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법률
  • 등록 : 2024-05-03 06:58:26

    수정 : 2024-05-14 17:19:10

작업중지권, 대법 판결에도 여전히 ‘모호’…고용부 “올해 가이드라인 발표”

2024-05-03 06:58:26



가이드라인 놓고 “세부적이면 악용돼”ㆍ“한계 명시해야” 노사 이견 커
[2024년 5월호 vol.0]
  • PDF
  • 장바구니에 담기
  • 프린트
  • 작은글씨
  • 큰글씨
  •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진 제주의 한 공사 현장(사진=뉴시스)

    최근 법원에서 작업중지권의 정당성을 다툰 사건이 근로자 측 승소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작업중지권 행사를 둘러싼 혼란과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법원은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했을 뿐, 주목할 만한 별도의 판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발표를 목표로 가이드라인을 제작 중이지만,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해물질 누출에 작업장 이탈,
    "작업중지권 정당" 파기환송심 승소

     
    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이유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조합 대표자를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지난달 4일 파기환송심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은 '근로자가 행사한 작업중지권이 정당했는가'가 쟁점으로 떠올라 큰 주목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내용과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따라 작업중지권 행사가 이루어진 것인지를 살폈다. 1심과 2심은 작업중지권 행사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며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근로자 측이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회사 직원들에겐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고 노동조합 대표자가 작업중지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급박한 위험ㆍ합리적 이유'…판단기준 여전히 모호
     

    그간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법률적 근거가 있음에도 '급박한 위험', '합리적 이유' 등을 행사 요건으로 두고 있어 근로자들이 손쉽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보기 어려웠다. 만약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는데 급박한 위험이 아니라고 결론이 날 경우 근로자는 업무방해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위험이 있다.

    앞선 사건도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다툼으로, 법원이 그간 모호했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을 정리해 줄 것인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한 판단만 내렸을 뿐, 작업중지권 행사 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판단기준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앞선 사건에서 노동조합 대표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해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회사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회사의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작업중지권을 적법하게 행사한 것", "오로지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조합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작업을 중지하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등을 판시했을 뿐, 노조 활동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법한지 여부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작업중지권 행사 후 '작업 재개'는 언제, 누구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질 것인지도 쟁점 중 하나다. 같은 사건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조합 대표자는 회사의 작업 복귀명령을 거부했다. 회사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확인받은 이후에도 작업 복귀명령에 불응한 것은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작업 복귀명령을 한 시간에도 여전히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인식하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실질적인 필요성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작업 재개와 관련한 판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판결문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방향성을 제시한 부분이 있긴 하다. 급박한 위험을 판단할 때 근로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인지를 놓고 쟁점이 된 부분이다.

    사건에서 원심은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해 객관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상황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거부했으므로, 근로자에게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한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심을 뒤집었다.

    권영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급박한 위험을 누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되는데, 사건에서 대법원은 작업중지 당시의 객관적 사정에 더해 근로자의 주관적 인식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1ㆍ2심에서는 급박한 위험을 객관적인 상황에만 초점을 맞춰 제한적으로 해석했던 것을 근로자 입장에서 조금 더 급박한 위험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법원 판결이 근로자의 주관적 판단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정수장 현장 근로자들이 지난 2023년 10월 '염소가스 누출 대비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생산성 직결 vs 안전 직결', 노사 간 이견 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그 행사 범위가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비슷한 쟁점이 문제되면 사건은 언제든 법원으로 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교통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작업중지권 가이드라인을 아직 마련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도 적지 않은 논쟁이 예상된다. 업종별, 작업장별, 상황별로 필요한 내용을 전부 매뉴얼화하기엔 범위가 넓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법에 명시된 '급박한 위험', '합리적 이유'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물음표가 따르고, 해석상 논란의 여지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사가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 작업중지권 행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부 규정을 수립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지만, 작업중지권 행사를 바라보는 노사 간 이견이 큰 상황이다.

    회사는 작업중지권이 지나치게 확대 행사되는 것을 우려한다. 작업중지가 생산성,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선 조합원의 안전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작업중지권의 자유로운 행사를 요구한다. 노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작업중지권 가이드라인을 바라보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는 크다.

    노동계는 고용부가 가이드라인에 너무 세부적인 내용까지 담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고용부가 일정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필요는 있지만 너무 세부적으로 작업중지권 행사 상황을 열거하는 방식이면 안 된다"며 "열거 사항 외에는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도 "고용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정해주면 오히려 회사가 반길 일"이라며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은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작업중지권과 관련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이유로 불이익 처우 시 형사처벌 조항 도입 ▲노동조합에 작업중지권 부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위원과 명예 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 부여 ▲작업중지 기간 동안 하청노동자의 임금, 하청업체의 손실 보전 법제화 ▲작업중지권 범위 확대(폭염, 폭설 등에서도 작업중지권 행사 가능 명시, 감정노동 포함) ▲완전한 작업환경 개선 후 작업 재개(사측이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 규정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근로자 작업중지권의 한계가 명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근로자 작업중지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고용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한계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이드라인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 자율에 의한 합의 지원이라고 봤다. 임 본부장은 "개별 사업장의 상황이 다 달라 고용부가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 마련보다 노사 간 자율적 합의를 얼마나 지원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고용부 "가이드라인, 올해 발표 목표"
     
    고용부는 올해 발표를 목표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세부적으로 만들어질지, 작업중지권 행사 후 해제 기준에 대한 것도 포함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2022년 '노사 참여를 통한 안전문화 확산방안'에서 "(정부의 작업중지권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이므로 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정부가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활용도는 오히려 높을 수 있다"며 "작업중지 이후 조치를 자세하게 안내해 작업중지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 보완을 통해 작업중지 후 안전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서 일반적인 기준은 큰 의미가 없다.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업종별, 원ㆍ하청 구조 특성별, 위험성 특성별 등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 마련이 가이드라인에서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러기 위해선 고용부가 위험 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어떨 때 위험을 느꼈고, 어떨 때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싶은지, 원청 책임자ㆍ관리감독자가 작업중지권 행사를 받아줬는지 등 실태조사를 철저하게 해야 의미 있는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ㆍ이재헌 기자 dhlee@elabor.co.kr
    •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하시면 노동법률이 제공하는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로그인

    이동희ㆍ이재헌

     기자

    목록보기 버튼

    LIST

      • 1

        노동계, “최임위 특고ㆍ플랫폼 논의 배제는 위헌”…헌법소원 청구인단 모집

      • 2

        고용부 차관에 ‘김민석 고용노동비서관’ 내정

      • 3

        “현대모비스 ‘CKD 검사원’ 불법파견”…제3작업장서 일했어도 파견관계 인정

      • 4

        법원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도 갱신기대권 있어”

      • 5

        ‘교섭 OK 안 하는’ OK금융그룹, 4년간 단협 미체결…노조 부노 신청

      • 6

        ‘최저임금이 최고임금’ 서비스 노동자들 “저임금으로 노후 준비 어렵다”

      • 7

        ‘노란봉투법’ 재시동, 야6당 공동 발의…양대 노총 “빠른 국회 통과”

      • 8

        [단독] 대법, 현대차 소방업무 불법파견 인정…불파 리스크 비생산까지 확대되나

      • 9

        [단독] 대법, “현대차 ‘시험장비 보전업무’ 불법파견 맞다” 근로자 측 손

      • 10

        법원 “임금반납 거부한 직원 해고는 적법...해고대상 선정에 문제 없어"

    제보 및 기사문의

    - 이동희 기자
    • 광고, 제보
    • (02)2231-2463, 이메일:dhlee@elabor.co.kr
    • 구독
    • (02)2231-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