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딱히 없어 보인다.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회사의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양육해야 했던 부모를 기억하는 지금의 청년층 등등 국내 출산율을 낮추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급여 대비 높은 물가와 생활비로 인해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어 여러 사교육으로 돌렸고 사교육이 당연시되다시피 하면서 내 자녀가 뒤쳐질까 봐 따라서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부부가 늘어났고, 사교육비의 증가로 부부가 맞벌이를 반드시 해야만 했고, 자녀 양육은 감당할 수 없는 고비용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자녀를 낳아 키워도 성인이 된 자녀 역시 생활고에 허덕이면서 부모의 노후를 지원하지 못하게 됐다. 차라리 자녀를 낳지 않고 부부끼리 좀 더 여유 있게 살자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위 문제들은 이미 국내 다른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언급했으므로, 필자는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바로 우리나라 사업장의 업무 형태와 구조다. 서구권의 사업장은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고, 출산과 육아가 경력 유지에 장애요인이 되지 않도록 근로시간 단축과 잡쉐어링(Job Sharing) 등 다양한 제도를 실행해 왔다. 서구권 역시 출산율이 줄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단시간에 빠르게 출산율이 감소하진 않았다. 제도적 지원을 통해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면서 출산에 대한 의지가 우리나라처럼 빨리 꺾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신기나 육아기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 있다. 잡쉐어링에 대해서도 정부가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경영방식은 식민지식 경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그런 경영을 배운 사람들이 계속 사업장을 경영했다. 제도를 통해 인건비가 상승하긴 했으나,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 수준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극심한 인력 부족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인건비와 노동의 가치가 함께 상승한 서구권과의 차이를 여기서부터 볼 수 있다.

게다가 질병, 전쟁 등으로 전 인구의 수십 퍼센트가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해 온 서구권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극단적인 인력 부족을 경험한 적이 없다. 부족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업무를 명확하게 분담하고, 전문화해 숙련직이 숙련직의 일을, 저숙련직이 저숙련직의 일을 하도록 역할을 구분하는 체계를 우리는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얼마만큼의 실적과 성과를 냈는지가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1인의 근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업무의 범위와 업무량은 어느 정도인지 현장의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인건비를 받는 사람들 간에 서로 수행하는 업무량이 크게 차이 나지 않도록 한 명이 일정 시간 내에 얼마나 일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제대로 분석되지 않았다. 그 결과, 오히려 같은 사업장 안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 정규직 숙련직이 1만큼의 일을 할 때 신입 비정규직은 8의 일을 하는 모순이 발생한 사업장도 있었다. 반면, 서구권은 업무량의 불공정함 때문에 직원이 이직하면 그것이 고용주의 손해라고 인식했다. 극심한 인력 부족 속에서 필요한 직원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주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당연시됐고, 직원을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건비가 워낙 높은 만큼 생산성에 기여하지 않는 무의미한 가짜노동(Pseudowork)을 최소화하고, 근무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은 가장 길고,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인 나라가 된 것이다.

<표 1> 우리나라와 서구권의 주간 평균 근무시간 및 노동생산성 비교

구분	대한 민국	일본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미국	스웨덴	노르 웨이	아일 랜드
주간 평균 근무시간	37.9	36.7	30.7	32.8	30.7	29.7	36.4	29.2	27.1	31.0
노동생산성 (GDP/hr)	50.1	53.4	76.7	78.9	86.7	90.9	91.5	95.6	161.8	162.5

*파트타임 일자리 포함
**출처 : World Population Review(n.d.), OECD(2024)
 
낮은 노동생산성의 원인은 결코 국내 근로자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기업의 사례를 보면 해당 기업의 경영매뉴얼에서 2~3인을 배정한 업무를 한국인은 혼자서 거뜬히 해냈다.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결과다. 첫째, 서구권의 인력활용 방식으로 한국인을 일하게 하면 서구 출신 국가의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노동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인은 더 높은 숙련의 일을 해야 할 사람에게 저숙련의 일을 시키고 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하건 국내 사업장의 인력 활용 역량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결과다.
 
앞에서 말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잡쉐어링이 곧 그 제도를 활용하는 근로자의 실제 업무량 감소로 이어졌다. 한 사람이 감당하던 업무를 세밀하게 나눌 수 있으므로, 직무를 쪼개 주 이틀을 일하는 사람은 이틀만큼의 일을, 사흘을 일하는 사람은 사흘만큼의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최근 여러 국가에서 시범 운영 중인 주 4일제의 현황을 보면, 근로자 스스로 빨리 퇴근하기 위해 가짜노동을 더욱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할 방법을 찾으면서 최소 주5일제와 같은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생산성을 달성하는 효과를 냈다.
 
