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정의 규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 행위다. 즉, 우위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은 피해자가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를 행위자(가해자)가 이용하면 우위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법문과 매뉴얼 해설을 보면, 이 우위성은 ⑴주로 괴롭힘 행위자가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속성(행위자 속성)이다. 그리고 ⑵직장 내 괴롭힘의 필수 조건, 즉 성립 요건이다. 위 ⑴과 ⑵가 우위성에 대한 보통의 이해다. 이를 이 글의 편의상 '통상적 이해'라 불러보자.
판결의 경향 : 우위성의 인정 범위 확대
그런데 2019년 제도 도입 이래 내려진 하급심 판결을 보면 통상적 이해와 다른 관점에서 우위성을 판단하는 흐름이 관찰된다. 그리고 이 흐름은 우위성의 인정 범위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우위성이 문제된 여러 판결들을 골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우위성 인정 기준이 낮다(즉, 우위성을 쉽게 인정한다)
첫 번째 판결은 4개월 먼저 입사한 선배 매니저가 뒤에 입사한 동등한 직급의 후배 매니저에게 한 성희롱, 괴롭힘 발언에 관해 선배 매니저의 지위상 우위성을 인정한 판결이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선배]는 약 4개월 먼저 … 입사해 같은 직급에서 근무하였으므로 [후배]보다 업무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우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배]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에서 [후배]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선배]가 [후배]에게 앞서 본 (…) 각 발언들과 행동들을 반복한 것은 이러한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4개월 입사 기간 차이의 중요성과 의미는 개별 사업장 특성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위성이 인정되는 전형적인 경우, 즉 지휘·명령 관계와 비교하면 이 사건에서 선배의 지위는 우위성의 근거로 현저히 약하다. 우위성이 가진 규범적 중요성(성립 요건성)을 강조하는 통상적 이해에 따랐다면 법원은 반대의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다.
지도 및 감독 권한을 가진 조장(피해자)에게 근무 경력과 연령 등을 내세워 오히려 업무 지시를 한 조원(가해자)의 우위성을 인정한 다른 판결도 이 판결과 마찬가지로 낮은 우위성 인정 기준을 적용한 사례로 볼만하다. 이러한 흐름은 우위성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2) 행위 특성을 고려해 우위성을 판단한다
두 번째는 팀원 O가 팀원 V에게 연구비 전용에 관한 근거 없는 책임 추궁 이메일을 수차례 보낸 것에 대해 기업이 경고 처분을 한 사안을 다룬 판결이다. 여기서 법원은 우위성 판단을 하면서 (O와 V 지위는 모두 팀원으로 동등하니) 양자 간 '관계'의 성질을 보는데, "관계의 우위는 (…) 피해 근로자의 업무상 과오나 비밀의 지득, 가해자의 과도하고 집착적인 요구와 문제 제기 등을 통한 사실상의 우위로도 성립할 수 있다"고 해 우위성을 인정했다(밑줄은 추가).
그런데 이 밑줄 부분('지득', '집착적인 요구', '문제 제기')은 O가 가해자로서 문제가 되는 행위 당시 가졌던 행위자 속성이 아니라, O의 행위 그 자체와 그 부정적 속성이다. 따라서 이 결론은 통상적 이해에 따랐다면 내렸을 결론과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통상적 이해에 의하면 우위성 인정은 '지위 등의 우위 인정→행위의 괴롭힘 인정' 경로를 밟는데, 이 판단은 '행위 속성 인정→지위 등의 우위 인정'의 경로를 따라서 인과관계 화살표가 역방향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 방식이 인정된다면 우위성 인정 경로가 늘어나므로 그 인정 범위도 확대된다.
(3) 비행위자 속성을 고려해 우위성을 판단한다
세 번째는 병원 인사 담당자인 직원 J가 진료부원장이자 한의사인 S를 온라인 업무 대화방에서 강제 퇴장시키고, 지속적으로 재초대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가 쟁점이 된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직장 내 지위 등의 우위를 이용할 수 없는 하급자라고 하더라도 회사 내의 평판, 여론 등을 이용하여 사실상 상급자의 위치에 있는 근로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우위성을 인정했다.
그런데 밑줄의 '회사 내의 평판, 여론 등'은 엄밀히 말해서 직원 J가 행위 당시 가진 지위가 아니고, S와의 관계에서 갖는 위상도 아니다. 업무 대화방 강제 퇴장을 실행한 이유, 퇴장 실행을 스스로 정당화한 배경, J와 S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준 정황이다. 이 판결은 그러한 비행위자적 속성까지 우위성 인정의 근거라고 본 셈이다.
이는 (2)에서 본 판결이 행위 그 자체를 우위성 인정 근거로 삼은 것과 결이 같다. 그 결과, 통상적 이해에 기반한 판단과 비교할 때 우위성의 인정 범위는 확대된다.
