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
 
유독 우리나라에선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접수 이후 가해자의 보복을 걱정한다. 가해자가 보복행위를 한다는 것은 곧 반성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괴롭힘에 잘 대응하는 국가의 경우 신고가 접수되면 피신고인이 행동을 조심하고 또 다른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자제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피신고인은 직접 또는 친한 다른 직원을 통해 신고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소문을 내는 등 다양한 2차 가해를 한다. 특히 심각한 가해행위를 한 사람일수록 반성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의 가해자들은 이토록 반성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괴롭힘으로 신고되는 사건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가장 나쁜 가해자는 좀처럼 신고되지 않는다. 직장갑질119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중 10% 정도만이 신고했고, 필자의 조사에서는 6분의 1 정도만이 신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악질 가해자와 일반 가해자, 신고된 행위자의 직급별 비중을 살펴보면 심각한 미스매치가 확인된다. 가장 고통스럽게 많이 괴롭히는 악질 가해자 중 상급 관리자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75.6%, 일반 가해자 가운데서도 38.2%로 가장 많으나, 신고된 행위자 가운데서는 17.5%밖에 되지 않는다. 남은 신고는 모두 중간 관리자와 평사원이다. 위에서 더 나쁜 짓을 하는 가해자는 신고되지 않는데, 신고된 가해자 '본인'은 훨씬 경미한 행위를 하고도 신고됐으니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표 1> 가해자와 신고된 행위자의 직급별 비중(%)

*원자료: 서유정ㆍ김종우(2023), 서유정(2024)

두 번째, 신고 접수 이후의 조치 방식도 문제가 있다. 사업장이 신고 조치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사건마다 다르게 대응해 신뢰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상당수의 사업장에서 신고된 피신고인에게 사건 관련 정보를 잘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타 국가의 지침을 보면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서를 복사해 피신고인에게 전달하고 조사를 준비하도록 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피신고인이 조사에 참여해서도 누가, 무슨 일로, 어떤 맥락에서 자신을 신고했는지 잘 알지 못한 채로 임하게 되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증언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조사를 받게 되니 피신고인은 자기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 사건의 진상이 확인될 때까지 신고인과 피신고인 모두 적절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나, 그 기회가 박탈 또는 제한된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정보를 제한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 방식이 피신고인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위원회를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충심의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신고인과 피신고인에게 위원들과 소통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들로부터 팩트 체크만 하는 경우도 있다. 조사관이 적절한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췄다는 전제하에서 팩트 체크는 이미 조사를 통해 충분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때문에 고충심의위원회에서는 단순 팩트 체크를 넘어서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고충심의위원회가 공정하게 구성ㆍ운영됐는 전제하에서 그 결과를 신고인과 피신고인 양측 모두 잘 수용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 없이 팩트 체크만 하면서 특히 피신고인에게는 정보마저 제한한다면, 그리고 최종적으로 괴롭힘 성립됐다고 통보한다면 피신고인의 결과 수용도는 당연히 떨어지고 그 원망은 피해자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세 번째, 우리나라는 허위 신고도 흔하다. 근로자가 허위 신고로 인식하는 것은 완전 허위, 왜곡, 과장 신고를 포함하는데, 20~30대가 허위 신고를 당하는 비율이 높다. 또한 여성은 허위 신고 협박을 당한 비율이 높다. 약자들이 허위신고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아래의 표는 응답자 전체 중 각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 표를 해석하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사람이 100명일 때 약 42~43명이 허위 신고를 당한다고 인식했으며, 약 48~49명 허위 신고 협박을 당했다고 인식하고, 약 72~73명이 허위 신고를 목격했다고 인식한다는 의미다. 허위 신고가 계속 발생하면 진짜 가해자도 이를 빌미로 자신을 신고한 사람을 허위신고인처럼 취급하고 반성하지 않게 될 수 있다.
 
<표 2> 괴롭힘 신고율과 허위신고 피해율(%)

 *재구성 : 서유정ㆍ김종우(2023)
 
네 번째, 사건을 조사하고 심의하는 중에는 피신고인의 권리가 박탈당하거나 제한되지만, 정작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는 종종 온정주의로 가는 모순이 발생하곤 한다. 때로는 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를 결정해도 사측이 피신고인의 이의제기를 막기 위해 징계 수위를 낮춰주기도 한다. 극소수의 경우지만, 행위에 비해 과도한 징계가 결정되기도 한다. 같은 사업장에서 두 경우가 모두 발생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는 행위 대비 과소한 징계를, 누구에게는 과도한 징계를 주는 것이다. 그 결과 가해자는 본인이 한 행위의 무게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된다. 전자의 가해자는 내가 고작 이 정도 결과가 나올 사건 때문에 앞서서 그렇게 내 권리를 박탈당했나 싶어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된다. 후자의 가해자는 왜 다른 사람들은 더 한 행위로도 더 가벼운 징계를 받았는데 나는 더 무거운 징계를 받아야 하는가 싶어 억울해진다.
 