우리나라에서 실행한 근로시간 단축제의 실태는 어땠을까? 한 예로 세종시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할 때, 급여를 삭감하는 대신 주4일제를 도입한 곳이 있었다. 정작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은 줄여주지 않아 결국은 다들 주4일제를 포기했다. 육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 역시 공식 근로시간만 줄여줬을 뿐 업무 부담은 줄여주지 않아 부모가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며 일해야 하는 사례들이 발생했다. 부모가 부당함을 느끼고 업무를 거절하면 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남은 업무를 담당할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대신 다른 직원에게 그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자녀를 육아하는 직원이 같은 팀에 있는 것을 다른 팀원이 싫어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경영자와 관리직이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얼마나 업무량을 줄여야 할지를 판단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만 줄일 뿐 업무조정은 제대로 하지 않거나 대충 다른 직원에게 떠넘기는 식이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근로자와 예비 근로자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경영자, 관리자들의 역량과 인식 개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경영자 스스로 필요를 느끼며 인력 활용을 효율화하는 혁신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사업장도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 더 흔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리더십 교육과정이 운영되고는 있으나, 교육 내용을 제대로 활용할 만한 의식 수준이 갖춰지지 않은 탓에 높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경영자와 관리자가 인력 활용을 주도하면서 해외로 나가면 근면 성실하고 일 잘한다며 칭찬받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정작 국내 사업장에서는 낮은 생산성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높지 않은 나라. 긴 근로시간이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나라. OECD 등지의 전문가들이 보는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도 근로시간이 많이 짧아졌다지만, 여전히 타 개발 국가에 비하면 무척 긴 편이다. 그 긴 근로시간 중, 업무와 무관한 가짜 근로시간은 평균 10.63시간, 전체 주간 근로시간 중 24.2%에 달한다. 생산성과 무관한 시간, 즉 없어도 되는 근로시간이 그만큼이라는 의미다.
 
<표 2> 연령대별 주간 가짜노동 실태

구분	경영자/임원	상급 관리자	중간 관리자	평사원 (후임 있음)	평사원 (후임 없음)
가짜노동 시간 (시간)	13.14	10.40	10.53	10.44	10.05
주간 근로시간 (시간)	52.07	45.55	43.05	42.77	41.61
근로시간 대비 가짜노동 시간 비중 (%)	25.2	22.8	24.5	24.4	24.2

*풀타임 근로자만 포함
**원자료 : 서유정ㆍ김종우(2023)
 
경영자와 관리자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학습하고 역량을 키운다면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더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생산성을 내게 되면서 근로자의 피로도가 줄어들고, 일찍 퇴근해 가정에서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아이를 학원에 돌리던 시간 중 일부를 줄일 수 있으니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여전히 풀타임 일자리를 유지하더라도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자녀 출산을 저해하던 요소 중 일정 부분이 해소되는 것이다.

잡쉐어링을 생각해 보자. 부모의 잡쉐어링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자 하는 부모에게 근무시간에 맞게 업무량을 조정해 주고, 다른 사람을 파트타임 근로자로 채용해 남은 일을 담당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 진정한 잡쉐어링이다. 이때 다른 사람이 부모라면 마찬가지로 육아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풀타임으로 하나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대신 두, 세 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일자리도 첫 번째 파트타임 일자리와 같은 수준에서 근로자의 권리를 누리며 일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직된 제도하에서는 이러한 잡쉐어링이 이뤄지기 어렵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육아에 집중하려면 일정 기간의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주에 10~20시간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어도 그 시간만으로는 다시 경력을 잇기 어렵다. 질 좋은 일자리는 대부분 풀타임 근로자만 채용하며 제도적으로도 풀타임으로 하나의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만이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력단절기가 길어지면서 결국 생산성 높은 근로자였던 부모가 저숙련 단시간 일자리로 내몰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출생이 부모의 희생과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한 젊은 층이 출산에 부정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사업장의 인력활용 역량과 인식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풀타임 근로자 중심의 경직된 노동시장이 조성될 수밖에 없고, 육아 중인 부모들을 위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경제적 지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해선 안 된다. 먼저 불필요한 업무와 근무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피로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녀 출산과 육아의 의지를 갖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부모가 된 근로자는 일하면서도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녀 양육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아 중에도 매주 짧은 시간이나마 일하며 경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아로 인해 직원이 부재하거나 또는 단축근무를 하게 되면 그 자리를 다른 인력으로 대체해 그 부담이 동료들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경영진과 관리자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