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녹색정의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보고서 발표회'를 열었다. (이재헌 기자 jh59@)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자들의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신체ㆍ정신적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강도가 높은 이유로는 고과 평가, 인력 부족이 꼽혔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녹색정의당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보고서 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연구 보고서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판매, 삼성SDI 소속 180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8개월간 온라인 설문조사, 오프라인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성과 압박'에 삼성전자 노동자 정신건강 '적신호'

조사 결과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일반 노동자보다 위험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자들의 우울증 유병률은 삼성전자 45.8%, 삼성전자서비스 46.3%, 삼성전자판매 69.5%, 삼성SDI 46.7%로 일반인 평균 18.4%의 두 배 이상이었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의 비율도 삼성전자 9.3%, 삼성전자서비스 9.2%, 삼성전자판매 11.9%, 삼성SDI 16.7%로 일반인 평균 1.3%의 1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수면장애 유병률 역시 삼성전자 65%, 삼성전자서비스 72%, 삼성전자판매 68%, 삼성SDI 77%로 임금노동자 평균 15%의 5배에 달했다.

연구진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으로 성과 압박을 꼽았다. 조사 결과 '성과 압박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삼성전자는 68.8%, 삼성전자서비스는 86.6%, 삼성전자판매는 92.9%, 삼성SDI는 64.7%였다.

성상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가전제품의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판매는 매년 더 높은 판매 실적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에게 실적 압박을 가해왔다"며 "최근 몇 년간 판매사원에게 고객이 쇼핑 후기와 자사 전자제품 연계 판매를 요구하며 이를 고과 평가에 반영해 업무 스트레스를 가중했다"고 말했다.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도 "실적에 따라 고과에 크게 영향을 받아 노동자들이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고객 응대 노동자는 감정노동을 평가받아 정신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면접조사에 응한 삼성전자판매 노동자 A 씨는 "절차에 따라 대응해도 왜 안 해주냐고 소리를 지르는 고객들이 있다"며 "선배가 고객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고, 감정노동 문제로 힘들어서 그만두는 직원도 많다"고 했다.

삼성이 정신건강 대책으로 내놓은 사내 심리상담센터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삼성전자판매 노동자 B 씨는 "사내 심리상담센터가 존재는 하지만 허울뿐"이라며 "사번이랑 전화번호를 다 입력해야 상담 접수가 가능한데 아무리 무기명으로 상담이 진행된다고 해도 직원들이 이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골격계ㆍ유해물 노출' 신체건강도 위험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신체건강 역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유증상자 비율은 삼성전자 81.4%, 삼성전자서비스 93.1%, 삼성전자판매 92.5%, 삼성SDI 75%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기준 임금노동자 평균의 두 배 이상인 수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C 씨는 "20년째 수리기사 한 명이 한 가구당 60분 안에 수리를 하는 것이 규정"이라며 "최근 제품 대형화 등으로 한 명이 60분 안에 수리를 완료하려면 팔꿈치, 허리,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고 했다.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삼성전자 노동자 중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63.3%였다"며 "유해 화학물질을 자동화 방식으로 차단한다고 하지만 근무 중 심한 냄새가 난다고 응답한 비율이 12.5%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반도체 칩 사업장의 경우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유해화학물과 근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이들은 본인과 주변인의 암, 희귀질환 발병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삼성SDI 노동자 다수는 화학물질 노출을 말했다. 삼성SDI 노동자 D 씨는 "공정 과정에서 수산화나트륨이 튀어서 5명이나 병원에 간 적이 있다"며 "전해액의 경우에도 냄새가 심해 호흡용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일반 마스크만 사용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성과 압박으로 인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프리젠티즘'의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프리젠티즘 비율은 삼성전자 52.8%, 삼성전자서비스 78.7%, 삼성전자판매 77.7%, 삼성SDI 75%였다.
 
이상수 활동가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다쳐서 쉬게 되면 징벌적 하위 고과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치료비는 고사하고 치료받을 시간도 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삼성의 고과 제도가 직접적으로 건강 유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고과 개선ㆍ인력 충원'으로 과로와 압박 줄여야
 
연구진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고과 제도 개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고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삼성전자 20.3%, 삼성전자서비스 22.3%, 삼성전자판매 28.3%, 삼성SDI 53.3%로 모든 계열사에서 1순위로 꼽혔다.

이상수 활동가는 "삼성에서 고과 제도는 임금과 진급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라며 "성과에 따라 임금과 진급의 격차가 많이 나다보니 노동자들이 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사고 시 징벌적 하위 고과를 받아 고과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업무상 사고나 질병이 의심돼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과 압박과 산재 은폐에 악용되는 현행 고과 제도 개선 없이는 삼성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적정 인력 충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청희 활동가는 "인력 충원을 통해 과로에 시달리는 교대제를 개선하고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수 활동가도 "부족한 인력으로 과중한 업무를 계속 맡겨서는 연구 결과 나타난 심각한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적정 인력 확보로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이 노동자 건강을 위해 가장 시급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