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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 2024-05-16 17:34:32

    수정 : 2024-05-31 17:23:04

협력업체의 을질, 과연 약자의 반란뿐일까?

2024-05-16 17:34:32



협력업체의 을질, 과연 약자의 반란뿐일까?
[2024년 6월호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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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의 갑질, 용역위탁업체에 대한 수요처의 갑질은 이미 흔히 알려진 얘기다. 계약된 원가를 깎고, 협력업체의 특허권을 무시하고, 일을 떠넘기는 업무상(Work-Related) 갑질부터 뒷돈을 요구하거나 부적절한 언행으로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개인적(Personal) 갑질까지 다양한 형태가 확인된 바 있다. 제조업, 건설업과 같은 2차 산업뿐만 아니라 언론, 교육, R&D 등의 분야에서도 이러한 갑질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런 갑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을의 반발을 원청/수요처가 을질로 몰아가는 사례도 보도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을질'은 모두 이렇게 가해자가 프레임을 씌운 약자의 몸부림 뿐인 걸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협력업체(또는 용역위탁업체) 측이 능동적으로 가해자가 된 사례들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제보된 사례들을 보면 크게 슈퍼 을로써 갑을 짓누르는 경우와 을이라는 입장을 악용하는 경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슈퍼 을의 발생 배경과 가해 행위
     
    슈퍼 을의 발생 배경도 크게 둘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오랜 거래로 협력업체 담당자가 원청의 상급자와 친분을 쌓으면서 그 권력을 등에 업고 휘두르는 경우다. 두 번째는 지역 내에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협력업체가 존재하지 않아서 원청이 반드시 한 업체와 계약을 해야 하는 경우다. 슈퍼 을의 가해 행위는 그 본질이 원청의 갑질과 유사한 면이 있다. 가해자가 스스로 더 힘이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권력형 가해행위가 흔히 확대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청의 상급자가 이들의 가해행위를 덮어주거나 무마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권력자의 가해 사례와 유사성을 띈다.
     
    관련 사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원청 소속 직원인 A 씨는 젊은 여성으로 입사한지 1~2년만에 어느 협력업체와의 거래를 담당하게 됐다. A 씨의 전임자는 업무인계를 하며 오랫동안 함께 거래해 온 곳이기 때문에 업무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알렸다. A 씨는 협력업체 측 담당자와 첫 회의를 했고, 업체 대표로부터 함께 식사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A 씨는 원청 측이 협력업체 측으로부터 접대를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식사를 거절했다. 그러자 협력업체 대표는 젊은 사람이라 일할 줄 모른다며, A 씨가 불쾌하게 느낄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복귀한 A 씨는 회사 상급자에게 불려갔고 협력업체 측에서 불편해하더라는 질책도 들었다. 상급자의 그런 태도 때문에 A 씨는 두 번째 회의 때 식사 제안은 거절하지 못했다. 협력업체 대표는 식사 중 A 씨에게 계속 술을 권했다. A 씨가 차를 가져와서 곤란하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A 씨는 결국 술을 마셨고, 스스로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표 차에 동승하게 됐다. 대표는 차 안에서 A 씨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음담패설을 했다. 협력업체 측 계약 담당자도 앞좌석에 타고 있었으나 대표의 음담패설을 웃어넘길 뿐이었다.

