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한국도로공사 서평택톨게이트(사진=뉴시스)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판결이 또 나왔다. 지난 5월 같은 쟁점에서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나온 두 번째 판결이다. 법원이 연달아 회사 측 손을 들어주면서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가 적법 도급으로 굳어질지 주목된다.
 
3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수원고등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김상우)는 지난달 26일 한국도로공사에서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를 한 하청업체 근로자 221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는 교통관리시스템(FTMS), 자가통신망, 요금징수설비(TCS) 등을 유지ㆍ관리하는 업무로, 한국도로공사는 2009년부터 7개 하청업체에게 이 업무를 맡겼다.
 
서울, 경기, 경북 등 지역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한국도로공사가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며 각 지역에서 6건의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뒤집은 수원고법…"상당 지휘ㆍ명령 없다"

수원지방법원은 2022년 12월 1심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는 한국도로공사가 유료 도로를 원활하기 유지관리하기 위한 핵심 업무로 한국도로공사가 지휘ㆍ명령을 할 유인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불법파견이 아니라며 원심을 뒤집었다. 2심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작성한 일일업무일지와 특별근무일지가 지휘ㆍ명령 징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일일업무일지 등만으로 공사가 외주사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세부적인 업무 내용을 알 수 없다"며 "일일업무일지는 용역 대금 정산을 위한 자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업지시서도 한국도로공사가 지휘ㆍ명령했다는 증거라고 보지 않았다. 2심은 "과업지시서는 외주사업체가 수행할 업무의 범위, 달성 목표, 주의 사항 등을 개략적으로 설명할 뿐"이라며 "외주사업체가 공사의 과업지시서 외에 스스로 제작한 매뉴얼로 업무를 진행해 공사의 과업지시서는 위임 업무의 개략적인 내용과 범위를 특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도로공사 감독원들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문자, 이메일로 업무 지시를 한 사실이 인정됐지만, 법원은 일반적 지시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2심은 "공사가 감독원들을 통해 외주사업체 근로자들에게 카카오톡, 이메일 등으로 업무 지시를 했지만, 구체적인 업무 지시가 아닌 일반적 지시에 불과하다"며 "감독원들의 연락 횟수도 적어 업무상 상당한 지휘ㆍ명령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2심은 하청업체의 사업이 한국도로공사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공사와 외주사업체 근로자들의 근무 장소 출입구와 이용차량이 명백히 구분된다"며 "외주사업체가 독립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업무를 하고 업무의 내용도 시스템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한국도로공사에 사업이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서 이미 '불법 파견 부정' 확정…유사 사건에 영향 갈 듯

이미 법원에선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 판결 후 나온 첫 하급심 판결이다. 지난 5월 대법원은 한국도로공사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가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결국 앞선 대법원 판결이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에서 하청업체 측을 대리한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앞선 대법원 판결이 대법원 사건과 사실관계에서 큰 차이가 없었던 이번 사건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과 이번 판결이 타지역 한국도로공사 정보통신 유지관리 업무 불법파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최 변호사는 "경북 등 다른 지역에서 재판 중인 사건도 도로 구간별 위탁업체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관계는 거의 유사하다"며 "불법파견이 부정된 서울고등법원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수원고등법원도 1심을 뒤집고 불법파견을 부정해 나머지 지역에서도 불법파견이 부정되는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법원이 제조업에 이어 서비스업까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불법파견을 부정한 판결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며 "시스템 유지ㆍ관리와 같은 서비스업도 고도의 전문성과 업무 독립성이 인정되면 적법한 도급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