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홍정모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1. 들어가며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계약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일관하고 있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대법원 2025. 7. 3. 선고 2023다219752 판결 등).
실무상 이러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문제되는 주된 경우 중 하나가 비등기임원이 본인의 근로자성을 다툴 때다. 일반적으로 회사와 임원의 관계는 위임관계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근로관계는 근로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지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관계인 반면, 위임관계는 수임인이 위임인과의 신인관계(Fiduciary Relationship)에 기초해 자율적으로 맡겨진 위임사무를 처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위임관계와 근로관계는 수임인이나 근로자가 특정한 사람(위임인 또는 사용자)을 위해 특정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외견상 유사하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비등기임원과 회사의 관계가 근로관계인지, 위임관계인지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법원은 이에 관해 상법상의 이사라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일 외에 대표이사 등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고 그 대가로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는 관계에 있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 등기된 상법상의 이사가 아닌 미등기이사 중에서도 자율적으로 위임사무를 처리하고, 경영상의 결정에 개입하는 사람도 있어 법인 등기부상 이사 등으로 등기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이런 사람을 근로자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6다54637, 2006다54644 판결 등).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등기임원은 회사로부터 일정한 사무처리의 위임을 받고 있다고 봐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비등기임원의 경우 등기임원과 달리 이사회의 구성원도 아니고 업무수행 권한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봐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기존 판결의 경향성과 달리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하급심 판결들이 자주 눈에 띈다. 여기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단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2025. 9. 12. 선고 2024누5497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2. 10. 19. 선고 2021누76677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1. 선고 2023가합72217 판결을 중심으로, 하급심 판결들이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면서 주목했던 사정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2. 최근 하급심 판결들이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을 부인한 주요 근거들
가. 비등기임원에 대한 독자적인 권한과 책임의 부여
(서울고등법원 2025. 9. 12. 선고 2024누54975 판결) 해당 임원이 개발그룹에서 가장 높은 보직과 지위를 부여받고 개발을 총괄했고, 소속 직원들에 대한 최종 연봉과 인상율을 실질적으로 결정함. 해당 임원은 회사 내부에서 광범위한 전결권한이자 최상위 전결권한인 Level 1 전결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전결권한을 전제로 약 1200건의 전자결재를 했고, 그 결재 내용에 회사의 중요한 사항도 포함됨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1. 선고 2023가합72217 판결) 대표이사에게 관련 업무 전문가라고 인정받아 특별채용됐고, 위임전결 규정상 대부분의 사항은 본인 이하의 전결로 처리됨. 담당 업무 중 일부는 상급자의 통제하에 이루어졌으나, 나머지는 상급자 통제를 받지 않고 관련 업무를 총괄했음
(서울고등법원 2022. 10. 19. 선고 2021누76677 판결) 원고가 처음부터 참가인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방식을 통한 관중 증대 및 홍보 업무의 전문가로 영입한 점을 고려할 때, 참가인은 기능적으로 분리된 특정 전문 분야에 관한 업무 전반을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이를 총괄하면서 상당한 정도의 독자적인 권한과 책임을 바탕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임
나. 비등기임원의 대표이사 등 상급자와의 관계
(서울고등법원 2025. 9. 12. 선고 2024누54975 판결) 참가인이 업무성과 방향, 업무목표나 계획 등과 담당하는 업무에 관해 참가인의 상위 직급인 대표이사 등에게 보고하거나 그로부터 지시받는 등 일부 지휘ㆍ감독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위임계약의 법률관계에서 위임인이 수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 방향을 제시하고 위임사무의 처리 결과를 보고하는 관계는 충분히 상정할 수 있으므로, 참가인이 총괄하고 있는 업무에 관한 광범위하고 상당한 지위와 권한 등을 고려해 보면, 참가인이 위와 같이 대표이사 등으로부터 일부 지휘ㆍ감독을 받는다는 사정만으로 참가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단정할 수는 없음
(서울고등법원 2022. 10. 19. 선고 2021누76677 판결) 참가인이 담당업무에 관해 대표이사에게 각 일자별 사업 매출 현황 및 비용 등을 보고한 사실은 인정되나, 수임인도 위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 상황 등을 보고할 의무가 있는 것이므로(민법 제683조), 위 사실만으로는 참가인이 근로자의 지위에서 원고의 업무감독을 받았다고 볼 수 없음
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 절차에의 관여