(4) 우위성 판단을 생략한다
마지막 판결은 공공기관 연구소의 하급자(3급) J가 상급자(연구소장) S를 무시하고 대화를 녹음하며 확인서 작성을 요구하는 등 '과도하고 집착적인 행동'을 한 것이 문제된 판결이다. 법원은 위 행동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상급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밑줄을 보면, 흥미롭게도 직장 내 괴롭힘 정의상 명시된 우위성 문구('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가 통째로 생략된 점이 보인다. 이는 법원의 법리 오해나 표현상 실수라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 J가 피해자 S보다 지위가 낮은 사실은 가장 현저하고 핵심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필자에게는 법원이 통상적 이해와 다른 관점을 취하며, 우위성 문제를 '방안의 코끼리'처럼 취급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든다. 즉, 앞서 본 ⑵판결처럼 법원은 '과도하고 집착적인 행동'의 행위 특성에 착안해 우위성을 인정했는데, 소송 경제상 그러한 인정이 '지위 등의 우위 인정→괴롭힘 인정'의 순방향과는 어긋난다는 것까지 설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유를 불문하더라도, 이 판결은 결과적으로 통상적 이해에 따르는 경우에 비해 우위성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우위성 형해화 현상과 원인
이러한 우위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판결이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우선 해당 법원이 통상적 이해에 입각했다는 전제에서 우위성 개념을 (때로 지나치게) 넓게 인정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는 견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견해는 이 판결들이 우위성을 형해화(形骸化)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위성 형해화'는 직장 내 괴롭힘 제도 본질상 우위성이 직장 내 괴롭힘과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서 가지는 기능, 즉 구별력이 원래 낮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본다. 나아가, 그런 우위성 형해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우위성을 가진 가해자가 이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최우선 중점이 있는 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가해 이유, 동기, 지위가 어떠하건 직장 내에서 피해자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 억제에 더 중점을 두는 제도다.
그렇다면 통상적 이해와 같이 우위성에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 요건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여부를 좌우할 강한 구별력을 인정하는 것은 제도 본지에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우위성은 직장 내 괴롭힘 인정에 통상 나타나게 되지만, 인격권 침해에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을 법원은 현실의 분쟁을 판단할 때 자연스럽게 법 해석 과정에서 반영해 구체적 타당성을 기할 수 있다. 이는 사법부의 입법적 순기능에 가깝다. 앞선 판결들의 판단은 이 관점에서는 납득이 간다.
참고로, 우위성을 독립적 성립 요건으로 삼는 입법례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 소수에 그친다. 최근 비준 논의가 이루어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90호도 직장 내 괴롭힘 개념에 우위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실무상 올바른 이해와 대응
기업의 괴롭힘 제도 운영의 실무에서는 동일 직급자 간 따돌림, 후임의 상사 험담, 노조원의 사용자에 대한 상습 폭언 등이 우위성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법원 판결에서는 우위성 형해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제도 본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유하자면, 우위성 형해화의 흐름은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가진 본질이 중력(重力)으로 작용해 '지위 및 관계 등을 이용해'의 문언을 성립 요건이 아닌 징표(徵表)로 재정위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우위성이 징표라는 뜻은, 우위성이 직장 내 괴롭힘 인정의 충분조건이나 필요조건이 아니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는 통상 등장하는 요소, 그리고 다른 징표(동기, 의도, 반복 지속성)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정 판단과 대응 조치의 결정에 기여하는 요소임을 의미한다.
기업은 우위성의 징표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실무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사, 징계, 사후 대응의 모든 단계에서 문제 행위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의 문언에 통상적 이해의 관점에서 완전 부합되지 않더라도 비행위자 속성 등을 종합 고려해서 직장 내 괴롭힘인지 판단하는 단계를 두고, 대응 조치의 강도 결정에서도 이를 감안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의 인정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예컨대, 하급자의 상급자에 대한 반복 지속된 허위 신고에 대해서도 우위성을 인정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이로써 발생할 분쟁의 증가 등 부작용은 우위성 재정위 과정상 감수할 비용으로 여기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즉, 반복 지속성 등 직장 내 괴롭힘 인정 범위를 좁히는 다른 징표 요소를 균형적으로 고려하고, 우위성 부정이 아닌 철저한 예방과 공정한 판단을 통해 해결할 문제로 봐야 한다.
우위성 재정위의 방향
비판적으로 검토했지만, 통상적 이해는 기본적으로 법문과 매뉴얼에 충실한 장점이 있다. 매뉴얼은 우위성의 성립 요건성을 전제한 것처럼 읽을 수 있는 판결도 소개한다. 우위성 형해화 현상은 하급심 판결, 그리고 제한적 샘플에 근거한 귀납적 관찰이고, 아직 가설적 시도라 할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 이해처럼 우위성을 성립 요건으로 보면 소개한 판결들의 의미를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직장 내 괴롭힘 개념이 과도하게 축소되고 제도의 본지를 살리지 못하는 위험도 있다. 앞으로도 우위성 형해화 의미를 음미하고 우위성의 재정위를 고민할 가치는 충분하다.
이때 재정위는 입법적 해결도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직장 내 괴롭힘 개념에서 '지위와 관계 등을 이용하여'를 삭제하고, "직장 내 괴롭힘은 동기, 의도, 반복 지속성, 당사자 간 지위와 관계, 행위로 초래된 힘의 불균형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정한다"고 해 징표성을 명시할 수 있다. 이러한 입법은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순리(順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