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사진=국립산림과학원)
대학원ㆍ연구원 협동 과정 수련생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수련생이 하루 8시간씩 일하며 고정급을 받았더라도 근태 관리와 업무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방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이문세)는 지난달 15일 국립산림과학원 학ㆍ연 협동 과정 수련생 A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같았다.
법원 "근태 관리ㆍ업무 지시 없었다…고정급은 장려금에 불과"
A 씨는 국립산림과학원과 B 대학원의 학ㆍ연 협동연구 석ㆍ박사 학위과정에 입학했다. B 대학원 학ㆍ연 협동연구 석ㆍ박사 학위과정은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연구 수련을 마친 뒤 학위 논문 심사에 합격하면 학위를 수여받는 과정이다.
A 씨는 연구 수련을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사ㆍ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매달 고정급을 지급받았다.
A 씨는 연구 수련 과정이 끝나면서 국립산림과학원에 퇴직금을 청구했으나 과학원은 A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A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로 떠올랐다.
1심은 A 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은 "A 씨는 대학원생으로서 학ㆍ연 과정 협약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받으며 연구 수련을 했을 뿐"이라며 "A 씨와 국립산림과학원 사이에 근로관계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은 A 씨의 업무 수행과 관련해 국립산림과학원이 근로시간을 지정하거나 출퇴근시간을 관리하지 않았다고 봤다. 2심은 "A 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사 연구 업무를 했지만 이는 수련시간일 뿐 근로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국립산림과학원이 근로시간을 지정하거나 출퇴근 시간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립산림과학원은 수련생에 대한 별도의 인사 기록 카드, 출근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며 "수련생들에게는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복무규정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심은 국립산림과학원이 A 씨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2심은 "국립산림과학원이 조사ㆍ연구 업무에 대해 A 씨에게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며 "A 씨의 업무를 국립산림과학원이 지휘ㆍ명령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A 씨에게 매월 고정급을 지급했지만, 2심은 이것이 근로자성 인정 근거로 볼 수 없다고 봤다. 2심은 "국립산림과학원이 A 씨에게 매월 고정급을 지급했지만 이는 수련생들에게 지급하는 장려금에 불과했다"며 "기본급이라는 명목으로 매월 고정급을 지급한 것은 장려금을 잘못 표기한 것에 불과해 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A 씨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일부 수련생에게 퇴직금을 지급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2심은 "퇴직금을 받은 수련생들은 학ㆍ연 협동과정 이수 후 국립산림과학원 기간제 연구원으로 일한 수련생들"이라며 "국립산림과학원이 이들이 수련생으로 일한 기간까지 합산해 퇴직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수련생으로만 일한 A 씨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핵심은 '업무 성격'…"연구와 근로, 명확한 분리 필요"
이 사건은 A 씨가 상고하면서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계속되고 있다. 향후 대법원이 A 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할 경우 학ㆍ연 과정 수련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사례가 된다. 대법원에서는 학ㆍ연 과정 수련생이 수행한 업무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재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상고심에서는 학ㆍ연 과정 수련생의 업무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며 "대법원이 임금을 받고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볼지, 장학금을 받으며 자신의 연구를 실시한 것으로 볼지에 따라 근로자성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업무의 성격에 대한 판단 외에도 기존의 근로자성 판단기준인 근태 관리 여부, 취업규칙 적용 여부, 연구 재량성 등도 보조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수련생의 근로자성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근로제공의 경계를 명확히 분리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장 변호사는 "수련생들이 수행하는 연구가 기업이나 연구원 차원에서 수행되는 업무와 구분돼야 한다"며 "연구가 기존 업무의 일환으로 평가되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근로와 구분된 자신의 연구를 실시하도록 업무 구조를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특히, 수련생들에 대한 근태 관리를 하지 않았고, 이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해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며 "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 외에 다른 연구 업무를 지시하는 등 지휘ㆍ감독으로 평가될 수 있는 요구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