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새벽배송 등이 일상의 편리함으로 자리 잡으면서 야간 노동은 한국 사회에서 점차 그 존재감과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야간 노동이 보편화될수록 그 이면의 위험성과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야간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은 단순히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연속적인 야간 노동이 반복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깊은 잠에 도달하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수면이 충분하지 않으면 심장과 혈관, 대사 기능이 회복될 시간이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만성적으로 높아지고, 이러한 상태가 누적되면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중증 질환 위험이 증가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처럼 야간 노동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한국 사회에서 야간 노동의 규모나 유형에 대한 실태조사는 부족한 상황이다. 야간 노동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또한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은 실천과제로 '야간 노동자 건강보호 대책 마련'을 제시했다. 야간 노동의 실태를 파악하고 해외 사례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추진단은 올해 상반기 실태조사를 마무리하고, 하반기에는 노사정이 함께 구체적인 건강 보호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야간 노동에 대한 논의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렇다면 국제 사회에서는 야간 노동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국제노동기구(ILO)가 마련한 야간 노동 관련 규제를 통해 국제적인 기준과 흐름을 짚어보고, 한국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야간 근로 규제, 영국 공장법에서 ILO 협약까지…한국은?
장시간ㆍ야간 노동이 초래하는 건강상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한 움직임은 노동법의 역사만큼이나 유래가 깊다. 1802년, 영국은 최초의 공장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아동의 야간 근로가 가져오는 건강상의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영국 하원 보고서에 명시한 바 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 국제 사회의 보편적 기준으로 확장됐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근로시간 규제에 관한 최초의 원칙을 수립했을 당시 그 대상이 여성과 아동에 한정되긴 했지만, 야간 근로 금지와 규제가 원칙에 포함됐다(ILO 제4호 여성의 야간 근로에 관한 협약, 제6호 연소자의 공업부문 야간 근로에 관한 협약).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서 야간 근로에 관한 규정을 찾아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의 근로'를 야간 근로로 정의하고 야간 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을 야간 근로 규율 방식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특정 시간대 근로에 가산임금을 매기는 '비용압력형 규제'로 볼 수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제70조는 "사용자는 18세 이상의 여성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려면 그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한다" 등을 규정해 여성과 연소자 등에 관한 야간 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 같은 근로기준법 규정들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고, 여성과 연소자를 대상으로 제한을 둔 방식은 ILO 초창기 입법 방식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주간근무 전환권'과 '11시간 연속휴식'…ILOㆍEU의 야간 노동 안전망
ILO의 초기 협약 이후 지난 100여 년간 국제 사회와 유럽 주요국들은 야간 노동에 관한 원칙을 확립해 왔다. 비록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근로자를 대상으로는 야간 근로에 대한 근로자 보호 원칙을 수립해 왔다. 특히, ILO는 야간 근로에 관한 별도의 협약을 채택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준수해야 할 최저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EU 근로시간 지침은 야간 근로와 관련해 노동시간 규제와 건강보호 의무를 제시하고 있다.
ILO 제171호 야간 근로 협약은 야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기본적인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ILO 제171호 협약은 기본적으로 야간 근로를 위험한 노동 방식으로 전제하고 건강검진, 주간근무 전환권, 보상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예방 중심 보호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ILO 제171호 협약 제1조는 야간 근로자를 '일정한 밤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일하는 자'로 정의해 그 보호 대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어 같은 협약 제3조는 야간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야간 근로자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평가(제4조) ▲건강상 위험 시 주간근무 전환권(제6조) 등을 규정한다. 그리고 ILO 제171호 협약 제9조에서는 야간 근로에 대한 적절한 보상(가산임금)과 보상휴식을 규정하고 있다.
