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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김한나 법무법인 율사서재 변호사
1. 들어가며
최근 퇴직연금 적용을 확대하고 퇴직급여의 사외적립을 강화하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정부는 퇴직연금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퇴직연금 제도가 확대되는 경우 제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의 중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으나, 실무에서는 퇴직연금을 퇴직금과 지급 방법만 상이한 제도로 이해하고 퇴직금 관련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퇴직금 제도와 퇴직연금 제도는 모두 근로자의 퇴직 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발생 근거와 내용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퇴직연금과 관련한 법적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두 제도 간의 법적 구조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2. 퇴직연금 제도의 법적 구조
퇴직연금은 근로의 대가를 기초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퇴직금과 공통점을 가지나, 급여의 재원을 마련하고 지급하는 법적 구조에는 차이가 있다. 퇴직금 제도는 사용자가 산정한 퇴직금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반면, 퇴직연금 제도는 사용자가 퇴직급여의 재원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근로자가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연금 또는 일시금 형태로 급여를 지급받는 구조다.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가 받을 급여 수준이 사전에 정해진 확정급여형(DB형)과 사용자가 부담할 부담금 수준이 사전에 정해져있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구분되며, DB형에서 사용자가 부담하는 급여 부족액 지급의무와 DC형에서의 부담금 부족액 납입의무는 그 내용이 다를 수 있다. 특히 DC형의 경우에는 적립금의 운용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받을 급여 수준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퇴직연금 제도가 퇴직금과 비교해 근로자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3.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한 법적 쟁점
가. 추가 청구의 범위
퇴직금 제도에서는 평균임금에 포함돼야 할 임금이 퇴직금 산정 과정에서 누락된 경우 근로자는 평균임금을 다시 산정해 퇴직금 차액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급여 부족분 또는 부담금 부족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퇴직 당시 평균임금을 재산정하는 방식으로 추가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으며, 대법원은 DC형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된 사안에서 사용자가 납입한 부담금이 정당한 부담금액에 미치지 못한 경우에도 근로자는 정당한 부담금액과 이미 납입된 부담금액의 차액 및 그에 대한 지연이자만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다207444 판결). 따라서 DC형 퇴직연금 제도에서 부담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이 누락됐다면 근로자는 해당 임금을 포함한 각 연도의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정당한 부담금액을 산정한 후 실제 납입액과의 차액을 구해야 하며, 이는 퇴직 당시의 평균임금을 전체 계속 근로기간에 적용하는 퇴직금 산정방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므로, 동일한 임금 항목이 누락됐다고 하더라도 적용되는 제도에 따라 추가로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 소멸시효
퇴직금청구권의 경우 임금과 마찬가지로 3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적용되나, 퇴직연금 제도에서 급여부족액 또는 부담금 부족분을 추가 청구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지는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는DC형 퇴직연금 부담금 부족분 청구권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20조 제5항에 의해 인정되는 법정청구권으로 봐 민사채권의 소멸시효인 10년의 기간이 적용된다고 해석하기도 했으나(퇴직연금복지과-3234 2021. 7. 13), 판례 중에는 명시적으로 판단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다만 부담금 부족분 청구에 대하여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판단한 사례가 존재하므로(대법원 2026. 3. 12. 선고 2021다285175 판결 등) 실무상으로는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됨을 전제로 그 기간 내에 권리보전 조치 등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멸시효 기산점과 관련해서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퇴직연금 미납 부담금 청구권 역시 퇴직금과 마찬가지로 퇴직일이 소멸시효 기산점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22. 4. 6. 선고 2021나2025234 판결). 그러나 소멸시효 기산점과 부담금 납입의무 이행기는 구별해야 하며, 소멸시효가 퇴직일로부터 진행한다고 해 부담금 납입의무의 이행기까지 퇴직 시로 미뤄지는 것은 아니므로, 사용자는 매 납입기일에 부담금을 납입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원칙적으로 각 납입기일 다음날부터 지연이자가 발생한다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퇴직연금 제도에서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한 청구가 아닌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해 급여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임금이나 퇴직금 청구권에 관한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하급심 판례는 DB형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한 사안에서 퇴직연금채권을 5년의 상사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시한 바 있으며(서울남부지방법원 2026. 4. 23. 선고 2024나67465판결)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한 청구에 있어서는 개별, 구체적인 계약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 근로자에 대한 일반채권과의 상계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대여금, 손해배상 등 채권이 있는 경우 퇴직금에서 해당 금액을 공제해 정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퇴직금의 경우에는 퇴직 이후 근로자와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것이라면 채권 상당액을 공제하거나 양 채권을 상계하기로 하는 합의도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DC형의 경우 부담금 부족분과 근로자에 대한 채권을 상계할 수 있는지에 관해 현금 납입의무 등을 근거로, DB형의 경우에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하 퇴직급여법) 제7조 제1항, 제9조 제2항 등을 근거로 상계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만 퇴직급여법 제7조 제1항은 퇴직연금 제도에서 근로자가 급여를 받을 권리에 대한 양도, 압류, 담보제공을 금지하는 규정이고, 제9조 제2항은 근로자에 대한 지급방식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임금채권 또는 퇴직금채권의 경우에도 직접 지급원칙이나 압류금지 등 지급방식 등에 대한 일정 제한이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조항만을 근거로 근로자와의 상계합의의 효력까지 일률적으로 부정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퇴직금 제도에서의 상계합의의 효력에 관한 사안이기는 하나, 하급심 판례에서도 퇴직금 제도에 따른 퇴직금을 지급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만으로 퇴직금 제도의 급여를 받을 권리에 대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상계계약 또는 합의에 의한 상계가 금지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구지방법원 2024. 6. 12. 선고 2023나319353 판결).
4. 나가며
퇴직연금 제도는 사용자로 하여금 일정 금원을 사전에 적립하도록 해 근로자의 퇴직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므로, 퇴직금에 관해 적용되는 법리는 대부분 퇴직연금에도 적용될 여지는 크다. 그러나 퇴직금 제도와 퇴직연금 제도는 법적 구조와 권리ㆍ의무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므로, 퇴직연금 제도를 설립하고 운영과정에서 발생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쟁점별로 필요한 조치와 절차의 적법ㆍ타당성을 각각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