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사진=뉴시스)
회사가 근로자위원회에 노조보다 많은 유급 활동시간을 보장하고 출입 시 보안검색을 면제해 준 것은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9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김준영)는 최근 한화시스템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외 조직에 편의 제공…노동위 "지배ㆍ개입 부당노동행위"
한화시스템에는 법외 조직인 근로자위원회가 2015년 설립돼 활동해 왔고, 2021년에는 기업별 노동조합인 한화시스템노조가 새롭게 설립됐다.
노조는 회사가 근로자위원회와 교섭을 진행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등 15개 행위가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자위원회가 징계 감면을 건의할 수 있도록 규정한 행위 ▲근로자위원회에 연 1900시간의 유급 활동시간을 인정한 행위 ▲상근위원의 업무 복귀 시 특정 등급 이상을 보장한 행위 ▲근로자위원회 위원장ㆍ임원의 사업장 출입 시 편의를 제공한 행위 등 4개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같은 판단을 유지하자, 한화시스템은 중노위를 상대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시스템은 노조 설립 전부터 근로자위원회와 맺어온 합의나 관행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했다. 노조 설립 이후에는 노조에도 이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왔기 때문에 지배ㆍ개입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유급시간 추가 보장에 보안 프리패스…'지배ㆍ개입' 인정
법원은 문제가 된 4개 행위 중 '근로자위원회에 연 1900시간의 유급 활동시간 추가 인정'과 '근로자위원회 위원장ㆍ임원의 사업장 출입 시 편의 제공' 등 2개 행위만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근로시간 면제시간으로 노조에 연 6000시간을 제공하면서도 근로자위원회에는 연 6000시간 외에 1900시간을 추가로 보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복수 노동조합 체제에서 다른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부당한 초과 급여 지급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며 "근로자위원회 회원 수(약 1350명)와 노조 조합원 수(약 1100명)를 비교했을 때 근로자위원회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시간의 추가 보장은 과도한 우대"라고 판단했다.
회사는 근로자위원회와의 기존 합의를 이행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복수 노조 사이의 근로시간 면제시간 배분은 조합원 수에 따른 비례적 형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존 합의사항이라는 이유로 근로자위원회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시간 추가 부여 조치를 유지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근로자위원회 간부들은 회사가 제공한 차량을 타고 보안검색 없이 출입했다. 반면 노조 간부들은 회사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할 때도 원칙대로 보안검색을 받았다. 법원은 회사가 노조를 불리하게 대우한 것으로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법원은 "근로자위원회에 제공된 차량의 탑승자라고 해서 보안검색을 생략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며 "직원들이 보기에 보안검사를 받는 노조 간부들보다 회사 임원들과 마찬가지로 보안검사를 받지 않는 근로자위원회 간부가 사업장 내에서 우월적 대우를 받고 있다고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문화된 규정ㆍ실질적 차별 없는 평가, 부노 아냐"
반면 법원은 '근로자위원회가 징계 감면을 건의할 수 있도록 규정한 행위'와 '상근위원의 업무 복귀 시 특정 등급 이상을 보장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징계 감면 건의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고 봤다. 2015년에 규정이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근로자위원회가 징계 감면을 건의하거나 회사가 이를 받아들인 사실이 없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상근위원의 업무 복귀 시 특정 평가등급(GD) 이상을 보장한 것 역시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법원은 "인사평가에서 GD 아래의 등급은 5% 또는 10%에 불과해 90% 이상의 직원들은 GD 이상 평가를 받고 있고, 회사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위원회 및 노조의 전임 근로시간 면제자 전원에 대해 매년 동일한 평가등급을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은 "회사가 노조 전임 근로시간 면제자에게 GD 미만의 등급을 부여하거나, 근로자위원회 전임 근로시간 면제자와 비교해 차별적 고과를 부여하지 않은 이상 노조의 운영과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외 조직ㆍ노조 간 형평성 맞춰야…관행 재정비 필요성
이번 판결로 부당노동행위의 성립 범위를 둘러싼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법원은 근로자위원회가 징계 감면을 건의할 수 있도록 규정한 행위와 상근위원의 업무 복귀 시 특정 등급 이상을 보장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실제로 징계 감면이 이루어진 적이 없는 점 ▲근로자위원회 상근위원이 업무 복귀 이후 보장되는 등급이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 ▲노조 전임 근로시간 면제자도 동일한 등급을 보장받은 점 등을 고려해 회사에 부당노동행위의 '의사'가 없었다고 봤다.
노동 전문 변호사 A 씨는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형식적인 내용보다는, 해당 사유들로 인해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이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 심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사건이 법외 조직인 근로자위원회와 노조 간 차별적 처우가 문제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복수노조 간에 요구되는 형평성 기준을 적용해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법원은 "복수노조 사이의 근로시간 면제시간 배분은 조합원 수에 따른 비례적 형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회사가 근로자위원회에 연 1900시간의 유급 활동시간을 추가로 인정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A 씨는 "노동조합법상 공정대표의무 등은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에 따라 법외 조직인 근로자위원회와 노동조합 사이에 기존 차별금지 규정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근로자위원회와 노동조합에게 제공하는 혜택, 편의 등에서 차이가 날 경우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에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근로자위원회 같은 법외 조직이나 노사협의회 중심으로 노사관계를 운영하다가 신규 노조가 들어선 사업장의 경우,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갈등과 리스크를 겪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특정 집단에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행위가 부당노동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가 요구된다.
법외 조직에 보장되던 내용이 추후 설립된 노조에는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지배ㆍ개입의 부당노동행위로 판단될 수 있는 만큼, 기존에 근로자위원회에 제공하던 혜택과 편의가 있다면 노조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리스크를 낮추는 방안이 될 수 있다.
A 씨는 "다만, 노동조합에 대한 혜택, 편의 제공 등이 또 다른 부당노동행위인 노동조합 운영비 원조 행위 등에 이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노동조합 설립 전 근로자위원회와 같은 법외 조직에게 과도한 혜택이나 편의가 제공되고 있었다면 노동조합 설립 이후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혜택 수준을 조절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