역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 수준의 사회적 대타협은 정부와 노사 단체가 국가적 쟁점을 논의하고 실천을 약속하는 점에서 의의가 크지만 사회적 대화의 일상적인 효능감은 업종별, 지역별 논의가 더 클 수 있다. 실제 산별 연맹이나 사업자 단체들은 업종별 사회적 대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규제 완화나 지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지역 내 산재한 노동 현안을 지원하는 지역별 사회적 대화도 중요하다. 지자체 정부와 지역의 노사가 실질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인데, 경사노위가 제도적으로 가장 적임이다. 다만, 업종별 대화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서 빠져 있어 경사노위만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별 사회적 대화 역시 경사노위가 직접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해서 주인공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지보다 어떤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둔다면 궁극적으로 경사노위의 활동은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셋째, 경사노위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화의 대표성을 갖고 사회적 논의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노동 의제에 대한 통찰과 함께 대안적 해결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사회적 대화의 방향이나 역할에 대한 비전 제시도 경사노위의 활동이 돼야 한다. 비록 지금의 경사노위는 경사노위 내부 위원회를 관리ㆍ지원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지만 지원과 관리는 지원부서 정도로도 충분하다. 경사노위는 다수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산하 위원회를 관리하는 것에 그쳐서는 곤란하고 사회적 대화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대화에 대한 연구를 확대해 사회적 대화의 성공과 전략적 방향에 대한 고민을 제기해야 한다.
국회 사회적 대화는 성공할까?
국회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심은 부쩍 늘었다. 사회적 대화에 소극적이던 민주노총이 중앙위원회의 결의로 국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이다. 국회 사회적 대화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정당과 노사 단체 간 의견이 조율되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유리하고 신속하게 법 제ㆍ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진다. 국회 사회적 대화가 정부가 주도하는 경사노위의 역할을 훼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논의 의제를 서로 조율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경쟁적 발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미 국회는 국민연금 관련 사회적 대화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신산업 지원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ㆍ플랫폼ㆍ프리랜서 등 취약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을 논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 사회적 대화가 반드시 순탄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서는 곤란하다. 국회는 여야가 모두 존재하는데 여야 관계가 노사 관계 못지않게 갈등적이기 때문이다. 논의할 의제를 조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고 정작 논의에 들어가면 견해 차이가 커 원만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대안으로 국회의장이 사회적 대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논의에 참여한 후 노사 단체와 논의한 결과를 여야 정당에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 입법 등을 추진하는 방식인데 이 역시 국회의장의 개인적 성향과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국회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는 막연한 기대보다 국회 사회적 대화 근거를 입법화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정당과 노사 단체 간 사회적 대화의 효용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경사노위가 아닌 방식의 사회적 대화 모델이 가능함을 보여 주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재설계 비전
정부 또는 국회 사회적 대화의 성공과 실패는 행위자 간 조율과 안정적 역할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면 하나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조직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철학과 인식의 변화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노사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어 국가주의 사회적 대화로 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노사 단체의 영향력이 큰 사회민주적 사회적 대화로 정의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정부와 노사 단체 중 어느 한쪽이 주도할 수 없다면 조율이 중요하다. 경쟁과 조율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서 출발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나 사용자의 역할에 대한 경계를 낮춰야 한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노사의 신뢰가 필요하다. 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자 조직들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철학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 시작은 조직의 이해를 내려 두고 국가 전체의 이해와 사회적 과제를 살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사노위의 미래 비전에 대한 것으로 향후 사회적 대화 기구를 독립적인 헌법 기관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한다. 경사노위를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묶어 둘 것이 아니라 독립기관으로 분리하는 방안이다. 독립적인 지위에서 노동ㆍ사회 의제를 논의하고 국회와 정부에 합의 내용을 권고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질적 변화가 모색할 수 있다. 경사노위가 독립적인 행정기구로 탈바꿈한다면 민주노총의 참여 부담도 낮아지고 정부, 국회, 지역 등 여러 형식의 사회적 대화를 지원하는 데도 유리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노동부는 경사노위의 독립이 미덥지 않고 불안할 수 있다. 국회도 이제 막 시작한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식이 성년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처럼 성숙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 담대한 미래 비전을 구상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