    A 씨는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돌아온 것은 상급자의 질책이었다. 상급자는 A 씨를 협력업체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전임자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유독 A 씨만 협력업체와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A 씨는 노동청에 협력업체의 행위와 사측의 2차 가해를 신고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A 씨가 고민을 상담한 선임도 회사와 척을 져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며 신고를 제지했다. A 씨는 신고를 포기했지만 협력업체 대표를 또 만나게 될까봐 직접 방문하는 것은 꺼리게 됐고, 협력업체 측에 회의하러 와 줄 것을 요청했다. 협력업체 측 계약 담당자는 A 씨의 그런 요청을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사례자인 B 씨는 남성으로 역시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B 씨 역시 오랫동안 회사와 거래해 온 협력업체를 새로 담당하게 됐다. 초반 계약 과정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B 씨는 곧 해당 협력업체가 작업을 담당한 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산업안전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B 씨는 협력업체 측에 하자보수를 요청했다. 협력업체가 곧 보수하겠다는 말만 할 뿐 작업을 진행하지 않자, B 씨는 좀 더 강하게 보수를 요청했다. 또한 상급자에게도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상급자도 초반에는 B 씨의 보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윗선에 보고하러 다녀온 상급자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고, 별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B 씨를 질책했다. 이후 B 씨는 자택 전화로 협력업체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협력업체 대표는 젊은 혈기에 열의가 앞서서 한 행동이니 본인이 이해를 해주겠다는 투로 말했다. B 씨의 가족을 언급하며 가족을 건사하려면 자리를 잘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B 씨에게는 협박으로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B 씨의 명함에는 사무실 번호와 핸드폰 번호만 있을 뿐, 자택 번호는 공유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협력업체 대표는 B 씨의 자택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고 B 씨에게는 한층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사례자인 C 씨는 몇 년간 경력이 단절됐다가 다니던 회사에 재입사한 여성이었다. 입사하자마자 회사 협력업체 중 한 곳의 거래를 담당하게 됐다.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전임자(부서장)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경고를 주긴 했다.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C 씨는 첫 회의부터 협력업체 대표에게 수차례 모멸감을 느꼈다. 대표는 처음 보는 관계임에도 C 씨에게 반말을 서슴지 않았다. 전임자에 비해 C 씨의 직급이 낮은 점을 트집 잡으며 C 씨가 담당자로 온 것이 본인에 대한 예우 부족인 것처럼 말했다. 이후 거래에서도 납품일 직전에 기일을 못 지키겠다며 C 씨를 당황하게 했고, C 씨가 다급하게 협력업체로 찾아가 보면 이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납품이 진행되는 일이 반복됐다. C 씨는 협력업체 대표가 또 어떤 돌발상황을 만들어낼지 항상 불안해해야 했고, 대표와 연락할 때는 트집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C 씨는 협력업체 대표의 가해행위를 전임자에게 호소했다. 전임자는 대체할 수 있는 업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거래를 해야 한다, 본인도 사장에게 호소해 봤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C 씨는 직급이나 연차가 더 높은 다른 직원으로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호소했지만, 모두가 해당 협력업체를 기피하고 있었다. 때문에 장기간 회사를 떠나 있어 상황을 잘 알지 못했던 C 씨에게로 담당 업무가 떠넘겨진 것이었다. C 씨는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퇴사했다.
     
    일반 을의 가해 행위
     
    이 경우 약자라는 을의 입장을 악용해 이미 계약된 업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부적절한 행위를 지적받았을 때 지적 행위 자체를 갑질로 몰아가는 형태가 흔히 확인됐다. 후임 직원의 선임에 대한 을질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첫 번째 사례자인 D 씨는 이른 나이에 중간 관리자가 된 여성으로 대형 프로젝트와 연계해 진행되는 다소 작은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게 됐다. 두 프로젝트 모두 유사한 용역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 한 업체를 선정했다. 평가 과정 중 D 씨의 후임(비정규직)은 회의록 작성을 위해 업체들의 발표를 녹음해뒀다.
     
    선정된 협력업체는 대형 프로젝트와 관련된 영역은 상당히 꼼꼼하게 진행했으나, D 씨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과업은 좀처럼 일정을 지키지 않았다. 때문에 D 씨는 프로젝트 진행이 매번 늦어져 질책을 들어야 했다. 협력업체는 입찰에 참여할 당시 본인들이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던 추가 과업도 하지 않았다. 그 과업은 애초에 D 씨가 제안요청서에서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협력업체 스스로 하겠다고 해서 새롭게 추가된 과업이었다. D 씨가 해당 과업의 진행 상황을 묻자 협력업체는 계속 핑계를 대며 일정을 미뤘다. 급기야 계약되지도 않은 업무를 요구한다며 D 씨와 후임을 갑질로 몰고 가기 시작했고, 후임에게는 폭언도 했다.