(서울고등법원 2025. 9. 12. 선고 2024누54975 판결) 회사의 경영상 주요 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기구인 섹터장 회의에 참여해 회사 내 중요한 경영 사항에 대한 논의에 직접 참여함(회사의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이 없다는 사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판단하는 중요한 징표가 되는 것은 아님)
(서울고등법원 2022. 10. 19. 선고 2021누76677 판결) 회사의 주요 안건이나 결재 권한 유무에 관해 대표이사 및 다른 임원들과 함께 논의 등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고 그 과정에서 대표이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어느 정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도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이며, 사실상 기업의 최종 결정권자인 1인을 제외한 나머지 임원들이 최종 결정 권한이 없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참가인의 임원으로서 지위를 부정할 것은 아님
라. 일반 직원들과의 근태관리상의 실질적 차이점
(서울고등법원 2025. 9. 12. 선고 2024누54975 판결) 일반 직원의 경우 근태 등록 신청을 하면 결재자의 별도 승인을 받도록 돼 있으나, 참가인의 경우 근태 등록 신청을 승인받거나 그 신청이 반려되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고, 근태 등록 신청 시 그 절차가 그대로 종료되며, 추가 결재권자가 없음. 원고는 일반 직원과 달리 참가인의 출퇴근, 휴가 등 근태를 관리하거나 이를 징계사유나 근무평가의 근거로 삼았다는 증거도 없음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1. 1. 선고 2023가합72217 판결) 회사가 미등기임원의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시간에 대해 규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원고가 9시 출근해 18시까지 퇴근한 기록은 존재하나, 기록돼 있는 출입시각 및 임원의 경우에도 다른 사원 등의 근무시간에 맞춰서 업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원고가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시간에 구속을 받은 것으로 단정할 수 없음
3. 나가며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은 관계의 실질을 둘러싼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되며, 하급심 판결들은 기본적으로 대법원 판례 법리들에 기초해 비등기임원의 독자적 권한 및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참여 정도, 일반 직원들과의 관리상의 차이점 등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다만, 최근 하급심 판결들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비등기임원과 대표이사 등 상급자와의 관계를 하급심 판결들이 과거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대법원은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사무를 처리하는 외에 대표이사 등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일정한 노무를 담당할 때는 임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왔는데, 실제 회사 내에서 비등기임원이 자신의 담당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에게 업무처리현황을 보고하거나 업무에 관해 지시를 받는 경우는 다반사이며, 실제 분쟁 발생 시 이러한 보고나 지시는 해당 비등기임원의 종속적 노무제공의 인정 요소인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보여 주는 사실로 인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의 하급심 판결들은 위임계약의 법률관계에서 위임인이 수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 방향을 제시하고 위임사무의 처리 결과를 보고하는 관계는 충분히 상정 가능하다는 점, 수임인도 위임인에게 위임사무의 처리상황 등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점(민법 제683조) 등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와 같이 비등기임원의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비등기임원과 대표이사 등 상급자 간의 관계를 보다 정교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시 위임관계와 근로관계의 본질적인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위임관계하에서 수임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위임사무를 처리하며, 이러한 사무의 처리 과정에서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다. 다시 말하자면 위임관계하에서 수임인의 사무처리는 본질적으로 목적지향적, 결과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근로관계하에서 근로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구체적인 수단, 방법을 어떻게 취할지에 관해 사용자로부터 보다 직접적인 업무상 지시 내지 감독을 받게 된다. 즉, 근로관계하에서의 근로자의 근로제공은 수임인에 비해 보다 많은 과정상의 통제하에 놓인다.
이러한 위임관계와 근로관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고려할 때, 어떠한 관계가 위임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수임인의 사무처리 과정에서의 위임인의 보고 요구나 사무처리상의 요청이 사무수행의 결과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경우에는 위임인의 개입을 섣불리 근로관계의 인정요소인 구체적인 업무상의 지시 내지 감독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임인의 개입이 이를 넘어 근로관계를 인정하는 요소인 근로자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상의 지시 내지 감독에 해당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수임인이 위임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위임인의 지시나 감독이 사무수행의 구체적인 과정이나 절차, 수행 방법에 대한 개입에 이를 정도가 돼야 하며 이러한 수준의 지시 내지 감독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졌다고 인정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