EU 근로시간 지침(Directive 2003/88/EC)은 회원국이 준수해야 할 강행적 최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 지침은 ▲야간 근로자의 개념 정의(제2조) ▲야간 근로자의 근로시간 상한 설정(제8조) ▲야간 근로자에 대한 무료 건강검진(제9조) ▲위험 또는 유해한 야간작업에 대해 추가적인 보호를 부과(제10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EU 근로시간 지침은 모든 근로자에 대한 '최소 11시간의 일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있는데, 이는 야간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생체적 회복을 돕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EU 근로시간 지침은 근로시간 규제와 건강보호 조치를 함께 규정해 보다 실효성 있는 규율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프랑스ㆍ독일, EU 지침 넘어 국내법으로 규제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ILO와 EU의 기준을 바탕에 두고 보다 구체적으로 야간 근로에 관한 규율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는 노동법전(Code du travail)을 통해 야간 근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노동법전 L3122-1 이하 규정은 야간 근로가 경제적ㆍ기술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야간 근로를 정상적인 노동형태가 아닌 예외적 노동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야간 근로자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의무화(L3122-11)하고 있으며,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 사용자가 해당 근로자를 주간근무 또는 다른 직무로 전환해야 할 의무(L3122-14)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야간 근로에 대해 보상휴식 또는 수당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데(L3122-8), 이 같은 보상휴식을 중시하는 구조는 야간 근로로 인한 건강 회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나아가 프랑스에서는 야간 근로자의 사회적 삶 보호를 위한 주간근무 전환권도 인정하고 있다. 노동법전 L3122-12에 따르면 건강상의 이유나 가족 돌봄 필요가 있는 경우 근로자는 주간근무로의 전환을 요청할 수 있다. 프랑스의 야간 근로 규제는 야간 근로를 억제하면서도 불가피한 경우 건강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일은 근로시간법(Arbeitszeitgesetz, ArbZG)에서 야간 근로를 규율하고 있다. ArbZG 제2조 제3항은 야간시간과 야간 근로자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보호 대상의 범위를 구체화하고 있다. ArbZG 제6조 제5항은 야간 근로에 대해 적절한 임금보상 또는 보상휴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적 보상과 건강 회복을 병행하는 구조다. ArbZG 제6조 제3항은 주간근무 전환권을 규정해 야간 근로자의 건강상 문제 발생 시 주간근무로의 전환을 보장하고 있다. 육아나 가족 간병과 같은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주간근무 전환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ArbZG 제5조는 모든 노동자에게 최소 11시간의 연속휴식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EU 근로시간 지침 기준을 국내법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한국 사례에 주는 시사점
국제 기준과 해외 주요 국가의 입법례를 종합하면, 야간 근로 규제는 공통적으로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축으로 설계돼 있다. ▲보호 대상을 확정하기 위한 야간 근로자의 개념 정의 ▲정기검진 등 예방적 건강 관리 체계 구축 ▲근로시간 제한 및 연속 휴식권 보장을 통한 피로 누적 방지 ▲건강ㆍ가족 사유에 따른 주간근무 전환권 보장 등이다.
즉, 해외 사례는 야간 근로를 단순한 임금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근로'로 재정의하고, 보상 중심 규제에서 예방 중심 규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국제 기준과 해외 사례 역시 보호 대상을 '근로자'로 한정하고 있어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야간 노동의 규율' 방식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야간 경제 활동이 한국만큼 활발하지 않아 근로자 외 형태의 야간 노동이 아직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지 않은 유럽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은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야간 근로 규율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섭할 수 있는 야간 노동의 규율 원칙까지 도출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사 도움>
-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기사는 노사발전재단 국제협력팀과 공동 기획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노사발전재단은 "노사를 행복하게 일터를 활기차게"라는 미션 아래, 상생의 노사협력을 기반으로 노사관계 발전, 공정일터 조성, 고용문화 개선, 일터혁신 촉진, 중장년 고용지원 및 국제협력 강화를 통해 현장중심의 전문기관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성장하는 든든한 나침반으로서 고객 맞춤형 통합지원서비스를 제공하며 활기찬 일터 구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