    D 씨와 후임은 협력업체 발표 녹음 파일을 그쪽으로 보냈다. 협력업체가 용역을 따내기 위해 수행하지도 못할 과업을 하겠다고 허위로 발표했던 점, 과업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미리부터 알았음에도 D 씨에게 공유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던 점, D 씨를 갑질로 몰아간 점 등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협력업체의 잘못이 명백한 상황이었으나 담당자는 D 씨에게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D 씨의 상급자(중년 남성)가 나서서 요구하자 그제야 D 씨에게만 사과했다. 후임도 사과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으나 협력업체 직원은 후임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례자인 E 씨는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젊은 남성이었다. E 씨는 전임자로부터 꾸준히 거래해 온 위탁업체를 물려받으면서 경고를 들었다. 해당 업체가 전문성은 있으나 본인인맥들을 과도하게 동원해 수당을 챙기려는 경향이 있으니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협력 업무를 수행하면서 E 씨는 곧바로 전임자가 경고한 상황을 접하게 됐다. E 씨는 예산상 그 많은 수의 전문가 모두에게 수당을 주기는 어려운 상황임을 언급하며, 모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지 물었다. 업체는 E 씨의 물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E 씨의 질문이 마치 갑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강하게 항의했다.
     
    E 씨 입장에서는 업체가 공공자금을 쌈짓돈처럼 본인의 인맥들에게 나눠주려 하는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하지만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오히려 E 씨가 업체 측에 사과를 해야했다. E 씨의 상급자도 업체의 문제를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가라고 했다. 다른 업체를 찾아서 교체하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을질 :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행위
     
    앞에서 본 슈퍼 을과 일반 을의 가해행위는 각자 다른 성향을 띄면서도 둘 다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형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을들은 갑 조직의 직원 중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타겟(약자)을 골라서 을질을 했다. 여성, 젊은 연령대, 낮은 직급의 피해자들이 두드러졌다.
     
    이런 피해자들은 갑 조직에 속한다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고도 보호받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갑 조직에 속해있어 오히려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소속된 조직조차도 이들을 보호하지 않기도 한다. 위 사례 중 D 씨처럼 상급자가 보호하고 나선 경우에는 그나마 사과라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D 씨의 후임조차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사측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고, D 씨보다 더 심한 폭언을 당했음에도 사과받지 못했다. D 씨를 제외한 다른 사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협력업체의 을질이 그저 원청 갑질에 대한 반발만은 아니며 협력업체 측 또한 능동적인 가해자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 피해자와 가해자의 소속이 다를 때도 적용돼야
     
    현재 국내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서로 다른 사업장에 소속된 가해자-피해자의 사건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위 사례처럼 갑 조직 직원이 을 조직에 직원에게 을질을 당해도, 반대의 상황이 발생해도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한다. 사용자의 의무를 소속 사업장 직원 보호로 한정해 뒀기 때문이다. 이 의무를 확대해 직원의 가해행위 방지까지 포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소속과 상관없이, 가해자가 소속된 사업장이 가해 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조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법적 의무는 없지만 이미 협력업체에 대한 소속 직원의 가해행위를 나서서 조사하고 조치하는 선도적인 원청(수요처)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조치 방식을 보면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청에서 1인, 협력업체에서 1인이 함께 조사를 진행한다. 비용은 원청이 책임진다. 협력업체 직원이 원청 직원에게 을질한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협력업체 1인과 원청 1인이 함께 조사하되, 비용은 협력업체가 부담하는 것이다.
     
    가해 행위 주체가 업체 대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해자로 신고된 대표의 소속 업체가 비용을 부담하고 외부 조사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표의 가해행위에 대해 사업장 자체 조사가 공정하기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 소속 사업장에서 감수성을 가진 1인 이상이 감사 역할로 참여해 외부 조사관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지, 그 외 조사 및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듯 법을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서 점차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를 좁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속적인 인식개선 교육을 통해 사용자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둘러싼 조직문화를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원청의 갑질과 협력업체의 을질 모두 양 업체의 사용자가 어떤 태도와 의지를 갖는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법이 없어도 사용자의 의지가 있다면 해소될 수 있다. 반대로 법이 아무리 강력해도 사용자의 태도가 그릇됐다면 법을 우회하려는 편법과 위법이 판칠 뿐, 실효성은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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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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