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노동시장에서의 취약성은 노동자들의 건강 및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자리는 사회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소득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준다. 뿐만 아니라 건강 수준은 고용 상태와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노동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높고, 건강해야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 질병의 원인을 찾아 이를 예방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학(Epidemiology)이라는 학문에서는 이를 '건강 근로자 효과'라고 따로 명명해 집중 연구를 할 정도로 건강과 경제활동은 매우 관계가 깊다. 건강해야 괜찮은 일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반면, 건강하지 못한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영원히 탈락하거나 상대적으로 나쁜 일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 나쁜 일자리에서 일을 수행하다 보면 건강이 더 나빠질 수 있고, 위험한 업무를 수행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위험의 외주화가 보편적 현상을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건강 불평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번 원고에서는 한국의 노동시장 양극화 속에서 느끼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의 개념을 살펴보고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고용 불안정의 개념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근로계약 형태를 기준으로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단순한 구분만으로는 다양한 노동의 형태를 다 포괄하기 어렵다. 특히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다양한 형태의 고용계약 변이가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그 이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정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6년 전일제 노동,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직접적 양자 관계, 사용자의 지휘 아래 노동을 제공하는 고용관계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를 표준적 고용관계로 정의하고, 이 외의 모든 고용관계를 비표준적 고용계약으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에는 임시직, 시간제 및 호출형, 파견 및 용역, 하도급 및 외주, 위장 고용과 종속적 자영업자 등 다양한 고용계약의 형태를 포함한다. 이후 한국의 특수고용직과 유사한 형태의 종속 계약자라는 분류를 추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특수고용직이라는 말이 보편화되고 불법파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던 시기를 감안하면 ILO의 개념 정의는 일견 늦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 계약의 특성에 따른 분류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표준적 고용관계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나의 노동시장에서의 위치가 불안정하거나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입을 넘어 취업 시장에서의 'N수'도 흔한 현상이 되고, '하닉고시'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 대기업의 취업 관문은 좁고 대기업의 생산직은 '킹산직'이라고 호명되는 선망의 일자리가 됐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심각한 상황이고 뿌리 산업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이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실질적 어려움도 잘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노동시장은 '액화노동'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유연화돼 있다. 초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은 나를 고용한 사업주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N잡러로 다중 노동을 수행하거나, 플랫폼 노동과 비공식 노동까지 임노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노동계약에 근거한 분류로는 포괄하지 못하는 고용형태까지 노동시장의 변화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상상의 범주를 종종 뛰어넘는다.
이렇게 고용 계약의 형태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노동조건은 노동자들의 삶의 기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다 보니 ILO에서는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일자리의 질을 평가하고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에 활용하도록 한다. 한편 보건학 등 일부 학문 분야에서는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라는 점을 감안해 노동자들이 각종 노동조건과 사회적 현실 속에서 느끼는 '불안'에 집중하고 고용 불안정성을 주요한 지표로 보고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지표화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2. 예측 가능한 삶과 고용 불안정
전통적인 스트레스 이론은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스트레스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 요소로 제안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대처할 수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인간에게 그리 큰 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고용 불안정에 대해서도 이러한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의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이를 개념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고용계약의 형태 이외에도 다양한 노동조건과 사회조건이 노동자들의 노동시장에서의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을 높여 불안을 늘이거나 줄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정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직업보건의 영역에서는 고용불안정척도(Employment Precariousness Scale, EPRES)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회학, 노동경제학, 보건학 전문가들이 모여서 노동자들에 대한 초점 집단 인터뷰를 수행했고, 고용 불안정의 네 가지 요소로서 일자리의 지속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하는 '임시성', 노동조건 협상 수준을 의미하는 '교섭력 부족', 권위적이거나 부당한 처우에 대처하기 어려운 정도를 의미하는 '취약성', 임금이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지에 대한 '임금'을 제시했다. 여기에 사회적 차원에서 고용에 수반되는 노동권과 사회보장 적용에 대한 '권리', 인정된 권리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에 대한 '권리 행사'를 추가해 여섯 가지 차원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예를 들어 기간제 노동자나 하청 노동자는 계약의 지속 가능성과 간접 고용에 따른 고용 형태상의 어려움이 큰데, 이는 소득이나 권리, 권한 행사에 있어서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는 법령상의 사각지대가 있어 권리 자체에 대한 보장도 제한적인 측면이 있으며 전문 인력이나 시설, 장비 등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권리 행사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임금 수준이 열악하고 취약성이 높아진다.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에는 위험 정보 공유나 집단적 요구에 어려움을 겪어 교섭력이 부족하게 되고, 권리 행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에서의 불안정은 다차원적이어서 하나의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각각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어려움이 중첩되기 마련이다.
