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법률
  • 등록 : 2024-02-08 15:38:05

    수정 : 2024-02-08 15:42:52

사실상 폐기? ‘통상임금 신의칙 항변’, 한국GM서는 먹힌 이유

2024-02-08 15:38:05



법원 "한국지엠 정기상여금 비율 높아...신의칙 인정 안 되면 유동성 악화될 것"
[2024년 3월호 vol.394]
  • 장바구니에 담기
  • 프린트
  • 작은글씨
  • 큰글씨
  • ▲인천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서 한국지엠 직원들이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9년 대법원 판결 이후 사실상 폐기된 것처럼 보였던 통상임금 신의칙 항변이 인정됐다. 한국GM(한국지엠) 사건이다. 통상임금 신의칙 항변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해 사용자가 임금을 다시 산정해 지급해야 하더라도 그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지급 의무가 면제된다는 법리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인정된 법리지만 신의칙 항변이 적용된 사례는 손에 꼽는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지엠의 경우 임금 중 정기상여금 비중이 700%이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58% 이상 임금이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기업에 비해 적지 않은 수준이다. 법원은 한국지엠이 근로자들에게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다시 지급하게 되면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며 회사의 신의칙 주장을 받아들였다.
     
    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인천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이동기)는 한국지엠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2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청구는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그로 인해 회사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 "정기상여금, 통상임금이지만 재산정 수당 지급하지 않아도 돼"
     
    한국지엠은 단체협약에 따라 매년 짝수월 말일 정기상여금을 지급해 왔다. 근로자들은 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면서 2011년부터 3년 치 수당을 다시 산정해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통상임금은 야간수당, 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하는 기초가 된다. 대법원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ㆍ일률적ㆍ계속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은 통상임금이라고 본다.

    재판부는 한국지엠의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일정 기간 근속한 근로자라면 확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이라는 이유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던 직무수당과 근로보조비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지엠이 수당을 다시 계산해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주장한 '신의칙 항변'이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다면 노사가 매년 체결해 온 임금협상의 범위를 과도하게 초과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노사는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각종 수당의 규모를 예측해서 임금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다면 근로자들이 받게 될 임금은 노사가 예측했던 것보다 과도하게 늘어나게 돼 부당하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노사는 1985년부터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는 인식하에 임금협상과 단체교섭을 해왔다"며 "노사는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기본급의 인상률과 각종 수당의 증액 여부를 결정했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시켜서 임금협상을 했더라도 임금 총액에는 큰 변동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방식으로 산정한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은 월 통상임금의 연 70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정기상여금을 포함해 산정하면 통상임금이 약 58.3% 증가한다"며 "한국지엠에서는 연장ㆍ야간ㆍ휴일 근로 등 초과 근로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회사가 추가로 부담하게 될 법정수당은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협상 자료로 삼은 법정수당의 범위를 현저히 초과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통상임금 인상에 따라 회사가 지급하게 될 임금은 2384억 원이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2017년 완전 자본 잠식상태에 빠졌다. 당시 회사 외부감사인은 한국지엠 재무제표에 대해 계속기업으로서 지속가능성이 불확실하다며 감사의견을 거절했다.
     
    한국지엠의 부채 비율도 동종업체보다 높았다. 재판부는 2018년 이후 한국지엠의 당기순손실 규모가 감소하긴 했지만 근로자들에게 통상임금을 지급하려면 단기 자금 차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단기 자금 차입을 하게 되면 유동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사실상 폐기' 신의칙, 받아들여진 이유는
     
    선고 직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또 신의칙"이라면서 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앞서 2020년 대법원에서도 한국지엠 근로자 5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항변이 받아들여진 바 있어서다.
     
    그러나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측의 신의칙 항변이 인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 신의칙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볼 때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어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그러나 2019년 대법원은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을 판단하면서 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는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2021년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은 신의칙 판단기준을 구체화했다.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는지 판단하려면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 실질임금 인상률, 통상임금 상승률, 기업의 당기순이익, 동원 가능한 자금 규모, 인건비, 매출액, 기업의 계속성, 산업계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칙 판단이 엄격해진 데 이어 요건이 구체화되면서 사실상 신의칙 적용은 어려워졌다. 2019년 이후로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이 인정된 사례는 2020년 쌍용차와 한국지엠 대법원 판결이 유일하다.

    현대제철과 현대트랜시스, 현대모비스, 금호타이어 등도 신의칙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진 사례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신의칙이 인정된 것이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정기상여금이 월 통상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회사보다 컸고 그로 인한 통상임금 상승률도 다른 제조업체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회사의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청구한 법정수당 규모가 적지 않아 경영상 어려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판단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신의칙 법리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의칙이 인정된 판결이 거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다만 이번 판결에서 신의칙이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뿐만 아니라 재판부가 신의칙 법리에 대해 전향적인 시각을 갖고 사안을 검토한 결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
    •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하시면 노동법률이 제공하는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로그인

    이지예

     기자

    목록보기 버튼

    법률 LIST

      • 1

        법원 “HD현대건설기계 하청업체, 독립적 기업조직 아냐...불법파견 인정”

      • 2

        ‘국민은행 임피제’ 소송, 1차와 2차 결과 달라진 이유

      • 3

        2차 기일 앞둔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 파기환송심, 어떤 쟁점 오가나

      • 4

        경찰 “노조원이 피켓 휘둘러 부상”…법원, 노조원에 무죄 선고

      • 5

        분쟁업체 ‘주식 거래’로 큰돈 번 직원…법원 “해고 정당”

      • 6

        법원 “택시기사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위반 회피 아냐”

      • 7

        [단독] 법원, “노무사회, 회장 당선 무효 위법”...박기현 회장 업무 재개

      • 8

        “민주노총 안돼” 세브란스병원ㆍ용역업체 공모한 ‘노조파괴’ 문건 수두룩

      • 9

        “한수원 청원경찰, 감시적 근로자 아냐” 10년 만의 대법 판결

      • 10

        법원 “현대건설기계 하청 서진이엔지 불법파견”

    제보 및 기사문의

    - 이동희 기자
    • 광고, 제보
    • (02)2231-2463, 이메일:dhlee@elabor.co.kr
    • 구독
    • (02)2231-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