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쿠팡CLS 물류캠프에서 택배기사들이 상하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가 쿠팡의 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CLS에 대해 배송기사의 야간 업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쿠팡 CLS의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서는 배송기사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4일 고용부는 쿠팡 본사를 포함해 총82개소의 쿠팡CLS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고용부는 "쿠팡CLS에 대해 지속적으로 산업안전보건 및 근로조건 문제가 제기돼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 ▲기초노동질서 감독(일용근로자에 대한 가짜 3.3 계약 등) ▲배송기사 불법파견 등 3개 분야에 종합적인 근로감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산안법 및 안전보건규칙 위반, '사법처리ㆍ과태료'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기획감독한 결과 고용부는 41개소에서 위반사항을 적발해 4건을 사법처리하고 53건을 과태료 부과 처분했다. 이번 기획감독으로 쿠팡CLS에 부과된 과태료는 9200만 원에 달한다.
 
사법처리된 위반 사항으로는 ▲지게차 운전을 정지하고도 열쇠를 그대로 방치 ▲감전 위험이 있는 컨베이어 충전부에 방호 조치를 하지 않음 ▲리프트 설치ㆍ사용을 위한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음 등이 있었다.
 
과태료 처리된 위반 사항으로는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1개월 도과해 보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배송기사에게 최초 노무제공 시 교육을 실시하지 않음 ▲야간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 특수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음 등이 있었다.
 
기초노동질서 감독 결과, 쿠팡CLS 위탁업체 3개소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쿠팡CLS 위탁업체 4개소와 쿠팡CLS 외 다른 물류센터 2개소에서는 일용근로자 360여 명에 대해 사업소득세(3.3%)를 납부하고 있는 것이 적발됐다.
 
쿠팡CLS의 사업소득세 계약이 문제가 된 것은 이러한 계약이 4대보험료 납부 및 퇴직금 지급 등을 피하기 위해 근로자를 사업소득세를 내는 개인사업자로 위장해 등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휴일근로수당 미지급을 포함해 1억5000만 원의 임금체불과 근로조건 서면 명시 의무 위반 등 136건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또한 고용부는 쿠팡CLS에 24시간 배송사업에 대해 근로자 및 배송기사에 대한 건강권 보호 및 작업환경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명령했다.
 
또, 배송기사가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고, 야간 업무를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쿠팡 배송기사, 근로자 아니라 불법파견 아냐"
 
지난해 5월 쿠팡 배송기사였던 고 정슬기 씨가 사망하면서 공개된 카카오톡 대화 내용으로 쿠팡CLS의 불법파견 논란이 불거졌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엔 택배 영업점과 위ㆍ수탁 계약을 체결한 배송기사 고 정슬기 씨에게 쿠팡CLS 관계자가 직접 지휘ㆍ감독을 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겼다.

불법파견 의혹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 고용부는 "배송기사를 근로자로 볼 수 없어 불법파견관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용부는 배송기사가 업무에 필요한 화물차량을 소유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차량을 관리하며 고정된 기본급 없이 배송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쿠팡CLS로부터 배송 경로나 순서 등에 대해 별도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했다.
 
앞서 불거졌던 논란에 대해서는 "쿠팡CLS와 배송기사 간 카카오톡 대화는 빈도가 많지 않고 오배송이나 파손 시 처리 절차 안내, 물량 안내 등 배송 과정에서 배송기사에게 필요한 안내나 정보 제공 용도로만 활용됐다"고 일축했다.
 
고용부는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배송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기 어렵고, 따라서 근로자파견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는 이번 근로감독을 두고 "정 씨의 죽음을 설명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는 수준 미달의 근로감독"이라고 비판했다.
 
위원회는 "고용불안을 일으켜 장시간ㆍ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일명 '클렌징 제도'라 불리는 쿠팡 시스템이 존재하고, 쿠팡이 정해 놓은 높은 서비스 지표를 달성하기 위해 배송기사들은 과로하고 있다"며 "그러나 고용부는 이번 근로감독에서 클렌징 제도 등에 대해 아무런 권고조치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쿠팡CLS의 배송기사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과로사의 원인 규명과 해법 마련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며 "고용부의 이번 근로감독은 '택배노동자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서 죽었다. 해법은 없다'라는 입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근로감독으로 배송기사의 과로사를 예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호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은 "고용부는 택배노동자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을 외면했다. 열악한 쿠팡의 노동현실을 은폐하고 있고 쿠팡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고용부가 택배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 했다면 고용형태가 갖는 한계와 별개로 실효적인 근로감독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xs@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