고용 불안정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학자나 논문마다 조금씩 다른 범주를 제시할 수 있으나, 고용 불안정이 개인적 수준의 다양한 측면과 사회적 수준의 다양한 정책과 권한이 포함된 다차원적인 개념이고,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 소득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사회보장 수준과 권리 행사의 가능성 등을 비교적 핵심적 요소로 하고 있다는 점은 대체로 유사하게 본다. 즉 고용 불안정이 고용계약의 형태뿐만 아니라 고용관계의 질과 제도적 포괄 수준을 포함한다는 점은 일치한다. 노동법과 사회보험에서의 포괄과 공식적인 보호 외에도 실질적인 작동성을 함께 살핀다는 것도 비슷하다. 법률상의 권리와 실제 보호를 구분해서 어떤 권리가 법률에 규정돼 있고, 해당 노동자가 그 권리의 적용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권리를 불이익 없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느냐를 다르게 보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 건강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불안정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제도적 포괄 여부 이외에도 실제 이의 이용과 행사가 가능한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3. 불안정한 노동에서의 노동자 건강
노동시장의 주변화에 따라 불안정성이 높아진 노동자의 건강은 노동시장 진입과 이동의 기회, 업무 배분, 사회보장의 범위에서 취약한 조건을 가지게 되고, 불안정성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소득과 사회적 보호, 권리와 권한의 행사 측면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요구와 관련 서비스에의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위험한 노동을 거절하기 어렵고, 위험한 작업을 회피할 권리는 당장 오늘의 소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업무를 통제하기도 어렵다. 노동 과정은 누군가 통제한다. 극단적으로 최근 제시되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한 관리는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나의 노동 과정을 관리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어다. 누가 나를 고용한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나의 노동을 관리하는 알고리즘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가 아플 때, 업무와 관련한 어려움을 겪을 때는 그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고, 노동자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의 이직이나 이동이 굉장히 빠른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건강검진이나 적절한 시기의 진료를 받는 것도 요원한 일이다. 위험한 일을 거절하기도 어렵고, 업무 통제와 보호 책임의 주체가 분리돼 있고, 예방과 치료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가 부족해지면 수면, 주거, 돌봄, 가계의 불안정으로 회복이 어려워지고 불평등이 커진다. 건강이 악화된 노동자는 다시 더 불리한 일자리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과거의 임노동 관계를 전제로 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는 작동성은 둘째 치고 제도적으로 포괄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금처럼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찾아서 이를 보완하고자 하는 정책으로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이렇게 정부가 현실을 열심히 쫓아가며 문제 해결을 하기도 바쁜 상황이라면, 제도적으로 포괄은 되나 실질적 권한 행사가 어려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일은 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녹아내려서 여기저기 흘러서 떠다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4. 필수재로서의 직업안전보건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2007년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는 공동으로 기본 직업안전보건 서비스(Basic Occ-upational Health Services, BOHS)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기존의 안전보건 서비스가 닿지 않는 노동자에게 일차 보건 의료와 마찬가지로 직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고용 형태로 어떠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든 작업환경과 노동자의 건강을 살피고 개입해 줄 체계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시작한 이 개념은 지역 수준에서 지역 안전보건에 대한 공적 전달 체계를 구축하고, 현재의 보건 의료 기관과 각종 전문 기관, 사업장 개입이 가능한 행정·감시 체계를 네트워킹하고 조율할 단위를 구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노동자 개인의 요구에 부합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직업력 파악, 위험 평가, 현장 개선, 복지 연계, 추적 관리 등을 필수 서비스로 연계해 실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복합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과 역할을 명확히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용 시간과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영세 사업장 밀집 지역이나 이동 노동 거점, 직종별 방문 이동 서비스 제공 등 노동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세계보건기구는 노동자 건강을 일반 건강과 일상의 일부로 보고, 지역의 필요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고위험 집단을 우선적으로 포괄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하루를 노동자인 시간과 시민인 시간으로 구분해, 업무와 관련한 건강 문제와 일반 건강 문제를 구분하고 이 책임을 나누고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중첩되는 불안정을 감안할 때 사각지대를 더 크게 만들 뿐이다.
물론 이 과정이 사업주의 예방 책임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와 지자체는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기본 서비스에 대한 재정과 품질,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서비스 기관의 독립적인 전문적 판단과 비밀 보장, 연계 기관으로의 연계 등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업주는 작업장의 위험 제거와 법정 예방 의무를 지속적으로 이행할 책임이 있고,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리고 원청과 플랫폼 등의 기업은 실질적으로 노동 과정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만큼 위험에 상응하는 책임과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
5. 나가며
노동자 건강권의 보장은 위험한 일을 줄이고, 위험을 거절할 수 있고, 아프면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다. 채의 구멍이 커서 걸러지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많다면 채를 촘촘하게 만드는 한편, 떨어지고 버려지지 않을 수 있는 기본판을 달면 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안전보건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불안정의 요소가 다차원적으로 중첩되는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필수 안전망으로서의 중첩적인 안전보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