다섯 번째, 가해자 중 최소한 일부는 본인이 상사로부터 그런 행위를 겪으면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을 보편적인 관리 행위 수준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런 행위를 통해 오랫동안 능력 있는 직원으로 실적이나 성과를 인정받아 온 가해자도 있었다. 강압적인 업무 지시를 통해 피해자들을 이 악물고 일하게 하는 것을 효과적인 관리 행위라고 보고, 피해자가 달성한 실적과 성과를 빼앗으면서도 그것이 지시한 본인의 실적과 성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 잘못하고 반성한 가해자가 그렇지 않은 가해자보다 오히려 법적 책임이 더 커질 수 있다. 경미한 괴롭힘을 한 가해자 중에는 반성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반면, 심각한 가해자는 오히려 좀처럼 반성하지 않는다. 애초에 반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토록 심각한 수준의 가해행위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성하고 사과하면 혐의 인정이 될 수 있다. 경미한 괴롭힘을 반성하고 사과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을 때 사과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다. 허위신고를 당하고 사측의 강요로 억지 사과를 해야 했거나, 또는 신고인은 그렇게 인식했을 수도 있다며 좋은 마음으로 사과했던 피신고인 역시 마찬가지로 혐의 인정이 되어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례들이 있다. 이들을 담당한 변호사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으니 그냥 합의를 하라고, 변호사 선임비가 더 비싸다고 권고하기도 한다.
 
일곱 번째, 괴롭힘에 잘 대응하는 나라는 예방 중심 제도로 사회전반적 인식 개선과 조직문화의 개선을 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후구제 중심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사후구제 제도는 근본적인 개선보다는 신고 접수된 사건만 처리하는 '게으른' 대응 방식이다. 게다가 사전에 사업주나 근로자의 인식 개선과 공감대 형성 없이 법부터 시행했다. 미리 가르쳐 준 건 없으면서 틀릴 때마다 맞으면서 스스로 깨치라는 식이 된 것이다. 단, 틀린 사람 모두가 맞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적발된 사람만 맞으며 적발될 확률은 낮다. 처벌은 기본적으로 행동개선 효과가 매우 낮다. 처벌을 통한 행동개선을 달성하려면 잘못할 때마다 적발되고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둘 다 우리의 현실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예방교육마저 실효성 낮은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 가해자가 자신이 그릇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교육을 통해 성찰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게다가 인식 개선이 매우 잘 이뤄진 사업장과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업장이 공존하며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어느 사업장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같은 행위가 괴롭힘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현재의 사업장에서 신고 당했어도, 전에 일했던 다른 사업장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또 신고인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다. 거기에 더해 사업주들이 권력자인 가해자, 즉 자신과 가까운 가해자를 보호하고 두둔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조치의 의무이자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으므로, 이런 사업주가 보호해 주는 가해자는 반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덟 번째, 우리나라는 법령 제정 단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타 국가에서는 대부분 별도의 법령 또는 법적 개념으로 다루는 Harassment와 Bullying의 구분이 국내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도, 괴롭힘 행위에 해당하는 범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오히려 근로자에게 '내 기분이 상하면 괴롭힘이다'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는 문제도 생겨났다. 이런 사람들이 신고를 접수하면서 괴롭힘에 대한 상식이 깨졌고 신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 또한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엄연한 가해행위에 해당함을 잘 인식하지 않게 됐다. 누군가가 그들이 하는 행위의 부적절성을 지적해도, 오히려 지적한 사람을 극단적으로 민감한 사람 취급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아홉 번째, 우리나라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 도덕ㆍ윤리 교과가 필수교과였던 시절에도 과목을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방식으로 가르치면서 제대로 윤리의식, 책임의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가정교육에서도 성적 좋은 자녀는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 학교에서도 그들이 잘못하면 오히려 쉬쉬하며 덮어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능력은 있으나 윤리의식, 책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하고 사회 곳곳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반성할 줄 모르는 태도가 위에서 아래로 전파됐다. 지금은 성적과 무관하게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부모, 바로 잡아주려는 교사를 오히려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부모들이 증가하고 있고 성인이 된 자녀가 군대나 직장에 갔을 때도 헬리콥터 부모 노릇을 멈추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은 어린 나이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배우지 못하면서 가해자는 왜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서구권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서구권에서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꾸준하게 준법정신, 윤리의식, 책임의식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는 경찰관 등이 직접 수업에 참여해 법을 위반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를 교육한다. 법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법을 위반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역사의식도 함께 가르친다. 과거 특정인이 했던 행동과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성찰하게 교육한다. 내 행동이 공동체에, 사회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신고되면 반성하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교육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반드시 처벌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심리학자들이 제도화를 주도한 곳이 많았고, 제도의 방향성 자체가 근본적으로 괴롭힘이 발생하기 어려운 조직문화의 조성에 있었다. 신고가 발생해도 꼭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는 반성하도록 성찰을 유도하며 화해 조정과 중재 중심의 사건 조치 방식을 정착시켰다. 다만,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조정ㆍ중재로 이뤄지기 어려운 수준의 사건은 확실하게 조사했고, 가해자에게도 구체적인 신고 내용을 알게 해 자기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사건이 인정되면 가해자는 행위 수위에 적정한 수준으로 확실히 징계했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가해자임이 입증되면 그가 조직에 끼치는 악영향이 이익보다 더 크다고 보고 과감하게 징계했다.
 
위와 같은 배경이 있기 때문에 괴롭힘에 잘 대응하는 국가에서는 괴롭힘 신고가 있어도 분리조치 등의 피해자 보호 조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신고인과 신고인이 계속 함께 일하게 두기도 한다. 교육방식과 사회적 문화, 조직문화, 사건 조치 방법까지 모두 가해자가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방식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조직문화에도 긍정적인 방식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