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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3-11-14 18:18:33

    수정 : 2023-11-17 14:32:14

함량 미달의 중대재해처벌법 위헌심판제청신청 기각 결정

2023-11-14 18:18:33



함량 미달의 중대재해처벌법 위헌심판제청신청 기각 결정
[2023년 12월호 vol.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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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법학박사
     
    지난 3일 창원지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두성산업 사업주가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기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로마 시대부터 사용돼 온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속담이다.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각 결정문을 보고 느낀 소회이기도 하다. 신청 인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이론, 복잡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점이 결정문 곳곳에서 보인다. 책상물림 결정의 전형이다. 안전과 법을 함께 공부한 학부 4학년생의 리포트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정도의 결정문을 작성하는 데 1년 넘게 걸렸다니 판사의 성실성과 역량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결정문은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 3가지 쟁점 모두에 대해 구체적 논증을 생략하거나 비약하고 있다. 위헌 여부에 대한 구체적 쟁점이 차고 넘치는데도 본질에 깊이 파고들지 않고 신청인 주장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거나 극단적 주장을 가정해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전문법률과 같이 학습돼 있지 않은 영역에 대해선 판사 스스로 많이 듣고 읽고 검토하는 게 마땅함에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느낌이 확연히 든다. 이번 결정문을 보고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진짜 무지는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학습의 거부다."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필자만일까.

    이번 결정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그저 좋은 법이라는 판사 개인의 '뇌피셜'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내거는 명분 외에 그 위상, 다른 법과의 관계, 현장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 등에 대한 분석과 이해도 없고, 판사의 기본적 자세인 신중함과 철저함도 엿보기 어렵다. 판사 개개인에게 독립성을 부여한 것은 여론 등에 구애받지 않고 사명감을 기반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헌법에서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꿰맞추는 식의 결정은 최악의 판사가 되는 지름길이다. 결정이 나오기 5개월 전쯤부터 기각될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된 것은 '답정너' 결정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결정이 노동계 등 여론을 의식하거나 이에 동조해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법률의 한두 개 조항이 아닌 사실상 법 전체의 폐지로 이어질 수 있는 인용 결정에 따른 부담 때문도 아니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념, 비난 부담 등을 떠나 무지와 무책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 주체인 '시설, 장비, 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두루뭉술한 답변만 할 뿐 구체적 답변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설의 지배자가 소유자인가, 점유자인가. 지배자, 운영자, 관리자가 다를 경우 누가 의무 주체인지 판사는 답변할 수 있는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전문가조차도 제대로 조언할 수 없고 전문가마다 조언이 제각각인 현실에 판사는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예컨대 지하철역사에서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사를 하거나 공장에서 대정비작업을 하는 경우, 도급인, 수급인 중 누가 의무 주체인지 한 방송토론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하는 변호사, 교수에게 필자가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일언반구 응답하지 못했다. 구체적 쟁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판사도 답변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잘 답변하지 못하는 규정을 명확하다고 강변하는 건 무지를 넘어 솔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도급인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의무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판사는 의무 내용이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어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전혀 모르는 판단이다. 예컨대 외부 업체가 도급인의 사업장에 들어와 작업할 경우, 해당 도급인은 인력 배치, 예산 편성, 관리감독자 평가 등의 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기 어렵다. 아무리 수급인이라 하더라도 별개의 업체이고 수급인이 한 도급인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도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급인이 외부 업체의 인력, 예산, 평가 등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판사는 막연히 경영책임자라면 도급인의 역할 범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봤다. 판사가 현장의 구체적 사정을 파악하고 판단했을까. 판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기업에서 운영되는 모습을 알려고 시도라도 해봤을까.

    산업안전보건법을 따라야 하는지, 중대재해처벌법을 따라야 하는지, 즉 수범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는 경우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 주체가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호 중복되는 내용이 규정돼 있다 보니, 양법 간에 충돌되는 사항이 적지 않다. 예컨대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수급인이 수립해야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상에선 대부분 도급인이 수립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개선(시정)명령 사항에 대한 이행 조치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선 수급인이 하도록 돼 있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에선 도급인이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결과적 가중범보다 가중처벌하기 위한 합리적 근거도 두지 않고 가중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가중처벌한다는 조항을 이미 두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 결과적 가중범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은 동일사항(예: 안전보건인력의 배치, 업무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예산 부여)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중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근로자보다 보호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까지를 보호 대상으로 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한 처벌을 규정한 것 역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비난가능성이 적음에도 되레 강한 처벌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사실상 동일하거나 약한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도 법정형을 상향 조정한 조항이 상당수 있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정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판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체계와 구성요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관계 등에 대해 깊이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 판사가 이 부분을 심리하지 않은 이유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측에서 이런 내용을 주장하지 않았더라도 판사는 직권으로 이 정도의 기초적 내용은 파악하고 판단했어야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구성요건과 비교해 가중적 구성요건 표지가 없는 위반(예: 법적 의무 이행점검 위반, 시정명령 위반)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가중처벌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검사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할 수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기소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가중적인 구성요건 표지 없이 법적용을 오로지 수사기관의 재량에만 맡기고 있는 것이다. 수사기관 스스로도 법적용에 대해 혼란을 겪을 수 있고, 법 집행기관이 이런 사정을 피의자나 피고인의 자백을 유도하거나 상소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다. 비난가능성이 동일한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 법정형만 높인 중대재해처벌법은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상실한 것이 명백하다. 이 점은 이미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판사는 양법의 구체적 내용, 적용관계 등에 대해서도 심리하지 않았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찰스 다윈의 말이다. 전문법률의 법리,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무지가 판사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안전 초보자들이 갖기 쉬운 '엄벌이 곧 정의'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힌 것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든다. 판사가 엄벌이 능사라는 생각에 빠지면 피고인 측이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묻지 마 유죄를 선고하는 '유죄 판결 법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편견이 개입돼 여러 가능성을 닫은 채 재판하게 되면 공정한 결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결정 역시 이러한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위헌적인 법이 온존하면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과 법원의 자의적 판결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수범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되고 애꿎게 처벌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위헌적인 법으론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함량 미달의 이번 결정은 판사 개인의 불이익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을 정상화하거나 개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지연시키고 말았다. 당분간은 헌법소원을 통한 헌법재판소의 전문적 결정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훌륭한 판결도 많지만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처럼 투박한 결정이 어떻게 해서 버젓이 내려질 수 있는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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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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